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시누대 섬, 죽도(竹島)를 걷다
상태바
[박성기의 도보기행] 시누대 섬, 죽도(竹島)를 걷다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27 08:00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러니스트] 죽도(竹島)는 홍성군에서 사람이 사는 유일한 섬이다. 죽도가 너무 흔해서인지 전국에 유인도와 무인도를 합해서 50여 개가 넘는다.

그래서 지도에서 홍성의 죽도를 찾으려면 한참을 검색해야 한다. 섬에 대나무가 있어서겠지만, 이곳 홍성의 죽도만큼 시누대가 가득한 곳을 별로 보질 못했다.

은둔의 섬이었다가 알려진 게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큰 기대를 안 했다가 직접 보고는 하염없이 빠져들게 되었다. 걸어서 두 시간이면 섬을 돌아볼 수 있는데, 시누대가 온 섬에 지천으로 잘 보존된 섬이다. 바다가 조용하고 여느 섬과 달리 걷는 내내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발걸음이 편한 섬이다. 

탑승시간이 다가오자 선착장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죽도 제1선착장과 마을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죽도 제1선착장과 마을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바람이 세게 불어도 여느 바다와 다르게 파도가 높지 않다. 섬이 천수만 중간에 있어서 암년도가 서해의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남당항에서 배를 타고 지척인 10분 거리 죽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바로 내리니 너무 짧아 바다를 건넌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선착장에 내려서 방파제를 따라 올라가자 갈림길이 나왔다. 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을 뒤로하고 왼쪽 마을로 접어들었다. 포구에는 어선 수 척이 정박해 한가로이 나그네의 눈길을 잡는다.

선착장에서 내린 사람들의 빈번한 출입으로 마을은 북적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섬에는 민박을 겸한 음식점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인 ‘황금어장’에서 해물칼국수를 먹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다 내음을 품은 칼국수는 맛이 일품이어서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마을 동쪽 끝에 이르러 죽도갤러리가 있는 언덕으로 데크 계단을 밟고 걸음을 뗐다. 빈틈없이 빼곡한 시누대는 해풍에 부대끼며 사륵거렸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 이는 소리로 합창을 하며 걷는 자를 반겨주었다. 

죽도 마을회관위 바다낚시꾼 인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죽도 마을회관위 낚시꾼 인형.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죽도갤러리에 도착했다. 갤러리는 홍성 출신 최영 장군의 모형과 홍성군의 유명산 및 문화유적지들을 소개한 글과 사진을 전시했다. 섬의 가장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동바지전망대(제2조망쉼터)다.

바람이 일자 사방 시누대숲이 일제히 서로 대화를 나누듯 몸을 비비며 일렁댄다. 바람에 이는 시누대는 내 유년시절 기억 한 컷을 소환했다. 

“빽빽한 대나무 숲 사이사이를 뛰놀며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앞산에 해가 걸리고 어둠은 소리 없이 내렸다. 어둠에 뭉그러진 대나무는 무서운 거인의 얼굴이었다.

죽도섬내 대나무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죽도섬내 대나무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사위가 어둑해진 대나무 사이를 서성대다가 나를 부르는 어머니 소리에 후다닥 어머니 품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으며 노래 부르듯 ‘대국 갔다 왔는가~ 미국 갔다 왔는가~’ 하셨다.
무서움이 가시지 않은 나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앞장벌을 지난다. 선착장 마을은 번화한데 이곳은 한가롭다. 마을 어귀에는 어구(魚笱)가 쌓여있지만, 한가로워 아직은 수확기가 아닌 모양이다. 소라를 꿰어놓은 것이 보인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소라방이라 한다. 쭈꾸미를 잡는 전통의 방식인데, 소라방을 바다에 풀어놓으면 빈소라 속이 제집으로 알고 들어가 있다가 잡힌다. 강제로 빼내려 하면 쭈꾸미가 상하기에, 바닷물보다 더 진하게 소금을 풀어 넣으면 소라 밖으로 쭈꾸미가 나온다. 쭈꾸미의 생태를 이용한 지혜로운 ‘소라방잡이’다.

태양광발전소에서 우측으로 돌아 죽도 쉼터를 지난다. 때 이른 코스모스가 바닷바람을 등대고 다투듯 요란하게 인사를 건넨다. 날이 청명해서인지 색이 더 짙었다.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가을을 만난다. 

제3조망쉼터를 향해 대나무숲 언덕길을 올랐다. 길은 도드라지게 하얗고, 숲은 더 요란하게 울어댄다. 이 낮은 봉우리의 이름은 당산(堂山)을 의미하는 ‘담깨비조망대’로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위해 당제를 지냈다. 전망대에서 사방이 일목요연하다.

아직 바닷길이 열리지 않은 큰 달섬과 작은 달섬 너머로 바다 건너 전도, 모도, 오가도, 명덕도 등이 바다 위 툭툭 뿌려 놓여있다. 저 섬들을 지나 천수만을 막고 서있는 안면도는 연무에 자취를 감추었다. 맑은 날이면 눈앞에 다가오듯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을...

