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추억여행①…다시 가본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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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추억여행①…다시 가본 영국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1.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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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맛과 풍취가 최고의 관광자원…한국의 대표음식은 뭘까?

[조병수 프리랜서] 지난해 5월 하순, 온 가족이 함께 영국항공(BA)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기대에 부풀어 들뜨게 되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젊은 시절에 살던 영국 땅을 다시 보러 가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내도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았다.

32년 전, 갓 돌이 지난 젖먹이 아이를 안고 앵커리지, 파리를 거쳐서 돌아가야만 하던 그 길을, 이제는 그 아이의 동생까지 함께, 그 절반의 시간에 런던으로 직행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으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10년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눈앞에 다가오는 영국의 그 강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유아기를 그곳에서 보낸 큰딸은 “아주 어릴 적 일이라 사진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고, 그저 한두 장면만 기억될 뿐”이라고 하던 곳이다. 둘째도 엄마 아빠 이야기 중에 흔히 나오는 영국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언젠가 같이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이런저런 사유로 차일피일 미루어지기만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딸들이 “더 늦기 전에 가족여행을 같이 다녀오자”고 발벗고 나섰다. 그리하여 열흘 정도의 여정으로 ‘30년만의 추억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런던 히드루 공항 인근 상공> /사진=조병수

런던에 가까이 도착할 즈음, 비행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그 깔끔하게 정돈된 녹색의 산하(山河)는, 그 엣날 내 마음 속에 각인되었던 그 색깔, 그 느낌 그대로였다. 끊임없이 밀려오던 야근과 묘한 긴장감, 런던금융시장의 빅뱅과 블랙 먼데이라는 금융시장의 큰 혼란, 그리고 그 후유증에 휩싸이던 시절이었다.

3년 4개월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을 때,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조금 전까지의 일도 마치 먼 옛날의 일같이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보이고, 싹 지워져 버리는 느낌을 받았던 그곳이었다. 그런데도 세월이 흘러 다시금 그 상공에 다다르니, 왠지 모르게 푸근한 느낌과 함께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히드루(Heathrow)공항도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없었던 터미널 5에서 내렸다. 렌터카를 끌고 거리로 나서자 말자 바로 라운더바웃(roundabout:이하’로터리’)이 나왔다. 우리와는 다른, 오른쪽 운전대에 왼편통행방식이라도 운전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이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오른편에서 거침없이 밀려드는 차들을 계속 기다리고 서있으려니까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다음 차가 조금 떨어져 오는 틈을 타서 로터리로 진입하였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내차가 서있을 줄로 알고 달려오던 상대편 차들이 깜짝 놀라며 주춤거렸다.

그제서야 옛적에 영국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할 때 들었던, “로터리에 먼저 진입한 차량이 우선”아라든가, “물 흐르듯이 흐르는 다른 차들의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한마디로, 주행중인 차가 브레이크를 밟게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원래 도착하자말자 공항과 윈저성(Windsor Castle) 사이에 있는 호텔에 먼저 체크인을 하고 난 후 윈저지역을 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호텔부근까지 거의 다 와서는, 로터리에서 엉겁결에 그만 윈저 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버렸다. 다가오는 차들에 신경을 쓰느라, ‘내비’가 말해주는 그 “몇 번째 출구” 를 잘못 계산한 것이다. 바로 눈앞에 호텔을 두고도, 속절없이 그날의 일정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또 한번은 밤늦게 버밍험 인근의 호텔을 찾아가다가, 또 그 “몇 번째 출구”를 잘못 찾아나가는 바람에 목적지를 바로 1km정도 남겨놓고도, 또다시 왕복 10km정도의 고속도로를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한 3~4일을 지나서야 ‘차라리 내비 말보다는 예전처럼 지도와 도로표지판의 도로번호를 보면서 제대로 찾아나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그제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보내며 다시 살펴 본 영국은, 과거에 비해서 몇 가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첫째, 도심지의 유동인구와 관광객이 엄청 많아졌다는 점이다. 주말에 런던시내 주요 관광명소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통행하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특히 국회의사당의 빅밴(Big Ben)과 웨스트민스터 다리(Westminster Bridge)가 있는 템스강 인근 인도에서는 몰려있는 인파에 밀려다녀야 할 정도였다. 관광버스와 승용차, 유람선 등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마도 유럽통합, 해저터널 연결 등으로 여행객들이 많아진 때문인 듯 했다.

