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아시아 금융위기⑲] 뒤늦은 말레이 개혁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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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아시아 금융위기⑲] 뒤늦은 말레이 개혁조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3.08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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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티르의 정치적 동지인 안와르 부총리, 긴축재정 수용

국제 외환 투기자와 전쟁을 선포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외국인 단기투기자들이 국내시장을 교란할 것에 대비, 철저한 방어망을 쳤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인기(?)를 얻은 만큼 자신의 주장을 국내에 시험, 외국의 투기꾼들을 원천 봉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997년 8월 27일 밤 마하티르 총리는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주식시장에서 단기 투매(short-sale)를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자율을 높이겠다고 위협한 것이었다. 마하티르는 이런 조치를 취하면 국제 투기자들이 말레이시아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고, 시장이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장은 마하티르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증권시장에서 일반적인 단기투매를 금지한다는 것은 투자자를 시장에서 내쫓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투자란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 떨어진 가격에서 다시 살 생각으로 주식을 매각하는 것으로, 머니게임을 하는 사람들로선 가격하락에 대비한 일종의 헤지(피난) 수단이다. 마하티르는 단기투매가 주가 하락을 부채질한다고 생각해 이를 금지했는데, 주식 투자자들은 오히려 시장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조치가 발표되고 다음날 쿠알라룸푸르 증시가 개장되자 주가는 사상 최대폭인 4.2%나 폭락했다.

 

마하티르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9월말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한 경제회의에 참석, 외환 거래자들을 일컬어 「불한당」, 「파렴치한」, 「탐욕스러운 자」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나서는 외환 딜러들의 거래를 금지하고, 1인당 국민소득, GDP 등 각국의 경제지표를 가지고 환율을 정하자고 주장했다. 일견 그럴듯한 논리였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조 달러가 거래되는 국제 외환 시장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70년대 이전처럼 금본위제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그는 갈수록 돈키호테와 같은 발언으로 국제적 이목을 얻으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마하티르는 산티아고 발언에 앞서 자신의 발언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예감했다. 그는 자신이 외환 거래자를 욕하면 투기꾼들이 링기트화를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국제투자자들은 마하티르를 처벌했다. 국제 외환딜러들은 집단적으로 마하티르에게 본때를 보여 주었다. 산티아고 발언을 블룸버그 뉴스, 다우존스 뉴스등 와이어를 통해 전해들은 전세계 주요도시의 딜링룸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불한당」을 한번 혼내주자는 분위기가 이심전심으로 전해졌다. 산티아고 발언이 나온 후 며칠만에 링기트화는 달러에 대해 4.5%나 폭락했다. 그의 발언의 파장은 링기트화에만 머문 게 아니라, 필리핀 페소, 인도네시아 루피아, 심지어는 비교적 안정적인 싱가포르 달러에도 미쳐 이들 통화가 일제히 하락했다.

국제금융시장은 마하티르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자체의 경제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은 채 남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 시장의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말레이시아가 긴축 예산정책으로 돌아서고 수입을 줄이며,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 시장의 논리였다.

이번에는 아시아 국가들도 마하티르에게 신경질을 냈다. 한마디로 「이젠 제발 그만 떠들어 주십사」 하는 부탁이었다.

산티아고 발언으로 아시아 외환시장이 다시 흔들리자, 필리핀 은행연합회 회장인 데오그라셔스 비스탄씨가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우리가 링기트화 하락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해도 국제 시장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마하티르 총리가 필리핀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당시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 겸 재무장관 /위키피디아

 

정작 마하티르의 말을 막은 것은 소로스나 필리핀의 은행가가 아니라, 국내에서 그를 돕고 있는 측근들이었다. 16년이나 장기집권해온 72세의 노인네는 남이 아무리 얘기해도 말을 듣지 않았지만, 측근들이 만류하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하티르의 돈키호테적 행동을 잠시나마 중단시킨 사람은 오랜 정치적 동지인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었다. 안와르는 마하티르 내각에서 국제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마하티르가 “아시아 위기는 국제적 음모에 의해 발생했다”며 선동적인 발언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 때, 그는 윗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죽이는 일을 했다. 국제 투자자들은 마하티르보다는 안와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가 인기발언에 몰두할 때 안와르는 말레이시아의 개혁을 준비했다. 그가 마하티르를 침묵시키고 IMF가 요구하는 개혁, 즉 국제 금융인들이 원하는 구조조정을 밀고 나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그해 11월말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이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 경제를 모델로 수출 일변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해왔다. 그들이 모델로 삼은 한국 경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자, 안와르는 마하티르에게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고, 마하티르도 더 이상 국제 투자자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할 수 없는 입장임을 깨달았다. 16년 장기집권의 말레이시아 권력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2월 5일 안와르는 10여년동안 채택해온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을 포기하고 긴축재정 원칙을 선언했다. 2000년대의 장밋빛 청사진을 약속했던 마하티르는 외국에 출장가고 없을 때 내정을 맡은 안와르는 쿠데타에 가까운 조치를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이를 일컬어 「자생적 IMF」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한국이나 태국, 인도네시아등이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강요에 의해 IMF 패키지를 받아들인 것과 달리 스스로 IMF가 요구하는 개혁을 받아들임으로써 국제사회의 구조를 받지 않고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말레이시아는 한수 위였다. 비록 마하티르와 안와르라는 이질적인 지도자가 동거하면서 불협화음을 냈지만, 말레이시아는 국제 사회에 할말은 다하면서도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안와르의 개혁 프로그램은 늦었지만 쓰러져가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였다.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기트화는 달러에 대해 연초보다 35%나 하락했고, 주가는 70%나 폭락해 있었다. 환율이 오르니, 당연히 수입물가는 폭등했다. 경제 추락은 주로 지난 3개월간, 즉 태국 바트화 폭락을 시작으로 아시아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마하티르는 국제 투기자본과 싸움을 벌이던 사이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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