아름다운 섬에 흠뻑 빠져 자꾸 발걸음이 더디다. 오전 11시에 들어왔지만, 충분히 섬과 대화를 나누다 느즈막이 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은 한층 여유롭다.제3조망쉼터를 나와 파도소리길로 접어든다. 바람에 쫓겨 내달린 파도는 죽도 바다 끝에 이르러 거칠게 숨을 토해내고 포말로 사라진다.

바다로 내려서면 건너편에 작은 섬 두 개가 있다. 밀물 때는 물이 차올라 작은 섬이었다가 썰물 때면 죽도와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큰 달섬과 작은 달섬은 아직은 물이 빠지지 않아서 바닷길이 연결되지 않았다. 뒷장벌 해변을 따라 제1조망쉼터로 가는데 해변에서 밀려가는 썰물의 빠짐이 눈에 들어올 만치 선명하다. 

죽도 본섬(옹팡섬)과 큰달섬, 작은 달섬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죽도 본섬(옹팡섬)에서 본 큰달섬, 작은 달섬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해안 데크를 따라 제1조망쉼터로 향한다. 온 섬에 가득하게 이울대는 시누대 소리는 꼭 바람이 불어와서만 내는 소리는 아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에도, 대숲에서는 소슬소슬 바람은 스스로 인다.

죽도의 시누대 소리는 그저 파도에 부셔져서 나고, 그저 아무러한 자리에서 자란 시누대끼리 부딪치면서도 난다. 고샅의 우거진 시누대 이는 소리에 걷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평정시킨다.

제1조망쉼터는 용이 물길을 이끈다 해서 옹팡섬이라 부른다. 마치 이곳에서 섬을 잡아끄는 기세라 이름도 안성맞춤이다. 또한 옹팡섬과 달섬이 연결되니 용이 물길을 내는 형국이 아닌가. 달섬을 바라보니 바닷길이 막 열리기 시작한다. 쉼터에서 해안으로 내려와 큰 달섬으로 향한다. 

죽도를 둘러싼 무인도 섬 중 큰 달섬과 작은 달섬이 죽도와 하루 두 번 하나가 된다. 물이 차 있을 때야 외로운 무인도지만, 물이 빠지면 외롭지 않은 섬이다. 눈앞에서 점점 열리는 바닷길을 따라 밟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옹팡섬과 큰 달섬은 타원형의 해안을 만들며 연결된다. 아름답다.

한 걸음씩 열리는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큰 달섬에서 작은 달섬으로 이어진다. 마치 징검다리가 놓이듯 떨어져 있던 세 섬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때를 잘 맞추면 죽도가 보여주는 자연의 위대함을 맛보게 된다. 오늘 죽도행은 11시에 들어와서 부러 여유를 부리며 물때를 맞추었다. 달섬에서 한참을 머물다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 시간이면 족한 길이었지만 4시간을 머물며 섬을 제대로 만끽하였다. 

제1전망대 해안데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제1전망대 해안데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하루가 뿌듯하고 마음이 맑다. 배를 타고 10분 만에 입도해서 몇 년짜리의 행복을 맛보았다. 4킬로가 조금 넘는 아름다운 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주었다. 

바다에 떠 있는 12개의 작은 섬,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 이따금 소곤대듯 바람에 우는 시누대길, 그리고 힘들지 않게 적당한 높이의 언덕길은 걷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때 이른 코스모스도 만나고, 어느 순간 지천에 가득한 개양귀비 꽃을 바라보며 도대체 지루할 틈이 없는 한없이 아름다운 길, 죽도의 길이다. 

◆죽도 가는 길
홍성군 남당항에서 홍주해운 ‘가고파호’가 주말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2시간 간격, 막배는 오후 4시 등 하루 5회 운항하고 평일에는 주말에만 운항하는 오후 3시를 빼고 하루 4회 출항한다. 단, 매주 화요일은 휴항하는데 국가공휴일과 겹칠시 정상운항한다.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푸른숲 2021-06-27 10:14:18
사진으로 글로만 봐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섬이네요.
가보고 싶은 섬 목록에 추가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바람잡는정교수 2021-06-27 09:40:35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나고 싶은곳 이네요

별림 2021-06-27 09:30:53
<걷는 자의 기쁨>으로 인해 제 버킷리스트 자꾸 풍요로워지네요~☆☆☆
다정한 벗님들과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과 함께 다녀 오면 참 좋을 여행지네요..
이 칼럼을 읽고 몰려들인파로 곧 명승지로 겁 거듭날까....그래서 변하면 어쩌나... 살짝 염려되기도 하네요~^^*

은혜숲 2021-06-27 09:26:33
하루 두 번씩 이름까지 어여쁜 달섬들과의 만나고 헤어짐이 또한 우리네 인생 속 사연인 듯 사색에 잠기게 되고 덤으로 펼쳐지는 환상의 아름다움에 저 역시 빠져들 듯합니다~♡♡♡

이혜림 2021-06-27 09:23:05
자유롭고 시원시원한 초록물결 시누대의 합창을 벗삼아 즐겁게 거니는 시누대섬 죽도로 여행할 날이 기다려지고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