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마음을 채우는 힐링로드, '비내길'과 '비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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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마음을 채우는 힐링로드, '비내길'과 '비내섬'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21 11: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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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앙성천과 남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는 다양한 나무와 꽃 갈대가 무성하여 가을로 접어들 무렵엔 갈대숲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상의 속된 것들을 등으로 흘려보내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호수와 닮은 하늘이 아름다운 비내길을 걷고자 추석을 앞두고 충주 양성면의 비내길로 향했다.

비내길은 앙성천을 따라 논밭이 어우러진 들판과 둑길, 남한강을 따라 걷는 강가길, 그리고 새바지산 산길을 걷는 길이다. 아울러 비내섬을 걸으면 더 풍부한 자연과 만난다. 

비내길의 ‘비내’는 ‘베다’의 방언 ‘비다’에서 나왔다. 앙성면의 앙성천과 남한강 주변에 갈대와 나무를 베어낸다의 뜻에서 비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길을 걷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의 상태로 걷는 나를 보게 된다.

양성온천 광장의 비내길 표석.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양성 온천광장의 비내길 표석.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문득 길을 걸으며 마음을 비워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제멋대로의 생각에 웃음을 짓는다. 

앙성 온천광장을 출발해 앙성천으로 접어들었다. 둑길을 따라 국토종단 자전거길과 나란히 시작한다. 솜털 같은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더 높고 푸르다.

양성천 반영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양성천의 반영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손이라도 뻗으면 파문이 일 것 같은 호수와 닮았다. 폭신한 풀을 밟으니 내내 피곤한 발바닥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기분이 좋다. 전날 내린 비로 더러움을 씻어낸 탓일까(?) 맑은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천(川)에 발을 담그고 싶은 탁족(濯足)의 유혹을 진정시켰다. 

뚝을 따라 900미터 쯤 가다가 왼쪽으로 남한강 자전거길과 갈라져 오른쪽 단풍터널에 들어섰다. 충주시에서 비내길의 풍광을 더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800여 미터 뚝 좌우로 길게 늘어서 단풍터널은 가을이지만 아직 따가운 햇볕을 피하게 해주어 시원하다.

남한강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내길 남한강 따라 걷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더 자라면 이곳의 또 하나의 명물로 탄생할 듯하다. 도보객의 기척에 천둥오리가 퍼덕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대지는 황금빛으로 물들기 직전의 결실로 가득하다. 둑길 밤나무에 열린 밤송이가 입을 벌렸다. 밤알이 빠져나올 듯 위태로워서 조심스레 손으로 꺼낸다. 짙은 밤색의 밤알은 탱글탱글 영글었다. 

뚝 옆 논의 벼 이삭은 벌써 무거워져서 고개를 숙인다. 가볍게 이는 바람에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마치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 같아서 눈을 맞추다 길을 떠났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벼.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벼.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뚝을 따라 고들빼기, 둥근잎유홍초, 나팔꽃, 개쑥부쟁이 등 다양한 가을꽃이 길을 화사하게 만든다. 호박꽃도 보여 예전 꽃 안에 벌이 들어갔을 때 꽃잎째 잡다가 벌에 쏘이던 생각이 난다. 옛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앙성천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양지말산 자락을 지나 봉황산 끝 벼슬바위에 이르렀다. 바위의 모습이 마치 수탉 머리의 벼슬을 닮아서 벼슬바위다.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 벼슬길에 오른다는 재밌는 전설을 간직했다. 

여기에서 하필 옛 기억의 오류가 생겨 직진하지 않고 강으로 내려가 태평교 아래로 갔다. 점심을 해결하고 길을 찾으니 비내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보이지 않고 철책이 가로 놓였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쳐놓은 것이다.

빗장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철책을 따라 300여 미터를 진행하니 다시 비내길과 만나 철새전망대에 도착했다. 벼슬바위를 지나 직진하면 바로인데 한참을 돌아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철새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철새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전망대에 올라 남한강을 바라보았다. 날이 맑아서 하늘이 파란 호수 같다. 건너 하늘과 산이 물에 반영되어서 도화지에 펼쳐놓은 데칼코마니 같았다. 경치가 아름다워 자꾸 카메라 앵글을 돌린다.

멀리 하얀 백조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모습을 잡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렀으나 제대로 찍힌 게 없어서 아쉬웠다. 

대평교를 건너 노인 한 분이 전동기를 타고 철새전망대로 들어섰다. 92세가 되었다는 노인은 남한강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매일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인생의 끝에서 남한강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달관한 이의 모습이 엿보였다. 

