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윤여정의 영어는 왜 특별할까
상태바
[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윤여정의 영어는 왜 특별할까
  •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 승인 2021.05.18 1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정한 영어실력, 유창성 보다 전달력이 관건...윤여정은 본보기
윤여정의 콘텐츠, '한국인'이라는 주체성과 함께 비판의식도 제시
'당당한 화자' 윤여정, 각고의 세월속 축적한 자신감과 내공 그 자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지난 4월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의 쾌거가 중요한 뉴스 거리였다.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수상 소감을 통해 접한 그녀의 영어 실력이었다. 그녀의 영어 실력이 매우 유창하고 화려해 보이지 않음에도 왜 특별한 화제 거리가 되었을까?

이미 많은 영어 전문가들이 그녀의 영어 실력 자체에 대한 언어학적 평가와 분석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영어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공명, 그리고 통쾌함을 주었는지에 대한 통찰과 분석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이 글에서 그녀의 영어 실력 이면에 깔린 사회문화적 배경을 들여다보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성찰해 보려 한다. 

영어 유창함보다는 콘텐츠 전달능력

첫째, 윤여정 배우의 영어는, 진정한 영어 실력의 근본은 유창성이 아니라 독창적 내용 전달력에 있다는 본보기를 잘 보여주었다. 

많은 영어 전문가들도 지적했지만, 그녀의 영어는 발음의 유창성과 문법의 정확성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한 내용을 재치와 유머 속에서 전달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그녀는 영어 발음이나 문법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기 분야 콘텐츠를 독창적인 내용을 담아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임을 보여주었다.

언어를 구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의사소통에 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표현할 수 있는 전달력이 관건이다. 유창한 발음과 문법적 정확성은 그 내용 전달력의 수준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궁극적인 결과가 아니다.

이 점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느 학자가 언어 교습이 이루어지는 교실의 모습이 사실 그 사회의 더욱 광범위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축소판(microcosm)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물론 사교육 현장에서도 영어 학습과 교육은 발음 훈련과 문법 학습과 개별 표현 습득 자체가 영어 수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런 수업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다보니 많은 학습자들이 자기만의 고유 콘텐츠 전달 능력이 언어 구사 능력의 본질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제 어느 곳에서든지 영어 교육이 화자 고유의 콘텐츠 전달 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튼실한 문법 실력의 기초와 유창성 훈련이 영어 전달력 훈련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 윤여정. 사진= 연합뉴스
배우 윤여정. 사진= 연합뉴스

윤여정의 영어는 한국인의 영어

둘째, 윤여정 배우의 영어는 '한국인 화자'로서 주체성 있게 영어를 구사하는 표본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학습자들이 시험이나 취직 등 당장의 현실적 목표의 압박으로,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습득한다는 기본적인 성찰의 기회도 없이 맹목적 기능주의의 폐해 속에서 영어 습득의 무비판적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느 학자가 “세계어로서의 영어는 가고 세계의 영어(혹은 세계를 위한 영어)의 시대가 도래했다(World English is out but world’s English is in)”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근간은 이제 획일화된 영어, 하나의 영어, 표준영어 시대가 가고 영어는 이제 ‘한국의 영어’ 혹은 ‘자기의 것을 표현하는 영어’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한국인으로서 주체성을 지키는 비판적 영어 학습과 교육 접근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세계화 시대의 언어문화 공간은 자국의 문화와 타자의 문화가 끊임없는 갈등과 경쟁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가 그 공간 속에서 세계에 드러내는 나의 정체성을 항상 새롭게 구성해 가는 능동적 주체임을 자각해야 한다. 즉 나와 나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타자와 타자의 문화에 대한 이해 및 이 양자에 대한 비판의식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윤여정 배우의 영어 구사 능력의 바탕에는 이런 주체성과 비판의식이 깔려 있고, 이것이 상대방에게 거부감 없이 당당히 표출된 것이 우리들에게 통쾌감을 주었다. 구체적인 장면으로, 시상 소감 초반에 외국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른 걸 나열하고 이렇게 '나를 그리고 한국 배우를 인정하여 상을 주었으므로 마음이 풀리고 기쁘다'는 뜻을 “You are all forgiven(다 용서가 됩니다)“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 표현은 생소한 외국인의 이름이라도 존중하고 정확히 발음하고 표기하지 못한 저들의 실수를 지적하고 세계 영화계에서 늘 다른 문화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서구 중심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동시에 한국 영화의 우수성과 개인 배우로서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준 점에 대한 고마움을 “You are all forgiven(다 용서가 됩니다)“이라는 말에 담아서 매우 고차원적으로 전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영어가 참신하고도 통쾌하게 다가왔다.  

