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㉚ 캐릭터 산업의 탄생(중)-미키 마우스의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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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㉚ 캐릭터 산업의 탄생(중)-미키 마우스의 선배들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5.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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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영원한 배우’ 캐릭터
미키 마우스 탄생에 영감을 준 미키 마우스의 선배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현대 캐릭터 산업도 그렇지만, 캐릭터 산업의 가장 중요한 본체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가상의 존재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끈 예가 없지는 않았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소설의 등장 인물들이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면에서 20세기 초반 신문 만화는 현대 캐릭터 산업이 탄생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요인은 연재 형태라는 신문 만화의 특성 상 가상의 존재인 캐릭터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캐릭터에 가장 필수적인 속성인 ‘친근함’을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거기에 스트립 (strip)이라는 일종의 컷 형태로 대화와 그림을 함께 전달하는 신문 만화의 형식은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2D적인 그림에 불과한 캐릭터들에게 사람과 같은 ‘성격’과 ‘개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영국의 성공적인 신문 만화가 윈저 맥케이의 ‘리틀 네모(Little Nemo)’에서 시작된 신문 만화의 애니메이션 화는 이러한 신문 만화의 인기를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접목하려는 시도로 발전했고, 이 현상은 지금도 인기 있는 만화나 웹툰을 영상화 하려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키 마우스의 선배 격인 캐릭터 ‘고양이 펠릭스’. 이 이미지는 현대적으로 재 탄생한 이미지로 처음 출시때와는 모습이 많이 틀리다. 사진=위키피디아.
미키 마우스의 선배 격인 캐릭터 ‘고양이 펠릭스’. 이 이미지는 현대적으로 재 탄생한 이미지로 처음 출시때와는 모습이 많이 틀리다. 사진=위키피디아.

애니메이션 산업의 태동

‘Little Nemo’의 성공으로 미국을 중심 현대 애니메이션 산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여전히 아트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1910년 들어 대형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들어서면서 실험적인 아트보다는 상업적 흥행을 노린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913년 캐나다 출생의 만화가 라울 바레는 애니메이션 각 장면의 그림에 구멍을 뚫고 이를 고정하여 애니메이션의 원화(原畵)를 그리는 일명 페그 시스템을 발명했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빠르게 원화를 생산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바레는 191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바레 스튜디오를 설립한다.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 스튜디오라 할 수 있는 바레 스튜디오에서 그는 당시 인기 신문 연재 만화였던 ‘Mutt and Jeff’의 각색 제작을 해낸다. 바레 스튜디오는 이후 애니메이션 시장을 끌어갈 많은 애니메이터를 배출하기도 했는데, 프랭크 모저 감독이나 그레고리 라 카바 같은 실사 감독들도 배출하기도 했다.

투명 셀룰로이드 시트에 그림을 그리는 일명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만든 존 브레이 역시 이 시기 브레이 프로덕션이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한다.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의 혁명이라 불리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은 애니메이션 제작 기간을 극적으로 단축시켰다.

이로 인해 애니메이션 산업의 패러다임은 극명하게 바뀌었고, 더 이상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평가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적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자, 많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물들이 애니메이션 산업에 주목했다. 그 중에는 당시 신문 업계의 거물인 윌리엄 란돌프 허스트도 있었다. 

초기 애니메이션 산업의 선구자들. 좌측에서부터 라울 바레, 존 브레이, 윌리엄 란돌프 허스트. 사진=위키피디아.
초기 애니메이션 산업의 선구자들. (왼쪽부터)라울 바레, 존 브레이, 윌리엄 란돌프 허스트. 사진=위키피디아.

미키 마우스의 선배들

20세기 초반 미국 저널리즘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로 기억되는 허스트는 지금도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인 허스트 커뮤니케이션의 설립자이며 일명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표현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현대 저널리즘의 기틀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신문 만화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전환되는 과정에 큰 흥미를 가졌다. 신문 재벌이었던 그는 자신의 신문 만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하기 위해 1916년 ‘인터내셔널 필름 서비스’를 만들었다.

비록 허스트의 친독 성향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문제되며 2년만인 1918년 스튜디오의 문을 닫기는 했지만 ‘크레이지 캣(Krazy Kat)’이라는 걸출한 결과물을 남겼다. 

Krazy Kat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벽돌 던지기. 사진=위키피디아.
Krazy Kat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벽돌 던지기. 사진=위키피디아.

고양이를 의인화한 이 신문 만화 원작의 캐릭터인 Krazy Kat은 이른바 동물 의인화 캐릭터의 선조격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다. Krazy Kat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문 만화로서 인지도가 높은 탓이기도 했지만, 허스트라는 거물이 개입되면서 상대적으로 마케팅이나 홍보가 잘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Krazy Kat의 성공은 인간 배우와는 달리 늙지 않고 영원히 그 모습을 유지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연작 시리즈 물로서 애니메이션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

다음 해인 1919년에는 팻 설리반 스튜디오에서 고양이를 의인화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데, 이 애니메이션이 바로 ‘고양이 펠릭스 (Felix the Cat)’이다. 100년이 지난 현재도 패션 캐릭터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이 고양이 펠릭스는 ‘머천다이징’이라 불리는 캐릭터 상품화가 진행된 최초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고양이 펠릭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Felix the Cat’ (1919). 출처: 유튜브.

‘Krazy Kat’이나 고양이 펠릭스’등은 어떻게 보면 미키 마우스의 선배이자 미키 마우스가 탄생에 큰 영감을 준 캐릭터들이다.

이들 캐릭터의 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은 영화 산업 못지 않은 성장세를 거듭할 수 있었고, 재능 많은 젊은 인재들이 애니메이션 산업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인재들 중에는 이 시기 이 시기 구급차 운전사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18세의 월트 디즈니도 있었다. 옛날부터 스케치나 만화 그리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쉬는 시간이면 만화를 그리며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웠고 이들 ‘선배’들의 성공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  

월트 디즈니는 종전 후 곧바로 캔자스 시티로 돌아와 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기로 하고 Pesmen-Rubin 스튜디오에 도제로 들어간다. 앞으로 100년 넘게 전 세계 미디어-콘텐츠 시장을 호령하는 디즈니 왕국의 여명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계속)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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