대재앙이 닥친 후…소설 ‘더 로드’가 암시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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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이 닥친 후…소설 ‘더 로드’가 암시하는 것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3.15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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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세상에서, 황폐한 잿빛 길에서’…폐허에서 느끼는 실존
▲ 책표지 / 위키피디아

이사짐을 정리하다가 이 책을 버려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가 쓴 「더 로드」(The Road)다. 지하철에서 읽은 책인데, 너무 우울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은 소설일 뿐인데. 다 읽고 가슴이 답답해 지는 것을 느꼈다. 세계의 종말이 온다면, 살아남은 자의 삶은 이렇게 비참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언젠가 다시 읽을까.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말세로 간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핵전쟁일수도 있고, 소행성과의 충돌잀구도 있다.

작가 코맥 맥카시는 지구를 멸망시킨 대재앙의 원인보다는 대재앙 이후 무시무시한 세계를 그리는데 주력했다. 2006년 9월 코맥 매카시는 묵시록적 세계를 그린 신작 「더 로드」(The Road)]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해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을, 2007년엔 퓰리처상을 매카시에게 안겼다.

 

스토리는 대재앙 이후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도시는 불타고 인류와 생명은 거의 멸종했다. 문명은 파괴됐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불에 탄 세상은 온통 재로 뒤덮였고, 하늘 가득 떠도는 재에 가려 태양도 보이지 않고 한낮에도 흐리고 뿌연 빛만이 떠돌아 다녔다. 무채색의 황폐하고 고요한 땅, 신은 사라지고 신을 열렬히 찬미하던 이들도 사라진 땅.

그곳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길을 걷는다. 아버지는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다”고 말한다. 무슨 뜻인지 설명도 없다.

작가 매카시는 이렇게 썼다.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은 먹을 것을 찾아 텅 빈 집들과 상점들과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연명하기 위해 인육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트럭을 타고 다니며 인간을 사냥하는 무리도 있다.

남자와 소년의 목적지는 바다가 있는 남쪽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왜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안간힘으로 남쪽을 향해 가는지 소설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목적 없이 목숨을 연명하고 걸을 뿐이다. 다만 남자는 아들에게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뿐.

남쪽을 향해가는 그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얼마 안 되는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두 알의 총알이 든 권총 한 자루가 있었다. 부자는 밤마다 추위에 떨었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언제나 식량은 부족했고 잠자리는 춥고 불안했다. 며칠을 굶다가 운 좋게 먹을거리를 만나면 그들은 주린 배와 카트를 채웠다.

맹목적으로 가는 그들의 길엔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잇따른다. 인간사냥꾼에게 잡힐 뻔하기도 한다. 결국 그 사냥꾼을 향해 남자는 아껴둔 총알 하나를 사용한다. 남자의 총에 맞아 죽은 그 사냥꾼의 시신은 나중에 껍질과 뼈만 그 자리에 남게 된다. 그의 무리들이 삶아먹은 것이다.

아버지와 소년이 먹을 것을 찾아 찾아간 집의 지하실엔 발가벗긴 채 갇힌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 사람들은 사냥꾼들의 ‘저장된 식량’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숲에 숨어 길을 살피던 남자와 소년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뜬다. 길을 걷는 남자 셋과 여자 하나였는데, 여자는 만삭의 몸으로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남자와 소년은 그들이 지나간 한참 후에야 숲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걷는다. 한참 길을 걷던 소년은 숲에서 실낱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한다. 남자는 한번 살펴보자며 총을 꺼내들고 숲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모닥불에는 고깃덩이 하나가 꼬챙이에 꿰어져 구워지고 있었는데, 머리를 떼어낸 갓난 아기였다. 아기를 굽던 무리들이 총을 들고 오는 남자를 발견하고 황급히 몸을 숨겼다. “아기를 어디서 찾았을까요?” 소년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남자는 매일 피가 섞여 나오는 기침을 하며 잠을 깬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아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어 한다. 예기치 않은 공격, 위험한 상황에의 노출, 그리고 굶주림으로부터. 특히 다른 방랑자를 만날 때마다 아들의 신변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사라진 문명에 대해 아들은 알지 못한다. 예전의 문명사회에 대한 기억도, 지식도, 체험도 없다. 살아 있는 인간을 경계하는 아버지, 그 사람들에 대해 다가가려 하고 도와주려 하고 껴안고자 하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남자는 아들이 더 큰 고통을 겪기 전에 아들을 죽이고 자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극도의 공포에 시달린다. 죽음 직전에 다시 살 길을 열어주는 행운을 만나게 돼도, 남자는 “진짜 행운이란 이런 게 아닐지 모른다”며 “죽은 자들을” 부러워한다.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최소한 서로가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삶에 대한 회의, 여행을 방해하는 온갖 역경이 회색빛처럼 그려진다. 그들은 또 묵묵히 길에 나선다. 그들은 무사히 남쪽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구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이 옮긴다는 불은 무엇일까.