둘째, 거리나 주택가의 차량들이 많이 고급스러워졌고 대형화된 것이 눈에 띄었다. 1,000cc정도의 허름한 소형차 지붕에 트렁크를 얹고 다니던 옛 시절 그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중·대형 외제차가 거리를 메우며 굴러다니는 것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가렛 대처 수상시절 ‘총파업이니, 시위대에 고무총알을 사용했다’느니 하던 뉴스가 TV에 오르내리던 그시절의 영국의 경제가, 그 동안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30년 동안 1인당 GDP규모가 5배이상이나 커져서 4만6천불(2014년도기준)을 웃돈다니 그럴 만도 했다.

셋째로는, 영국식당의 음식들이 대체로 맛있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런던의 중심가나, 관광명소나, 지방 소도시의 조그만 레스토랑이나, 음식값이 대동소이하며 크게 비싸지도 않았다. 최소한 내가 다녀본 곳에서는, ‘유명관광지라고 터무니없이 비쌀 것이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옛 생각을 하며 들러본 소호(Soho)지역이나 런던근교 주택가의 중국식 식당들에서는 여전히 조그만 그릇에 양도 적고, 맛도 별로이면서, 값만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흔히 ‘영국에서 먹을 것이라곤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밖에 없다’라는 말을 한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섬나라이니 생선은 많을 테고, 토지가 습하고 비옥하지 못해서 감자 밖에 생산할 것이 없으니 생선과 감자를 많이 먹는가 보다’라고 쉽게 생각하였다.

나중에 보니, 주재료인 생선은 영국에서 많이 나는 대구를 주로 하다가 지금은 가자미, 넙치, 명태와 같은 흰살생선을 다양하게 사용한다는데, 감자는 그게 아니었다. 남아메리카 안데스지방이 원산지인 감자가 신대륙을 발견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유럽에 처음 소개하였을 때는, 어두운 땅속에서 자라는 불경한 것으로 여겨지고, 비천한 음식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 계속된 흉작때문에 그 동안 기피하던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시앤칩스는, 1860년대 동유럽에서 이민 온 유대인 조셉 말린(Joseph Malin)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흰살생선과 감자칩을 튀겨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팔았던 것이 최초라는 설이 있다. 예전에는 길거리 음식취급을 받았고, 술집(Pub)에서는 술안주(pubfood)의 하나였으며, 점차 음식의 고급화 추세를 거치며 주요식당의 메뉴로도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위생규정에 제약을 받기 전에는 신문지에 피시앤칩스를 싸서 주는 것이 유행했었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뉴욕 맨해튼의 월돌프 아스토리아호텔 옆 영국성공회 교구교회 St. Bart’s 에 있는 식당에서, 조그만 바구니에 신문지 같은 종이를 깔고 피시앤칩스를 내오길래 의아해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영국의 ‘전통방식’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지난날 사무실이 있던 시티(the City)의 길드홀(guildhall)근처 카페테리아에서 자주 먹던 피시앤칩스 맛을 생각하며, 런던 도착하는 날부터 들르는 식당마다 그 요리를 시켜보았다. 곳에따라 조금씩 스타일은 달랐지만 그 노릇노릇하고 정갈한 맛들이 일품이었다. 세월 따라 요리도, 내 입맛도 많이 변했겠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라는 것이 바로 이런 맛이었구나'하는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한 친구가 나의 여행소식을 듣고는 “어때, 영국이 물가가 비쌀 텐데 식사는 잘 하셨는지요? 혹시 피시앤칩스로 때우시지 않으셨는지?”라는 안부문자를 보내왔길래,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 졌더라, 그 요리 뿐만 아니라 스테이크(steak)도. 지역별 편차도 적고, 자연환경과 매너도 변함없었음.”

▲ <런던 템스 강변 Pub, The Prospect of Whitby의 피시앤칩스> /사진=조병수

영국의 피시앤칩스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면서, “한국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음식은 무엇일까?”를 잠깐 생각해보았다. 지난 달,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성장한 중년의 사업가를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완전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그 사람이 “한국에 출장 올 때마다, 종로3가역 부근 골목의 식당에서 굴보쌈을 서너 번씩 먹고 간다”고 하면서, 좁은 골목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맛집 정보를 통해 알게 된 식당인데,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보쌈을 먹어보지 못했다"며 큼직한 손으로 한웅큼씩 쌈을 싸서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더 ‘우리 것’을 더 잘 알고 더 좋아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분의 한국인 DNA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맛과 풍취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의미가 있겠구나.’

글로벌 시대에는 문화의 상호교류가 중요하다고 한다. 곳곳에 퓨전음식이 난무하고 쭈꾸미 볶음조차 치즈를 뿌려먹을 정도로 식성들이 변하고 있지만, 비빔밥, 설렁탕 하나라도 겉멋이 아닌, 우리고유의 맛과 풍취를 지키면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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