삶에 대한 당당한 태도, 당당한 화법으로 

셋째, 윤여정 배우의 영어 구사 능력에 비추인 그녀의 당당한 화법의 뿌리는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당당한 태도에 기초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는 그런 큰 무대 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까? 그녀의 당당함과 열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힘은 바로 자기 분야 실력에 대한 자신감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여정에 대한 당당함에서 온 듯하다. 

그녀가 시상 소감에서 가장 먼저 감사한 사람은 자신의 두 아들이었다. 그녀는 “I’d like to thank my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내가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준 두 아들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네요)”라고 말했다. 이혼 후 혼자서 수많은 배역을 소화하면서 아들을 열심히 키워야겠다는 각오와 의지를 다져온 것이 배우로서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음을 밝힌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은 여전히 그리 떳떳하고 좋은 일이 아니다. 그녀가 얼마나 혼자 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생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운명이 배우로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 이 당당한 장면이 한국처럼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불이익과 서러움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 온 한국 여성들에게 더욱 특별한 공감과 통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 당당한 모습은 한국에서 시상식 때 흔히 많은 수상자들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준 감독이나 제작자등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진부함과 현저히 대비된다. 세계 청중들 앞에서 한국에서 온 이혼녀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내세운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우리 사회의 어머니들은 물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주는 공감과 공명이 지대했다.

중년층 영어배우기 열풍...자신만의 내공 축적해야 

윤여정 배우의 영어 실력이 화제가 된 후 한국 사회에서 중장년층에서 영어 배우기 유행이 일어나고 어학 관련 상품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변화가 한국 특유의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차가워지는 소위 거품과 냄비 문화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본인의 영어 학습 노력을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의 겉의 성과만 보지 그 뒤의 노력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명심하자. 윤여정 배우가 짧게 5분 동안 저 정도 수준의 영어 발화를 할 수 있기까지는 수 십 년에 걸친 노력과 내공이 있었음을. 또한 당당한 화자로서의 그녀의 뒤에는 오랜 세월 자기 분야에서 축적해 온 자신감과 자기 인생 여정에 대한 당당한 태도가 깔려 있다는 점을.

그녀는 또한 자기 분야의 일을 하면서 다양한 다문화간 접촉 환경 속에서 고급 수준의 영어 표현을 익히고 연습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을 것이다. 이렇듯 고급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은 하루아침에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기발한 영어 상품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발음과 문법과 표현을 단 기간에 습득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 학습 도구와 프로그램을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머리와 가슴 속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로 전환해서 축적해야 하고 그것을 꾸준히 외국인들과 다양한 접촉과 소통 속에서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표출하는 경험을 통해서 영어 구사 능력과 문화적 감수성을 함께 가꾸어 나가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 필자인 이창봉 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동 대학원 영어학 석사) 졸업 후 미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 박사(세부전공: 화용론(Pragmatics)) 학위를 받았다. 주로 조건절(Conditionals) 연구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최근에는 은유(metaphor)를 통한 인간 본성 탐구와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 연구를 해왔다. 영어와 미국문화 관련 글과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