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적벽’ 국가문화재 ‘명승’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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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적벽’ 국가문화재 ‘명승’ 지정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02.0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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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112호…김삿갓도 세 번이나 들렀던 경승지

화순 적벽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보산리·장항리 일대에 걸쳐 있는 명승지다. 중국 양쯔강 중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이름 붙여졌다. 동복천(同福川)의 상류인 창랑천(滄浪川) 유역과 무등산(無等山, 1,187m)에서 발원한 영신천(靈神川)이 합류되어 태고의 절벽을 스치며, 강의 유역에는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이 있다.

문화재청은 9일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화순 적벽(和順 赤壁)」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 「화순 적벽」은 명승 제112호로 지정됐다.

▲ 화순적벽(노루목적벽)의 가을 전경 /문화재청

7km에 걸쳐 있는 화순적벽에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이 있는데 통칭해서 화순적벽이라 부른다.

이서적벽은 다른 말로 노루목적벽이라고도 하는데,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함 때문에 동복댐의 건설로 수몰되기 전까지는 이곳 적벽의 대표로 꼽혔다.

물염적벽(勿染赤壁)은 규모나 주위의 경치면에서 노루목적벽에는 미치지 못하나 언덕 위에는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물염정(勿染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적벽은 김병연(金炳淵, 김삿갓)이 최후를 마친 절경지로 유명하다. 보산적벽(寶山赤壁)은 규모는 작으나 경치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85년에 걸쳐 지역 주민을 위한 상수도용의 동복댐을 만든 뒤 절벽의 일부가 수몰되어 가까이 볼 수 없게 되었다. 창랑적벽은 도석리의 뒷산을 넘으면 있는데 동쪽의 창랑리에서 바라보면 웅장한 느낌을 준다. 잔잔한 강 위로 화순적벽의 바위 빛이 서로 교차되어 투영되는 광경은 마치 푸른 비단 폭에 동양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 지난 30년 동안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금단의 땅 가운데 화순적벽 중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이 개방되었다. 두 적벽은 아무때나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적벽투어 홈페이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만 열리는 적벽투어다.

여름에는 송림이 우거져 푸르름과 조화를 이루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낸다. 근처의 북면에는 수질이 좋은 화순온천(和順溫泉)이 있어 적벽과 연계해서 관광할 수 있는 곳이다.

적벽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신재 최산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 붙였다. 이후 호남을 대표하는 하서 김인후, 담양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금산에서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적벽을 찾았다. 석천 임억령은 적벽을 유람하고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남기기도 했다. 조선 후기 들어 실학자 홍대용과 정약용도 아버지를 따라 유람을 나섰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도 화순을 세 번이나 찾을 정도로 각별했다.

적벽은 오래전부터 시인묵객도 많이 찾았지만, 서민들의 휴식처이자 피서지였다. 적벽의 높은 절벽 위에서 짚불을 강으로 날리는 낙화놀이도 즐겼다. 가까운 담양에서도 사람이 몰려올 정도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전라남도 화순군과 협력하여 이번에 명승으로 지정된 ‘화순 적벽’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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