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25가 쏘아올린 ‘손가락·파오차이’…유통가는 '살얼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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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가 쏘아올린 ‘손가락·파오차이’…유통가는 '살얼음판'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1.06.02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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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 주먹밥에 ‘파오차이’ 표기…CU·세븐일레븐 전수조사
‘손가락 모양’ 논란, 타 유통업계로 들불처럼 번져
BBQ·이마트24 등 기업들 포스터 수정하고 사과문 게재
“해석 여지가 다양한 사안에도 무작정 불매운동은 지양해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GS25가 '스팸 계란 김치볶음밥 주먹밥'을 중국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GS25가 '스팸 계란 김치볶음밥 주먹밥'을 중국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편의점 GS25에 잇따라 악재가 겹치면서 유통가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 GS25의 홍보 포스터에 담긴 손가락 그림이 ‘남성 혐오’ 논란을 촉발하더니 이번엔 주먹밥 재료로 사용된 김치를 중국어로 ‘파오차이’라고 표기해 또 한 번 소비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는 우연히 GS25가 연달아 타격을 받게 된 것일 뿐, 또 무슨 논란이 소비자의 심기를 거스르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케팅팀과 홍보팀을 비롯한 조직원들 모두가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우리 기업도 컨펌(확인) 받은 홍보물들 전부 다시 확인 중이다’, ‘위에서 2030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카페에 가입하라고 했다’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오차이 논란’ GS25, 편의점 업계 불똥

GS25가 남성 혐오 포스터로 곤욕을 치른데 이어 자사 ‘스팸 계란 김치 볶음밥’ 주먹밥을 중국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로 표기해 논란에 휩싸였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GS25에서 판매 중인 주먹밥 제품 설명에 김치의 중국어 표기가 파오차이(泡菜)로 돼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실제 해당 제품에는 영어와 일본어로는 김치의 독음 그대로 ‘Kimchi’, ‘キムチ’라 적힌 반면 중국어로는 ‘泡菜’로 표기돼 있었다.

파오차이는 중국의 절임 음식으로, 중국에서 ‘김치는 파오차이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한·중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 쓰촨성에서 유래한 절임채소인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표준 인가를 받았다고 보도하며 “중국이 김치산업의 국제표준이 됐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중국의 무리한 역사‧문화 왜곡에 대한 반감 정서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중국이 한국 역사를 왜곡하는 주요 사례 중 하나인 파오차이를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앞서 CJ제일제당(‘비비고’), 대상(‘종가집’·‘청정원’), 풀무원 등 국산 김치 생산 기업도 파오차이 표기로 뭇매를 맞았다. 김치를 중국 현지에 수출할 때는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GB)제도에 따라 파오차이라고 표기해야만 한다. 규격을 따르지 않는 제품은 판매·유통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들을 불매운동 하겠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논란이 커지자 GS25 측은 이날부터 전국 매장에서 ‘스팸 계란 김치볶음밥 주먹밥’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실제 편의점에서 해당 제품을 구매하려고 하면 매장 근무자가 볼 수 있는 결제창에 “‘김치에 대한 외래어 표기’로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매대에서 상품을 제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뜬다. 

GS리테일 관계자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상품 라벨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 제품명을 병행표기하고 있었다”며 “고객의 의견을 수렴해 상품 판매를 중단했으며, 외국어 제품명 표기를 개선한 상품은 4일부터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CU도 비상이 걸렸다. 세븐일레븐은 전날(1일) 모든 품목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일부 상품에 파오차이 표기가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파오차이 표기가 확인된 제품은 즉각 생산 중단에 들어갔다”며 “다음주부터 표시 사항을 정정해 재생산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CU는 2018년 전 상품 패키지를 전면 리뉴얼한 이후 제품 설명에 외래어는 영어만 사용하고 있다. BGF리테일 측은 중국어로 표기했을 시 부정확한 오역이 있을 수 있으며, 국민 정서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로 병기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랭킹닷컴은 지난 달 25일
랭킹닷컴 제품 닭가슴살에 삽입된 손가락 모양 디자인.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유통가, ‘손가락 모양’ 없애기 비상

그런가하면 유통가는 ‘손가락 모양’ 없애기에 비상이 걸렸다. GS25로 촉발된 ‘남성 혐오’ 논란이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것. 

