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친구라도 잡아라”…유통가는 지금 '할매·할배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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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친구라도 잡아라”…유통가는 지금 '할매·할배 전성시대'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1.05.03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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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오비맥주·지그재그 모델로
나문희, 강부자도 음식·뷰티 모델 됐다
탈권위·진심 어린 조언 등에 MZ세대 환호
지난 달 13일 온라인 의류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은 배우 한예슬을 이은 새 모델로 배우 윤여정을 발탁했다. 사진=지그재그 광고 캡처
지난 달 13일 온라인 의류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은 배우 한예슬을 이은 새 모델로 배우 윤여정을 발탁했다. 사진=지그재그 광고 캡처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저는요. 요즘 애들한테 해줄 말이 없어요. 미안해서요. 열심히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세상이 안 그래. 응원은 못 해줄망정 밟지는 말아야지. 부끄러운 줄 알아요!”

지난 달 27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에는 할아버지가 젊은 레스토랑 점장을 향해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대사는 SNS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70세가 넘은 어른이 나서서 젊은 층을 대변해주는 장면이 뭉클하다는 이유에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윤여정이 지난달 26일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받으며 던진 특유의 입담과 당당한 태도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기폭제가 됐다.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윤여정)",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나문희)", "과거를 가지고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고치려 들면 안 된다(신구)" 등 ‘쿨’하고 ‘힙’하면서도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며 멘토의 역할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출생)는 열광한다. '꼰대' 같지 않아 배울 점이 많다는 게 2030세대의 생각이다. 

이에 MZ세대를 핵심 타겟층으로 하는 브랜드들이 시니어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대부분 ‘젊고 날씬하고 피부도 좋은 여성’만을 모델로 삼았던 패션·화장품 업계는 물론 식음료(F&B) 업계도 7080 시니어 연예인을 브랜드 전면에 등장시키고 있다.

시니어, 광고계 ‘블루칩’으로

젊은 여성들이 주 고객층인 온라인 의류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는 최근 70대 배우 윤여정을 모델로 기용했다. 과거 의류 쇼핑 광고에는 소위 주먹만 한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모델이 등장해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지그재그 경우에도 이전 모델은 배우 한예슬이었다. 

하지만 젊은층의 ‘할매·할배’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에 다시 시니어 모델이 재부상하고 있다. 윤여정은 지그재그 광고를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옷 입는데 남의 눈치 볼 거 뭐 있니?”, “남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사”, “니네들 마음대로 사세요” 등의 대사를 툭툭 던진다. 

해당 광고는 일주일도 안 돼 유튜브 조회수 142만을 기록하면서 ‘대박’이 났다. 반응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직접 검색해서 보러 온 광고도 처음이고, 이렇게 광고에 감탄 댓글 다는 것도 생전 처음”, “옷 광고일 뿐인데 ‘니들 마음대로 사세요’라는 말에 왜 눈물이 나는지” 등 영상엔 지그재그와 윤여정을 칭찬하는 댓글로 가득하다. 

오비맥주 역시 새롭게 출시한 ‘올 뉴 카스’ 모델로 윤여정을 발탁했다. 주요 소비자가 남성인만큼 젊은 남성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했던 맥주 업계가 70대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쓴 경우는 이례적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생각을 망설임 없이 표현하는 윤여정을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자 카스의 브랜드 가치와 일치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CJ제일제당은 지난달 21일 MZ세대에게 호감도가 높은 나문희를 모델로 발탁하고 ‘햇반컵반’ 광고 ‘명탐정 컵반즈’ 신규 캠페인을 선보였다. 탐정이 된 나문희가 햇반컵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추리형 콘텐츠다. 

나문희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친근하고도 코믹한 할머니 나문희 역을 맡아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다. 해당 광고가 공개되자 유튜브 댓글에는 ‘문희찡’, ‘문희쓰’, ‘큐티뽀짝문희’ 등 나문희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캠페인 영상은 공개된 지 5일 만에 조회 수 60만회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밖에도 글로벌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리더스코스메틱은 지난 2월 강부자를 신규 캠페인 모델로 선정했다. 리더스코스메틱은 그간 중국 라이징 스타 덩룬(등륜), 국내 최정상 연예인 이승기 등을 모델로 발탁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국민배우 강부자를 모델로 선정하며 강부자가 승객 댄서들과 합을 맞춘 댄스와 랩을 선보이는 광고를 공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맥주 칭따오(TSINGTAO)는 지난달 2021년 광고 모델로 배우 김갑수를 발탁했다. 중년의 남성을 모델로 선정해 업계에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칭따오 관계자는 “김갑수는 중후한 멋과 친근함으로 중장년층에게 익숙할 뿐 아니라 ‘인싸갑’이라고 불릴 정도로 젊은 세대에게 트렌드의 아이콘으로 어필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모델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모델인 오비맥주의 '올 뉴 카스' CF(위쪽), 나문희가 모델인 CJ제일제당의 '햇반컵반' CF. 사진=각 사 광고 캡처
윤여정이 모델인 오비맥주의 '올 뉴 카스' CF(위쪽), 나문희가 모델인 CJ제일제당의 '햇반컵반' CF. 사진=각 사 광고 캡처

유튜브선 이미 핫한 시니어들

MZ세대들이 시니어 세대에 환호하는 이유는 공경과 존중의 대상이었던 어르신들이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권위를 집어던지고 젊은 세대의 현실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밀라논나’ 채널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패션 크리에이터 장명숙 씨의 “몫을 나누지 않을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말라”는 대사가 대표적 예다. 

지난 2018년 이순재가 등장한 맘스터치 광고는 과거 유행했던 보험 광고를 패러디해 인기를 끌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금 바로 전화하세요’ 등 수많은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행동이나 말 등을 모방해 만든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낸 이순재의 보험 광고를 그대로 오마주 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할을 맡은 김영철 역시 미군과의 협상과정에서 “사딸라”란 대사를 반복하는 모습이 인기를 끌었다. 이에 버거킹은 2019년 모델로 김영철을 발탁해 광고서 “사딸라”를 외치며 햄버거 가격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단순히 웃음과 재미를 유발하는 ‘밈 마케팅’이 없이도 시니어 모델이 그 자체로서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른 부분이다. 윤여정이 MZ세대로부터 환호를 받는 이유도 탈권위적인 태도와 전형적이지 않은 직설 화법 때문이다.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들다)’, ‘휴먼여정체(윤여정의 직설적이면서도 친근한 말투를 한글 프로그램 ‘휴먼명조체’에 빗댄 단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통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MZ세대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탈권위와 당당한 의견 표출, 자아존중 등을 중요시하는 요즘 젊은 층에게 ‘젊은 생각’을 가진 시니어 모델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도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시니어 모델들을 기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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