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 so! 베를린] 독일의 "멈춤"이 주는 복지
상태바
[Ach so! 베를린] 독일의 "멈춤"이 주는 복지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 승인 2021.05.20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침묵하는 시간' · '일요일 영업금지' 전통 가진 독일
일요일엔 잔디도 못갂아...평일 낮 1~3시에도 소음내면 안돼
노동자도 쉬고, 이웃도 쉬어야 하는 시간...'방해 금물'
처음엔 불편했지만 익숙해진 뒤 "이웃에 대한 배려" 깨달아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5월은 만개한 봄을 느끼기에 최고인 달이다. 한국에서는 5월이면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해 초여름 느낌이 날 때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북위도가 52도인 베를린은 이제야 매일 섭씨 15도가 넘는 봄을 만끽한다. 봄에는 늘 급하게 자라나는 잔디로 어느 가정이나 가든이 있는 경우 주말에 잔디깎는 소리가 요란하다. 

처음 낯설었던 '독일의 봄'

2013년 봄 ‘독일’이란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이방인이었던 필자의 눈에 독일이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확연하게 차이나는 것은 “침묵하는 시간(Ruhezeiten)”과 “일요일 영업금지(Sonntagsruhe)”였다.

일요일이 되면 모든 것이 멈추어버리는 독일의 생활방식은 24시간 쉼없이 돌아가던 서울의 삶을 살다 온 필자에게 매우 낯설었다. 영국에 살 때도 슈퍼는 일요일에 문을 열었건만 독일은 일요일에 슈퍼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요일에 잔디를 깎으면 이웃집에서 득달같이 쫓아온다. 그 때부터 외국인에 대한 독일생활수칙 교육이 시작된다. 

독일은 주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토요일 밤 10시 이후부터 월요일 아침 6시까지(34시간) 조용히 지내야 한다. 일요일에 시끄러운 음악을 틀거나, 파티를 하거나, 개가 시끄럽게 짓도록 놔두거나, 또는 잔디 깎는 기계나 드릴 기계 등을 사용하면 안 된다. 법적으로 평일날은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조용해야 하지만, 일요일은 아예 하루 종일 조용히 해야 한다. 음악소리는 35데시벨(dB, 조용한 공원 수준, WHO 침실기준) 이하여야 한다. 아이울음소리는 괜찮지만 개짖는 소리는 규제대상이다.                    

독일에서는 일요일에는 잔디깎기 활동을 하면 안 된다.
독일에서는 일요일에는 가사일로 잔디깎기를 하면 안 된다.

밤과 주말에는 "멈춤" 생활을

필자도 2013년 늦은 봄 잔디를 깎다가 뒷집 파키스탄출신 할아버지의 경고를 받았다. 독일에서는 일요일이나 국경일에 시끄러운 기계를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의욕적으로 잔디를 깎고 있던 외국인에게 참으로 당황스러운 경고였다. 그래서 평일날 남편이 출근한 틈을 타 열심히 잔디를 깎고 있는데 또 그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주중 오후시(13시)에서 오후 3시(15시)는 “오후침묵시간”으로 이 시간도 주택가의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으니 기계를 돌리면 안된다는 지적이었다. 그 날 이후로 잔디깎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독일에 도착한 첫 주 일요일 슈퍼가 문을 열지 않아서 밥 사먹으러 돌아다닌 경험은 참으로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물론 레스토랑은 법적으로 일요일 영업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일요일은 그야말로 어느 누구나 하는 일을 “멈추어야” 하는 날이다. 사무직군인 사람이나 육체노동자나 모두들 가정과 함께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일요일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휴일”인 것이다. 이런 독일의 모습은 언제부터였을까?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야간 통행을 봉쇄하다가 완화했다. 보통때도 야간과 주말에는 "멈춤"의 시간으로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사진은 코로나10 대유행으로 한때 통행을 제한하던 베를린 광장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독일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야간 통행을 봉쇄하다가 완화했다. 보통때도 야간과 주말에는 "멈춤"의 시간으로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사진은 코로나10 대유행으로 한때 통행을 제한하던 베를린 광장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익숙해지니 보이는 가치 "배려" 

“일요휴일제”의 역사는 짧지가 않다고 한다. 19세기 이전에는 기독교국가의 영향으로 주일예배를 지키기 위한 의미가 컸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심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요일 노동이 심화되자, 노동인권보호차원의 사회정책 차원에서 법제화되었던 것이다. 19세기말인 1891년 6월 1일 빌헬름2세 때 채택된 영업조례개정을 통해 도입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몇 년간 경험한 필자의 느낌상 처음에는 이러한 독일의 노동서비스 규제가 “불편함”이었다. 이것도 하지말라, 저것도 하지말라, 아니면 적어도 하게는 해주는 척하면서도 온갖 제한을 붙여놓았기에 내 맘대로 하기 전에 늘 조심해야 했다. 알아보고 혹시나 이것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웃에게 해가 되지 않는지 한 번 더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제약의 틀을 받아들이자 나름 수긍이 가는 부분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일상 생활에서의 소음제한 규정은 이웃을 위한 배려이며, 결국에는 나를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이웃이 휴일날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만큼 서로에게 배려하는 생활방식이 점차 익숙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존중받고 싶은 만큼 배려는 당연한 것이다. 노동자도 당연하게 모든 일요일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 일요일 장보기를 할 수 없기에 무조건 토요일에는 장을 보게 되는 생활습관이 생겼다. 일요일은 다 같이 쉬는 날인 것이다.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지난 1월27일 독일 아마존에 대해 일요일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출처 = ZDF.DE
독일 연방행정법원은 지난 1월27일 독일 아마존에 대해 일요일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출처 = ZDF.DE

한국도 '타인의 시간'을 지켜주나요?

독일 생활의 리듬에는 어느 순간 “멈춤”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당연하게 그 날은 서로를 귀찮게 하면 안 된다. 그 날은 사회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다. 한 번의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다면 모두에게 휴식이 있는 날을 가지게 할 수 있다. 

혹시 한국에서는 여전히 업무시간이 지난 뒤에도 직장 상사가 카톡을 보내거나 주말에 전화를 하거나 휴일날 같이 산행을 가자고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나의 일요일은 보장되어야 하지만 부하직원의 일요일은 존중되지 않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낮잠은 보약과 같지만 이웃의 낮잠은 인내되어야 할 시간낭비일까? 독일의 “멈춤”시간은 오늘도 타인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고 흐르고 있다. 그래도 사회는 돌아간다.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은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Ach So!는 '아하!` 라는 뜻의 독일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