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 연대기] ㊴ 문화냉전의 시작 - 소련 영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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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 연대기] ㊴ 문화냉전의 시작 - 소련 영화 (하)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9.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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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영화, 흥행 상업성과 무관
예술적 가치 할리우드보다 앞서
다양한 영화이론과 꽃피어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필자의 대학 시절만 해도 구 소련의 영화를 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시절, 공산주의의 본진인 구 소련의 영화는 ‘당연히’ 이적 표현물일 가능성이 높은 문화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련의 영화들은 해외 서적을 통해 타이틀이나 스틸 샷 정도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소련 영화에 대해서는 약간의 환상도 있었던 것 같다.

예술적인 작품이 많다든지, 영화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애초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시작된 영화이기에 소련 영화의 특징은 유행이나 대중성 같은 흥행 요소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어느 정도는 목적성을 위해 과도한 흥행 요소나 선정적 소재를 피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비에트 연방의 영화들이 단순히 ‘재미없는’ 체재 선전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에 가까울지 모른다.

오히려 흥행과 상업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만큼 소련의 영화 감독들은 할리우드 감독들에 비해 감독 스스로의 예술적 가치를 담아내는 것에 몰두할 수 있었다. 소련에서 유독 현대 영상 산업을 이루는 많은 영화 이론들이 주창되고 형식주의 영화 이론이 발달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전함 포템킨의 반란 포스터. 사진출처=나무위키
전함 포템킨의 반란 포스터. 사진출처=나무위키

몽타주 이론

몽타주 이론은 현대 영화와 영상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화 이론이다. 전 편에 소개한대로 초기 소련의 영화 산업은 새로운 필름을 찍어낼 여유도 돈도 사람도 없었던 상황이라 영화 강국으로 불린 제정 러시아때 만들어진 영화 필름들을 자르고 붙여서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아주 독특한 방식의 영화 산업이 형성되어 있었다.

소련에서 편집 기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유독 발달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편집이라는 공정에서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유명한 ‘쿨레쇼프의 실험’이다.

쿨레쇼프의 실험.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쿨레쇼프의 실험. 사진출처=위키피디아

1919년 러시아 국립 영화학교의 소련 최초의 영화 과정 담당 교수였던 쿨레쇼프는 개별적인 샷(shot)들이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연속된 다른 샷과의 상호 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당시 영화 산업에서 편집은 단순히 순차적으로 찍은 필름을 연결하여 나열 형태의 타임라인을 만들고 관객들이 필름의 순서대로 영화 속의 사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초기 영화의 방식을 고수하던 시점이었다. 쿨레쇼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샷을 앞 뒤로 배치 한 후 사이에 수프 한 그릇, 관 속의 소녀,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여자가 나오는 샷을 집어 넣었다.

사람들은 똑 같은 샷이지만 가운데 샷에 의해 마지막의 남자 얼굴이 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프를 바라보는 무표정, 관 속의 소녀를 바라보는 슬픔, 소파위의 여자를 바라보는 욕망. 쿨레쇼프는 이 실험을 통해 영화에서의 편집이 어떻게 유용한지 편집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제시했다.

그가 말한 이 이론은 서로 다른 것을 뜯어 붙여 새로운 이미지나 내용을 만들어 내는 몽타주라는 미술 기법의 이름을 따 몽타주 이론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함 포템킨의 가장 유명한 오데사 계단 시퀀스 . 영상출처=유튜브

몽타주 이론에서 시작된 변혁

단순한 이론이고, 현재 시점에서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소련 영화 이론학자들이 주창한 이 몽타주 이론은 당대의 많은 소련 영화 감독에 의해 새로운 영화 형식주의 이론으로 발전해 간다. 특히 에이젠슈타인 감독이 이 이론의 열렬한 신봉자로 그는 ‘전함 포템킨의 반란’같은 작품을 통해 현대 영상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을 통한 새로운 내러티브 기법을 선보였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소련 영화들은 독일의 표현주의와 비슷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영상 문법들을 만들어냈다.

‘전함 포템킨의 반란’에서 계단을 굴러 내려오는 유모차의 장면이나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짓밟는 진압군의 모습을 그린 몽타주들은 잘 훈련된 선동가의 긴 연설보다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구 체제의 잔인함과 이런 체재에 맞서 싸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당위성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영화의 가치들은 이후 할리우드에 전파되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련의 영화 감독들은 ‘퇴폐적 자본주의’에 물든 서방 영화에 대해 항상 반대적인 입장에 있었고, 늘 서방 영화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공유했다.

이러한 의식은 영화의 모든 특성들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풍조를 낳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현대 영화와 영상 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기반적 이론들을 제시했다.

흥행과 자본의 틀에 갇혀 운신의 폭이 넓지 못했던 할리우드 감독들에 비해 소련의 영화 감독들은 보다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이러한 서로 다른 체제의 실제 역사의 ‘정치적 냉전’보다 조금은 일찍 시작된 ‘문화 냉전’이 현대 영상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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