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㉝ ‘월트 디즈니’ 탄생비화 (중) – 배신과 또 한 번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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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㉝ ‘월트 디즈니’ 탄생비화 (중) – 배신과 또 한 번의 좌절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7.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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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기회를 잡은 월트, 형인 로이와 함께 새로운 시작나서
완벽을 추구했지만 직원들의 신뢰는 잃었던 월트 디즈니
직원들과 배급사의 배신...다시 모든 것 잃어버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파산과 돈이 없어 밥도 거르기 일쑤였던 생활에서 벗어나 극적으로 마가렛 윙클러와 배급 계약을 체결한 월트 디즈니에게 이 계약은 제2의 시작이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였기에 놓칠 수가 없었다.

그 간 파산 등으로 신용이 전혀 없었던 월트 대신에 LA에서 진공 청소기 판매원으로 일하던 형인 로이 디즈니가 친척들로부터 십시일반 돈을 빌려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1923년 12월, 후에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되는 회사의 시작이었다. 

어렵사리 재기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직원조차 고용하지 못해 월트와 로이 둘만 있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 전혀 모르는 형 로이는 돈 관리만 맡았기에, 모든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련된 일은 월트 혼자만의 일이었다.

그래도 그 동안 더 심한 환경에서 고통을 겪어왔던 월트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그것 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시작

마가렛 윙클러와 체결한 계약은 우선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의 에피소드 6편이었다. 월트의 고군분투로 스튜디오는 점차 안정되어 갔고, 월트는 캔자스 시티 시절 동료였던 아이웍스를 헐리우드로 부르는 등 1년 만에 직원은 11명으로 늘었다.

그 중에는 얼마 후 월트의 아내가 되는 릴리안 바운즈도 있었다.

디즈니 스튜디오의 풀 애니메이션 첫 작품 ‘행운토끼 오스왈드’ 하지만 월트에게 행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디즈니 스튜디오의 풀 애니메이션 첫 작품 ‘행운토끼 오스왈드’ 하지만 월트에게 행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릴리안 바운즈 후에 릴리안 디즈니가 되는 그녀는 당시 신생 회사였던 디즈니 스튜디오에 잉크 아티스트 (채색을 담당하는 애니메이터)겸 비서로 일했고, 1925년 7월에 월트와 사내 결혼에 골인한다.

월트의 조력자이자 동료이며 아내였던 릴리안 디즈니 (1951년 촬영). 출처=위키피디아.
월트의 조력자이자 동료이며 아내였던 릴리안 디즈니 (1951년 촬영). 출처=위키피디아.

직원들도 늘어가고, 결혼까지 한 월트는 더욱 더 일에 매진했다. 당시 디즈니 스튜디오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업계의 반응과는 별도로 재정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의 완성도에 너무 집착한 월트로 인해 제작비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월트는 재정에 타협하기 보다는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재정적으로 빠듯한 회사 운영이었지만, 아내 릴리안의 헌신적인 내조와 형 로이의 도움으로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는 점차 신흥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이름을 점점 알릴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끝에 1927년 ‘오스왈드’라는 토끼 캐릭터가 나오는 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당시 무르익기 시작한 풀 애니메이션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기에 이르렀다.

                        -Oswald the lucky rabbit All Wet (1927년 작품) (출처: 유튜브)
 

배신과 또 한 번의 좌절

토키 오스왈드는 업계에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더 이상 실패하지 않겠다는 월트의 모든 노력을 집약시킨 이 애니메이션은 이전의 애니메이션과 달랐다. 우선 주인공의 캐릭터 성을 명확하게 했다.

이 전의 애니메이션에서 등장 캐릭터는 단순히 움직이는데 집중을 했다고 하면 월트는 오스왈드를 통해 보다 ‘하나의 배우’같은 움직임과 연기를 통해 정의되는 일종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 시기 월트가 말한 대로 ‘우리는 캐릭터가 그 어떤 누구가 되기를 원한다.

그냥 그림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의미대로 말이다. 당시 유행하던 채플린의 슬랩 스틱 코미디 요소도 도입하고, 몸이 고무처럼 늘어난다는지 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만이 가능한 연기 방식을 정의하기도 했다. 마치 배우처럼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 성을 애니메이션 등장 인물에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 월트의 이러한 시도는 현대 애니메이션이 완성된 중요한 변환점이라고 본다. 이전까지의 애니메이션이 단지 그림이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고 하면 월트는 오스왈드를 통해 캐릭터 성과 내러티브가 있는 ‘극 애니메이션’의 기반을 시도했던 것이다.

만일 오스왈드가 월트의 생각대로 잘 풀렸다면 아마 지금의 미키 마우스는 없을지도 모른다. 월트의 완벽주의는 작품에는 좋은 영향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경영자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배급사였던 마가렛 윙클러의 남편으로 마가렛 대신 비즈니스를 전담하게 된 찰스 민츠와의 갈등도 거기에서 시작했다.

찰스 민츠와 월트의 갈등은 오래된 일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월트와는 달리 민츠는 보다 안정되고 확실한 (그리고 제작비가 적게 드는) 작품을 원했다. 1928년 월트와 민츠의 갈등은 본격화되었고,

참다 못한 민츠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월트의 직원들과 손을 잡고 월트를 회사에서 내쫒아버린 것이다. 무일푼에서 일궈온 5년 간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월트는 회사도 직원도 그리고 그 동안 고생해서 만들어 온 토끼 오스왈드의 저작권마저 민츠에게 빼앗기고, 다시 무일푼이 되었다. (계속)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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