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리더냐 중국 견제냐" 바이든의 깊어지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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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리더냐 중국 견제냐" 바이든의 깊어지는 고민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1.05.10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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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행정부,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지지 선언
미 제약업계 "원료부족 심화될 것...오히려 생산능력 떨어질 수 있어"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력 강화도 우려"
미 언론들 "바이든의 글로벌 리더십 복구 시험대"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방안을 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방안을 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힌 가운데 미 제약업계와 유럽 국가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백신 생산에 대한 노하우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백신'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리를 다시 확고히 다지겠다는 목표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 사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미 행정부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

앞서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코로나19 대유행의 특별한 상황은 특별한 조치를 요구한다"며 마찬가지로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 행정부 측의 이같은 행보에 많은 국가들과 단체들은 환호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 등 백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백신 접종 가속화를 통해 코로나19 감염률을 크게 낮췄으나 인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경우 최악의 코로나19 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등 격차가 극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백신 지재권 보호를 면제할 경우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다른 국가들도 같은 방식으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집단면역을 보다 빨리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신 지재권 면제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 제약업계 측 주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제약회사들은 이미 백신 생산확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신 특허로 인해 생산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부족 사태가 백신 생산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게시한 서한을 통해 "지재권 면제가 이뤄진다면 세계 각국의 제약사가 백신 생산에 뛰어들면서 화이자처럼 풍부한 노하우를 갖춘 기업들의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을 방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신 제조 경험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기업들이 원료 쟁탈전에 뛰어들면 정작 화이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필요한 원재료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령 백신 지재권 면제가 이뤄져 '백신 레시피북'이 공유된다 하더라도 이를 실제 생산으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건강관련 전문 매체인 스태트 뉴스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기술인)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을 이용한 백신들은 숙련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며 "전문장비를 갖춘 공장과 고도로 훈련된 직원, 엄격한 품질관리 등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레시피를 단순히 따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복잡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WTO 회원국 합의 쉽지 않을 듯

백신 지재권 면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다. 옹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미 행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퇴치를 돕기 위해 일시적인 지재권 면제 찬성에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실질적으로 WTO가 백신 지제권을 면제하기 위해서는 16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한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약 80개국이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인도 매체인 퍼스트포스트는 "이같은 종류의 지재권 면제는 단 한번도 통과된 적이 없다"면서도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례는 약 20년전인 2003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의 특허권 면제에 동의하고 빈국이 복제약 수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WTO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어어낸다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것이 실질적으로 코로나19 종식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스태트뉴스는 "전문가들은 WTO가 백신 지재권 면제를 승인할 경우 예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는 2022년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의 글로벌 리더쉽 회복 위한 포석

이같은 적지 않은 문제점 속에서도 미국이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다자간 지적재산권 조약을 위한 미국의 수석 협상가를 지낸 저스틴 휴스는 USA투데이 칼럼을 통해 "바이든의 결정은 글로벌 리더십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신 지재권 면제가 더 많은 생산을 이끌어내지 않을 것이고, WTO 회원국들의 만장일치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합의를 이루기 전에 대유행이 끝날 수도 있다"면서 "바이든의 이같은 정책 전환이 정치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TO 회원국들의 합의 도출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미국의 제약업계에는 큰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백신과 관련한 미국의 헌신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로렌스 고스틴 미국 조지타운대 오닐보건법연구소장은 "이것은 바이든에게 세계적인 리더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엄청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부 보건 전문가들과 국제 정치 분석가들 역시 "이번 결정은 바이든이 첫 3개월 동안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재확보하겠다는 비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바이든에게는 트럼프 행정부 시대에 잃었던 국제적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러시아 기술이전 우려도 극심

하지만 회의론자들은 이에 대한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우려가 중국과 러시아로 기술이 이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 백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은 mRNA 방식이 아니다. mRNA 생산기술이 공개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를 활용해 암이나 심장치료제 등 다른 의약품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불라 화이자 CEO는 mRNA 기술이 극적인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FT는 "미국의 행정부와 업계의 질의응답 문건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담겨있다"고 보도했다.

미 행정부와 기업들도 백신 지재권이 면제될 경우 미국이 현재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EU 주요 회원국들은 백신 재지권 면제가 아니라 미국의 수출 규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미국이 백신 지재권 보호 면제를 지지하고 나섰지만, 정작 미국은 백신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생산된 코로나19를 미국 밖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에 백신 뿐만 아니라 백신 원료 수출금지도 중단할 것을 분명히 요구한다"며 "빈국과 개도국들을 위한 백신을 더 빨리 생산하기 위한 핵심은 더 많이 생산하고 수출규제를 해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신 지재권을 놓고 각국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글로벌 보건정책센터 책임자인 스티븐 모리슨은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강력하고 고도의 정치적 문제에 접어들고 있다"며 "바이든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갖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전략이 무엇이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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