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동 고분 주인은 거칠산국 지배층일까
상태바
연산동 고분 주인은 거칠산국 지배층일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3.03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예고…가야·신라 특징 모두 지녀

문화재청이 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는 「부산 연산동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것을 예고했다. 그동안 이 고분군은 부산기념물 제2호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해왔다.

그러면 이 고분의 주인은 누구일까.

부산에서는 이 고분군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가야의 소국 거칠산국(居柒山國)으로 추정하고 해마다 연간동 구분군 앞에서 ‘거칠산국 왕릉제’를 개최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탈해왕 때 거도(居道)라는 장수를 파견해 거칠산국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삼국사기」 잡지 지리지에는 신라 경덕왕때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칭했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부산 연제구 연산동 고분군은 이웃한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을 합쳐 가야명의 일원이었던 거칠산국의 무덤이라는 것이 부산지역 사학자들의 견해다.

연산동 고분군에는 복천동고분군에는 없는 크고 높은 봉분 18기가 (盃山)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완만한 구릉의 능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경사지에는 1,00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이는 큰 봉분을 쌓을 수 있는 정치 세력의 존재를 의미한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걸쳐 연산동 고분군의 주인공들이 인근 복천동고분군의 주인공들을 대신해 동래 지역의 새로운 지배집단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연산동 고분군이 조성될 당시에는 지금의 부산교대 앞까지 바다였다고 한다. 따라서 고분의 주인들은 수영만과 내륙이 연결되는 길목을 지키며 해상 교역을 담당했던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군 발굴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 연산동 고분군 /부신시 웹피이지

 

의문점은 남아있다. 과연 부산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무덤이 거칠산국 지배세력의 무덤이었을까.

삼국사기에서는 거칠산국이 탈해 이사금때 거도(居道)에 의해 멸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거도는 계략으로 거칠산국을 정벌했다. 이른바 거도의 계략이다. 이 거도의 전술은 나중에 이사부가 또다른 가야 소국을 정벌하는데 사용한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기록했다.

“거도가 변경 관리로서 그 나라들을 병합하려는 뜻을 은근히 품고 매년 한 차례씩 장토(張吐) 들에 말떼를 모아 놓고 병사들을 시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즐기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마숙(馬叔)’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은 익히 본 일이라서 신라의 일상적인 행사라고 여기고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거도가 병마를 출동시켜 불의에 그들을 공격하여 두 나라를 멸망시켰다.”

탈해왕의 재위기간은 서기 57~80이다. 거칠산국은 1세기에 신라에 점령됐다.

그런데 연산동 고분군은 발굴과정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400~500년의 공백이 있다.

그러면 거칠산국이 멸망후 4~5세기의 세월이 흐른후 조성된 고분군이 과연 거칠산국 지배층의 무덤일까. 신라가 거칠산국을 멸망시킨후 지배세력들이 신라와 조공관계를 유지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던 것일까. 아니면 신라가 심은 또다른 지배 세력이 무덤의 주인공인가. 이런 의문점의 상당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굳이 답을 할 필요가 없다. 모자라는 부분은 새롭게 발견되는 것으로 메우도록 남겨둘 필요가 있다.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은 것 자체가 역사일수도 있다.

다만 연산동 고분군은 신라와 가야의 고분 축조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고, 출토 유물도 부산 지역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과 신라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들 유물은 5~6세기 부산과 영남 지역의 고대사 및 고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된다.

▲ 2014년 11월 7일 부산시 연제문화체육공원에서 열린 거칠산국 고분군 왕릉제. /부산시

 

이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는 1987년부터 2013년까지 7차례에 걸쳐 실시됐으며, 지금까지 조사된 영남지역 삼국시대 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다.

부산 연산동 고분군은 삼국 시대 무덤 축조기술을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 석곽 내부를 점토로 발라 마감 ▲ 빗물이 석곽 내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부엽공법 이용 ▲ 마사토를 이용하여 연약 지반을 강화하고 봉분의 하중을 분산 ▲ 봉분을 견고하게 쌓기 위해 다양한 크기의 점토 덩어리 사용, ▲ 거대 뚜껑돌 이동을 위한 목재 사용 등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출토 유물 /문화재청

 

(용어해설)

* 봉분(封墳):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무덤을 만드는 것. 일반적으로 흙으로 쌓았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돌을 이용하기도 함

* 부엽공법: 풀잎, 나무잔가지 등을 깔고 그 위에 점토를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법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