부드러운 흙 위로 도릇도릇 돋아난 풀을 밟으며 강가 길을 따라 걷는다. 솟대 쉼터를 지나자 층층둥글레 자생지다. 잎과 꽃이 층을 이루며 달려있어 충층둥굴레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식물은 이렇게 모래가 퇴적하는 곳에 주로 자란다. 지금은 꽃이 피지 않고 5월에서 6월 사이에 피니 다시 와서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솟대쉼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솟대쉼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앙성면 조천리와 소태면 복탄리를 연결하는 복여울교를 지나 조터골마을 코스모스길로 접어들었다. 길 따라 빨강, 하양, 노랑의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가 제대로다. 몸을 낮춰 코스모스 사이로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에 꽃을 그린 듯 마음도 파랗게 물들었다. 흥이 올라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읊조렸다. 오랜만에 드는 감성이다.

하늘에 핀 듯한 코스모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하늘에 핀 듯한 코스모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코스모스 꽃길을 지나 아치형 비내섬 보도교를 건너 섬에 들어섰다. 강물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밀려온 퇴적물이 쌓여 강 가운데 만들어진 비내섬은 우리나라 큰 강들에 발달하여 있는 하중도(河中島)다. 

비내섬의 넓이는 30만 평 규모다. 요듬 들어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엄청난 히트작 사랑의 불시착 촬영장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이 찾기도 하지만, 각종 철새와 보호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다.

비내섬 입구 아치 모양의 인도교.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내섬 입구 아치 모양의 인도교.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수달, 삯, 단양쑥부쟁이와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의 생명체가 10여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내 눈에 띄지는 않아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귀한 동식물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직은 환경이 제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리라.

섬위의 길은 우측으로 잡고 섬을 도는 방향으로 자갈로 덮힌 걷기 시작한다. 키를 넘는 높이의 갈대숲은 아직 깊은 가을이 되지 않아서 가을색인 황갈색으로 물들지 않았다. 아직 푸르러 짙은 향수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갈대숲 사이로 걷는 즐거움은 좋다. 

길을 걷다보면 자갈길은 어느새 부드러운 모래가 섞인 흙길로 바뀐다. 온통 초록초록한 풀과 나무들로 가득한 길을 걷는다. 버드나무는 길게 드리워져 그늘을 만들고 간밤의 비로 자그마한 웅덩이도 있어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비춘다. 버드나무를 지나면 바람에 드러누운 풀과 버드나무..... 키를 재게 하는 키 큰 억새밭.....

비내섬 갈대 숲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내섬 갈대 숲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눈을 돌려 오른쪽을 쳐다본다. 나무와 갈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남한강은 얌전해 보였지만 강으로 가까이 다가서니 물살이 빠르고 물색이 시퍼렇다. 나도 모르게 물살을 따라갈 것 같아 흠칫한다. 안동 녀던 길 농암종택 앞 낙동강에서 느꼈던 같은 경험이 떠오른다. 

비내섬을 나오는 도보교 위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내섬을 나오는 도보교 위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섬을 돌아 보도교를 건너 비내섬 인증센터가 있는 비내 쉼터로 나와 길을 마감한다. 예정대로라면 들과 뚝과 섬과 강길로 이어진 비내길의 마지막 아름다운 새바지산의 숲길을 이어가야 하지만 중간 길을 잃어 헤매다가 기진맥진도 했고 시간도 많이 지나 예전 다녀왔던 새바지산 길로 가늠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이 인생길도 마찬가지로 언제나 평탄하지만 않다는 것이다. 쉬운 길이 있으면 험한 길이 있고, 길을 잃으면 돌아가는 길도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다. 이번 길도 역시 비우니 채워지는 가득한 길이었다. 마음이 들어설 때는 무거웠으나 마지막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코스: 양성온천광장~단풍터널~대원교~철새전망공원~솟대쉼터~충충 둥글래 서식지~복여울교~ 조터골마을~비내섬~비내쉼터 ~비내마을~앙서몬천광광 13.5km
 

비내길 안내도. 주황색 실선이 필자가 걸은 길이다.
비내길 안내도. 주황색 실선이 필자가 걸은 길이다.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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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잡는정교수 2021-09-21 16:09:55
맘을 비워낼수만 있다면 하루종일 걸을수 있을것같네요. 코스모스 꽃이 참 이쁩니다

푸른숲 2021-09-21 17:52:10
마음을 비워내고 걷는 길은 어떨까 생각하며 글을 따라 길을 구경했네요.
아름다운 비내길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습니다.
멋진 사진과 생생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