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험한 시스템반도체 글로벌 톱으로 가는길...'지적재산권(IP)'확보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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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험한 시스템반도체 글로벌 톱으로 가는길...'지적재산권(IP)'확보가 관건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1.05.17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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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이후의 먹거리 '시스템반도체'
TSMC, 3만7000개 IP 보유 고객사만 500여곳
전세계 팹리스 상위 10곳 중 3곳 대만, 패키지테스트 1위 업체도 대만
“시작은 IP 확보”...TSMC가 아닌 대만 전체와 경쟁해야 하는 판
결국 인력 양성의 문제... 정부 계획, 구체성 부족
성윤모(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성윤모(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삼성전자가 TSMC와 인텔에 맞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부족한 설계 자산(IP)을 확보해야 해야 한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IP확보는 파운드리 뿐만 아니라 메모리와 팹리스를 아우르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요소다. 이를 위해 국내 반도체업계가 오랜기간 정부에 요구해온 '인력 양성 방안'을 요구했으나 정부의 정책에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낸드 플래시를 시작으로 D램도 중국의 기술 추격이 지속될 것”이라며 “지난주 K반도체 회의에서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생태계를 강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이런 맥락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보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 쉽게 추격하기 어렵다. 더욱이 메모리반도체와 같은 다목적 반도체가 아니라 필요 고객의 주문을 받아 생산한다. 사이클에 따른 경기변동의 영향을 적게 받고 전후방 생태계 파급효과가 큰 사업이다.  

문제는 기술 난이도가 높은 시스템반도체 특성상 세부 분업화가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메모리 반도체처럼 한 회사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고 성과를 내는 성공방식을 재현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예처럼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생산을 전담하는 파운드리, 이들 기업을 연결해주는 디자인하우스와 파운드리에서 나온 웨이퍼의 후공정을 담당할 외주 반도체패키지테스트(OSAT) 업체 등이 생태계를 이뤄야 한다. 

“시작은 IP 확보”...TSMC가 아닌 대만 전체와 경쟁해야 하는 판

지난주 ‘K반도체 전략보고 대회’에서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기 위해 171조원을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기존계획에 38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첨단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과 생산라인 건설에 쓴다는 계획이다. 

이날 SK하이닉스 역시 현재 보다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2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국내 파운드리 중심의 시스템반도체산업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IP확보 경쟁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대만의 경우 팹리스, 후공정, 파운드리가 TSMC를 중심으로 촘촘히 엮여 있다”며 “삼성전자는 TSMC가 아니라 대만과 경쟁하는 셈이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기준 글로벌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 중 3곳이 대만 기업이다. 같은 기간 반도체 제조에서 후공정에 해당하는 반도체패키지테스트(OSAT) 산업 역시 대만 기업 ASE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의 36%를 차지하며 1위 자리를 지켰다. 파운드리에서 TSMC, UMC 등을 보유한 대만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66%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대만은 ‘설계-생산-후공정’에 이르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 산업구조는 특정 분야의 선두기업과 후발기업간 기술 격차 축소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줄일 수 있다. 

TSMC와 인텔은 세계적인 IP 강자...아직 갈길 먼 삼성전자  

202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해 TSMC·삼성전자와 ‘3강’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 인텔 역시 ‘IP생태계’를 강조한다.

중앙처리장치(CPU)를 포함한 방대한 설계자산을 그간 인텔과 거래해온 수많은 고객사에 제공해 협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 고객사를 외부 파운드리로 빼앗기는 대신 자사의 IP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파운드리 고객사로 잡아두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를 위해 IP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대가 파운드리 사업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서비스업의 성격을 가진 파운드리 산업은 IP 라이브러리와 전후방 인프라가 고객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팹리스 업체가 제품개발을 준비할 때 파운드리 업체가 보유한 IP가 제품 개발을 단축하고 개발비용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며 ”ARM나 시놉시스와 같은 제3의 업체 IP를 활용할 경우 개발 과정 최적화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로얄티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TSMC는 3만5000개~3만7000개의 IP를 확보한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TSMC의 20~30% 수준의 IP를 보유한 상황이다. TSMC의 IP는 지난 10년간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 같은 IP확보는 파운드리의 고객사인 ‘팹리스’확보에 필수적인 요소다. TSMC는 고객사만 5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수주 물량의 50%가량이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 물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자체 IP를 활용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인 수많은 팹리스의 사례를 축적해 물량 수주에 활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결국 인력 문제...정부 계획 구체성 부족 지적

국내 팹리스 업계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오랜 기간 정부에 반도체인력 양성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다. 메모리반도체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와 팹리스까지 모두 ‘회로 설계’ 등 반도체 산업의 각 분야를 전공한 인재가 제때 공급돼야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국내 팹리스 업체 한 관계자는 “인텔이 리더십을 잃으면서 생긴 현상 중 하나가 인력이탈”이라며 “인텔에서 나온 전문 인력이 퀄컴, MS, 아마존 등으로 옮겨가 자체 칩 설계역량을 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핵심 수단은 인재확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며 2031년까지 반도체 산업 인력 3만6000명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 계획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는 1만5900여명의 학사급 인력 확보와 대학내 정원조정을 통해 10년간 관력학과 정원을 1500명 늘리는 등 계획을 공개했다.

반면 반도체 장비기업 취업을 조건으로 하는 계약학과를 설치할 5개 대학 등에 대해선 정해지지 않았다. 석·박사급 인재 양성에 대한 계획도 불투명하다. 향후 10년간 7000여명의 석·박사급 인력을 기른다는 ‘민·관 공동투자 반도체 공급인력 양성사업’에는 6개 기업이 참여한다.

이들 기업이 전체 예산 3500억원 중 절반을 부담하는데 이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앞서 정부가 현장형 시스템반도체 석·박사 인력 3000명을 배출하기 위해 '민관 연구개발 지원 사업'을 추진했으나 지난달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최종 탈락한 바 있다. 

한 국립대학의 반도체관련 학과 교수는 “정부는 오랫동안 반도체가 대기업의 산업이라며 지원을 소홀히 했다”면서 “아무리 대기업이어도 삼성이나 SK가 대학 정원을 바꿀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메모리든 시스템 반도체든 10년이상 장기적인 인재양성 계획 없이는 또 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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