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규의 사기 안당하는 법] 사기 당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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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규의 사기 안당하는 법] 사기 당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대표변호사
  • 승인 2021.04.26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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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머리위에 있는 사기꾼...끌려가는 피해자
차용증, 다른 계약서 등으로 피해자 헷갈리게 만들어
'피해자들 모임'도 감정에 휩쓸려 냉정한 판단 못할 때도
'돈을 돌려받기 어렵다', '사기꾼이 더 똑똑하다'는 사실 받아들여야
류인규 변호사
류인규 변호사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대표변호사] 사기를 당했다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변호사부터 선임하면 될까. 물론 변호사 수임료가 부담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이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례를 하나 보자. 

A는 지인의 소개로 사업가 B를 만난다. 확실한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B의 감언이설에 속아 A는 거금 5억원을 투자한다. 

B는 매달 500만원씩 수익금을 지급해 주기로  했는데 4개월까지는 정상적으로 지급해 주다가  5개월째부터는 지급이 안되기 시작한다. A가 연락해 보니, B는 "거래처에서 입금이 늦어지고 있다. 거래처는 대기업 계열사이기 때문에 걱정 안해도 된다. 금방 해결될 것"이라며 A를 안심시킨다. 

A는  세달을 더 기다린다. B는 이제는 새로운 핑계를 댄다. "거래처의 담당자가 돈을 들고 튀었다. 그 놈을 잡으려고 고소까지 해 놨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A는 이제 B가 의심스럽다. A가 의심하는 것을 눈치챈 B는 "돈 들고 튄 놈을 못잡으면 내가 개인 돈으로라도 보상해 주겠다"며 차용증을 한장 건네 준다. A는 "차용증을 받아 두었으니 나중에 딴소리는 못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또 한번 기다리기로 한다.

차용증에 총판계약서까지 받아놨는데

다시 세달이 지났다. A는 더이상 B를 믿을 수 없다. 알고보니 주변에 자신과 똑같이 피해를 본 사람들이 3~4명 더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A는 변호사도 만나 보았다. 변호사는 "사기를 당한 것이 분명하니 빨리 고소하자"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 수임료가 만만치 않다. 사기를 당한 것도 분한데 수임료까지 지불하려니 너무 아깝다. 게다가 변호사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고소장을 작성하는 일 정도는 자기가 스스로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A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대신 다른 피해자들과 '피해자 모임'을 결성했다. A의 피해액이 가장 커서 A가 대표를 맡게 되었다. 피해자 모임은 B의 집 근처 커피숍에서 B를 만나 담판을 짓기로 한다. 

B는 과거와 달리 초췌한 모습이다. A와 일행들은  몇시간 동안 B를 몰아붙인다. B는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잘못했다. 고소하면 죄를 달게 받겠다. 감옥에서 5년이고 10년이고 죄값을 치르겠다"고 한다.  

A는 B를 몰아붙이면서 화풀이는 좀 했지만, "B가 이대로 구속되어 감옥에 가버리면 내 돈은 영영 못찾게 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A에게 중요한 것은 B를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한참을 고개숙이고 있던 B가 이런 말을 꺼낸다. "내가 강원도에 있는 광산의 독점 총판권을 3억원 주고 인수해둔 것이 있는데, 그동안 인허가 문제로 진행이 안되고 있었다. 이번에 인허가를 받았으니 조금씩이지만 돈이 나올 것 같다. 한번만 기회를 주면 안되겠냐" 

A는 솔깃하지만, 더이상 B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B에게 광산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B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면서 주말에 광산으로 오라고 한다. 

A와 일행들은 주말이 되자마자 B가 알려준 광산으로 향한다. 광산은 허름하지만 육중한 장비들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B를 본 직원들이 "이사님"이라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총판권이 있는 것 같다. B는 총판권 서류도 보여주었다. 서류에는 B가 3억원을 내고 총판권을 갖는다는 내용과 함께 광산 주인의 인감증명서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이때 A의 일행중 한명이 B에게 "돈을 못 갚으면 우리에게 총판권을 넘긴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 요구한다. A는 "역시 혼자 오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맞장구를 친다. B는 주저하는 것 같더니 "6개월 안에 원금을 못 갚으면 총판권을 피해자들에게 넘긴다"는 각서를 써 주었다. 

안심하고 집에 돌아온 A는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설령 B가 돈을 안 돌려주더라도 큰 광산의 총판권이 있으니 아주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잠시마나 총판권을 이용해서 큰 돈을 버는 상상도 해 본다. 

B는 역시 6개월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았다. 알고보니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고소해 구속되었다고 한다. A는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광산 총판권이 있으니 다행이다"고 생각하며, 광산 주인에게 연락한다. 

그러나 광산 주인은 "B는 총판계약을 하고 계약금만 낸 뒤, 잠수 탄 사람이다. 우리랑은 아무 관계 없다"고 말한다. A는 아차 싶어서 예전에 상담했던 변호사를 다시 찾아간다. 변호사를 통해서 알아보니, 먼저 고소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돌려받은 것 같다. 하지만 B는 이제 완전히 빈털털이여서 A가 돈을 회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사기꾼이 "나보다 더 똑똑하다"는 현실인식 필요

안타깝지만, A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계속해서 사기꾼에게 끌려다닌다. 도대체 왜 그럴까? 답은 현실인식이 안되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큰 돈을 잃었다는 자괴감과 어떻게든 돈을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어우러져 정확한 현실인식을 방해한다. 현실인식이 안되니 계속해서 오판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무엇일까? 현실은 이렇다.

첫째, 당신이 잃은 돈을 되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기꾼은 대부분 돈을 다 날려버려서 돈이 없다. 사기 당한 돈을 온전히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몰아붙여서 사기꾼이 배째라 해 버리면 내 돈은 영영 못찾는 것이 아닌가", "사기꾼이 구속되어 징역을 살게 되면 돈은 영영 못찾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사기꾼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이미 내 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아주 운이 좋아야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사기꾼은 당신보다 똑똑하다. 당신이 사기를 당한 이유는 사기꾼에게 속았기 때문이다. 사기꾼이 당신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위 사례에서 B가 차용증을 건네며 시간을 벌려 했을 때, 또는 B가 총판권 서류를 보여주며 A를 안심시켰을 때 변호사와 함께였다면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에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에 맞춰 판단하면 된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만 고민한다거나,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이나 선후배와 같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낫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기를 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돈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낮고, 사기꾼은 나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다"라는 잔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변호사 선임 보다도 현실인식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호사 선임 비용만 날리고  "변호사에게도 사기를 당했구나"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된다. 

● 류인규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시월의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며, 대학원에서 경제법을 전공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공인받아 다양한 경제범죄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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