GS25의 ‘집게손가락’ 논란은 지난 달 1일 캠핑용 식품 판매와 관련된 홍보용 포스터를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포스터에는 구워진 소시지를 집으려는 형태의 손 모양이 담겼다. 

포스터 공개 직후,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해당 손가락 모양이 여성 중심 커뮤니티 메갈리아 등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를 비하할 때 쓰는 것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엄지와 검지로 길이를 재는 듯한 해당 이미지는 한국 남성 성기 길이가 작다는 ‘소추(작은 성기)’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또 포스터에 적힌 ‘Emotional Camping Must-have Item’라는 문구의 각 단어 마지막 알파벳을 거꾸로 읽으면 ‘megl’이 되는데, 이는 ‘메갈’(magal)을 뜻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잇따른 논란에 GS25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거듭 해명했으나, 결국 해당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와 마케팅 팀장은 징계성 인사 조치를 받았다. 

해당 논란이 촉발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유통·식품업계는 아직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성 혐오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분노가 사그러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BBQ, 농심, 오비맥주, 교촌치킨, 이마트24 등 업계 전반으로 이어졌고, 기업들은 줄줄이 홍보물 이미지를 수정하고 해명 입장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닭가슴살 플랫폼 랭킹닷컴은 최근 손가락 모양 디자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에펨코리아, MLB파크 등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랭킹닭컴에서 판매 중인 ‘잇메이트 닭가슴살 소시지 청양고추맛’에 삽입된 삽화가 남성 혐오를 뜻하는 손가락 모양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랭킹닷컴의 타 제품들에는 손가락이 활짝 펴진 삽화가 삽입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은 홈페이지에 “잇메이트 제품으로 인해 불쾌감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실 집게손가락은 음식 등 제품을 집을 때 유통·식품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양으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젠더 갈등이 점점 심해지면서 손가락 모양은 물론, 알아채기 어려운 문구나 이미지들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유통업계 디자이너는 “꺼내는 제스처를 손가락 모양 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삽화 자체를 넣지 않기로 했다”며 “디자인 후에도 문제되는 부분은 없는지 (팀끼리) 서로서로 확인해주고 있는데 그래도 못 알아차리고 넘어갈까봐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달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달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에 찍혔다간 ‘남양 꼴’ 난다 

일부 소비자들은 ‘기업 측에서 의도한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한 반응이다’는 입장이지만, 유통업계는 그동안 제작해왔던 각종 홍보물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문제될 부분은 없는지 점검 중이다. 소비자에게 소위 '찍혔다'가는 기업이 주저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앤코에 매각된 남양유업이 대표적이다.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논란을 일으켰던 남양유업은 결국 ‘불매운동’을 피하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남양유업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과 디저트카페 등에 대해 정리한 게시글을 공유해왔다. 

또 남양유업 제품 불매를 위해 제품 바코드 번호를 입력하면 남양유업 제품인지 확인할 수 있는 ‘남양유없’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백미당’처럼 남양유업 사명과 로고를 지운 신규 브랜드를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듯 ‘불매 운동’은 유통기업이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특정 기업에 논란이 생겼을 때 그 기업을 무너지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단합력을 보여주는 국가가 없다”며 “일본 유니클로도 그렇게 잘나갔는데 ‘노 재팬’ 운동과 함께 한 순간에 쫓겨났다”고 말했다. 

특히 유통업계는 대부분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업종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면 실적과 평가에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10년 가까이 불매운동이 지속된 남양유업은 꾸준히 실적이 악화돼 2012년 매출 1조3650억 원에서 지난해 9489억 원으로 30.5% 줄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와 동조성이 강한 나라”라며 “소비자들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경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당사자가 소비자와 기업인 만큼, 소비자도 전체 경제가 잘 굴러가는 범위 내에서 권리를 행사해야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도 개인적 입맛에 맞춰 불매운동을 펼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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