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역대급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파는데…생필품은 무조건 ‘더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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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역대급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파는데…생필품은 무조건 ‘더 내려라’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1.06.18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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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샤’ 가격 인상에도 오픈런
프랑스보다 소비자가격 20% 높아
중고가 ‘빈티지 컬렉션’으로 변신
대형마트, 편의점업계는 ‘최저가 경쟁’
양극화된 소비 심리…“보복소비 커져”
명품 브랜드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섰다. 사진=연합뉴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섰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아요. 명품 가방 하나 사고 싶어도 맘에 드는 모델은 새벽부터 매장 가서 줄서야 하더라고요. 물건이 별로 없으니 사려고 하는 사람은 많고, 사려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 공급이 부족해지고 결국 가격 인상으로 도는 것 같습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결혼을 앞두고 예물로 명품을 구매하려고 한다는 한 예비신부는 “마음에 드는 명품 가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브랜드가 예쁜지,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또 언제 가격이 인상될 것 같은지에 대해 토론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에·루·샤’인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은 물론 프라다, 버버리, 셀린느, 디올, 구찌, 페레가모, 보테가베네타 등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가격을 인상했다. 통상적으로 많으면 1년에 한두 번 인상에 나서던 명품 업체들이 올해만 최대 다섯 차례 값을 올렸다. 이는 명품 본거지인 프랑스보다 국내 평균 소비자가격이 20%나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확인된 명품 가격 인상만 해도 샤넬 4번, 에르메스 2번, 루이비통은 7번에 달한다. 더군다나 샤넬과 루이비통이 조만간 다시 한번 가격 인상이 될 것이라는 ‘썰’이 돌고 있다. 해당 소문이 커뮤니티 중심으로 돌자 전국 샤넬 매장에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 진풍경이 일기도 했다. 

끝을 모르는 가격인상에 “한국 소비자들이 호갱(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백화점 측은 “아직도 없어서 못 판다”는 입장이다. 새벽 2시부터 줄서는 것은 물론, 명품을 사기 위해 전날 도착해 명품관 앞에 텐트까지 치며 밤을 새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고 가격이 신제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현상까지 생기고 있다. ‘스테디셀러’나 ‘리미티드 에디션’ 등은 오래되어 더 가치가 있는 ‘빈티지 컬렉션’으로 탈바꿈해 더 비싸게 팔리는 실정이다.

실제 국내 명품 사랑은 상상 이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57.5%로, 패션·잡화 21.3%보다 압도적으로 늘었다. 지난 3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89% 늘었다. 전 세계 명품 매출은 전년 19% 감소했지만,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약 15조 원으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전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다.

‘명품계의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는 지난해 국내 매출 4190억 원, 영업이익 1333억 원으로 전년(각각 3618억 원·1150억 원) 대비 각각 15%, 15.9% 증가했다.  

이같은 소비 흐름은 2분기 백화점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될 전망이다. 1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은 올해 2분기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성장할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명품 매출을 기반으로 호실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허제나 카카오페이증권 연구원은 “명품 매출 고신장이 전 사 성장을 견인하며 백화점 매출 회복세가 예상 수준을 월등히 웃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생활밀착형 소매점은 아직 최저가 경쟁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타 대형마트보다 저렴하게 가격을 설정해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경쟁적인 서비스를 두 달이 넘도록 계속하고 있다. 

쿠팡은 별도 신청 없이 로켓배송, 로켓와우, 로켓직구 표시가 붙은 모든 상품에 적용해온 무료 배송 이벤트를 지난달 말 종료했지만,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쿠팡과는 별개로 당분간 가격 서비스를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마트는 지난달 13일 최저가 보상 대상 상품 수를 500개에서 2000개로 확대하며 소비자 사로잡기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이마트 측은 최저가 보상제도를 도입한 직후 한달만에 하루 평균 395명이 적립을 받았으며, 지난 달 말 기준으로 이머니 가입자 수가 48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저가와는 거리가 멀었던 편의점업계도 PB를 앞세워 최저가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통합 PB ‘헤이루(HEYROO)’의 자체 라면은 다섯 봉지에 1900원이다. 봉지당 가격으로 따지면 기존 편의점 봉지라면 평균가의 1/4 수준인 380원으로, 업계 최저가다.

380원짜리 봉지라면은 CU가 판매하고 있는 전체 상품 중 츄파춥스(250원), 트윅스 미니 초콜릿(300원)에 이어 3번째로 낮은 가격이다. 요리 부재료로 사용되는 라면사리(400원)보다도 20원 저렴하다.

이마트24 역시 지난 2019년 출시한 민생라면의 반응이 좋자 민생커피, 민생감자칩, 민생도시락김 등 기존 제품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 다양한 민생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민생 시리즈 매출은 전년 대비 185%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명품과는 별개로 소비자 생활과 맞닿아있는 제품들의 가격 경쟁은 당분간 지속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가 생활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키워 고객을 묶어놓아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지속으로 해외여행도 못가고, 쇼핑도 못하는 등 억눌려있던 소비가 한 번에 폭발하면서 보복소비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경기 자체가 좋아진 건 아니기 때문에 자주 사야 하는 물건은 가장 저렴하게 구매하고, 나중에 재테크로 활용할 수 있는 명품 등은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시욕구나 보여주는 것에 민감한 MZ세대들은 명품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유에서도 명품 소비가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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