황폐한 잿빛 세상의 길에서 그들은 단지 살기 위해 걷는다. 가는 목적지만 있을뿐, 목적도 없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속에 엄마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남자는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려 하지만, 아내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더 이상 잿더미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남아 떠나게 된다. 때문에 끝까지 아내를 데리고 함께 가지 못한 남자의 자책감과 미안함이 드러난다.

소년이 아팠다. 작가는 이 대목을 이렇게 정리했다.

“밤새 소년을 안고 있었다. 졸다가 공포에 사로잡혀 잠을 깨며 소년의 심장을 만져보았다. 아침이 되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스를 좀 마시게 하려 했으나 소년은 마시려 하지 않았다.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조금이나마 식혀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남자는 자는 소년의 하얀 입을 닦아주었다. 약속한 대로 할게. 남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 혼자 어둠 속으로 보내지는 않을 거야.”

아버지는 어느날부터 누군가 자신들을 쫓는다는 생각에 걸음을 서두르게 되고 어느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약탈자로 오해받아 다리에 화살을 맞는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을 공격한 남자에게 어느 폐선에서 주은 조명탄을 쏘아 죽이고 살아남은 여자에게 “왜 우리를 따라 다녔느냐”라고 추궁하지만 그 여자는 “쫓긴 뭘 쫓아”라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자신들을 추격하는 자들을 해치운 게 아니란 걸 안 주인공은 아들을 데리고 걸음을 재촉하지만 부상당한 몸을 추스리지 못한다. 아버지는 세상의 마지막을 감지한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사는 게 아주 안 좋니?”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나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그들은 착한 여행자들을 만난다. 젊은 남녀와 그들의 자녀와 개로 구성된 일행이다. 아들의 꿈이 또래의 아이를 만나는 것인데, 이 일행에는 주인공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두명이나 있다.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착한 여행자들을 만나 다시 여행을 떠난다.

 

 

<작가와 작품 관련 에피소드>

 

▲ 영화 포스터 / 영화사이트

작가 코맥 매카시는 어린 아들과 함께 엘 파소로 여행을 떠났다. 낡은 호텔에 머무르던 어느 밤, 아

이가 자고 있는 동안 매카시는 창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에 가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기차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그는 오십 년 혹은 백 년 후엔 이 마을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하다가, 산 위로 불길이 치솟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옆에 잠들어 있는 어린 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이를 종이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소설 ‘더 로드’가 탄생했다.

이 책이 발표된 뒤, 많은 비평가와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이 책을 한 남자의 세상 방랑기라고 했고, 누군가는 “지옥으로 가는 여정을 담은 또하나의 단테의 ‘신곡’이라고 했다.

책이 출간된 2006년 연말, ‘더 로드’는 미국의 여러 언론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소설’에 이름을 올렸다. 윈프리는 이 책을 ‘오프라 윈프리 클럽 도서’로 선정했다.

저자 코맥 매카시는 1933년 7월 20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에서 여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인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 첫 소설 <과수원지기>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바깥의 어둠>, <신의 아들>, <서트리> 등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본격적으로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1985년작 <핏빛 자오선>으로, 이 작품은 <타임>지에서 뽑은 '100대 영문소설'로도 선정되었다. 이후 서부를 모태로 한 국경 3부작 <모든 멋진 말들>, <크로싱>, <평원의 도시들>을 발표하며 서부 장르소설을 고급문학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더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출간하며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책을 소재로 한 영화가 2009년 개봉됐다. 존 힐코트 감독. 비고 모텐슨(남자), 샤를리즈 테론(여자), 코디 스밋 맥피(소년) 역.

 

▲ 영화 '더 로드'의 한장면 /영화 홍보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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