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의 전쟁⑦…현대·롯데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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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의 전쟁⑦…현대·롯데 승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1.1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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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화국 비화> 5·8 조치, 법적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

5·8 부동산 특별조치가 발표된지 한달여 지난 1990년 6월의 어느날. 청와대 경제비서실 실무자들이 모여 5·8 조치 근거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정치적으로 기세 좋게 밀어붙였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도대체 법적인 근거가 뭐냐”는 재벌그룹의 항의에 부딛쳐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재무부·상공부·국세청·은행감독원등 관련 당국에서는 재벌기업들의 반발로 매각대상 토지에 문제가 보일 경우 저마다 꽁무니를 뺐다.

권력 교체기마다 개혁이니, 숙정이나, 청문회니 하면서 고위공직자들이 시련을 겪은 역사인만큼 미묘한 사안에 대해 공무원들이 총대를 메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심리 작용이 일어났다. 특히 정권이 2년밖에 남지 않았고 집권여당 내에는 차기 대권을 위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원만한 권력 핵심이 아니고선 5·8 조치의 책임을 질수 없는 여건이었다.

김종인 수석, 박운서·이환균 비서관등 경제비서실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래서 내놓은 법률안이 ‘기업의 부동샅 취득에 관한 여신운용법안’이었고, 그해 6월 정영의 재무장관은 이를 입법예고했다.

이환균 당시 경제비서관의 말이다.

“5·8 조치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체제 수호적 측면의 성격이 강한 조치였으므로, 다음 정부에서 문제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혹시나 청문회에 나가더라도 법적인 근거가 있음을 밝힐 필요가 있었지요.”

5·8 조치 입법화는 그 자체에 당위성과 문제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청와대가 통치권 차원에서 5·8 조치를 밀어붙일 때의 법적 근거는 은행 빚이 1,500억원 이상인 여신관리 대상 계열기업군(재벌그룹)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여신관리 규정이었다. 은행 빚이 많은 만큼 땅을 새로 사거나 신규 기업에 투자할 때 주거래은행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정해놓은 금융통화위원회 규정은 어디까지나 규정이었지 법률을 아니었다. 때문에 법적 정당성의 논란이 제기될 소지가 있었다. 이러한 법적 미비점을 이용, 기업이 소송을 걸었을 때 정부가 패소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었다.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5·8 조치 법률안은 ▲재벌그룹의 부동산 취득과 투자를 법적으로 금융기관이 제한하거나 사전 승인하고 ▲금융지원 중단, 연체금리 적용, 해당부동산 및 출자지분의 강제처분등 제재 조치를 취할수 있으며 ▲이 법률의 명령권은 재무부 장관에 있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한 반발이 금융계·재벌은 물론 정부부처 내에서도 나왔다. 시중은행에 행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은행을 준행정부 기관화해 5공화국 식의 관치금융으로 되돌아가는 처사이며, 금통위에 주어져 있는 은행의 여수신업무에 대한 감독권한이 재무부 장관에 일부 위임돼 여신업무의 감독권의 이원화를 초래할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이같은 논란 속에 금통위는 재무부에 이 법안에 대한 자문을 요청한데 대해 당초 6월 21일까지 답신을 보내려 하다 미루는등 반발했고, 재계의 건의문·호소가 잇달았다.

무엇보다도 정권 말기의 누수현상에 흔들릴수 있다는 인식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 이 입법 자체가 이미 발효된 5·8조치를 소급적 적용, 법적 논란을 오히려 증폭시킬수 있으며, 권력에 의한 강제매각을 정부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결국 그해 6월 28일 국무회의에서 보류되고 만다. 기존의 여신관리 규정을 활용하자는 것이었고, 그후 이 규정은 재벌의 토지매각을 종용할때마다 ‘전가의 보도’인양 사용됐다.

▲ 서울 잠실 롯데타워. 롯데그룹은 이 땅에 대해 노태우 정부가 비업무용 판정을 내리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사진 = 조영훈
5·8 조치, 법정에서 패소

그러면 여기서 5·8 조치의 주역인 김종인 경제수석의 재벌관은 어떠했는지 들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력 집중은 경제 개발 과정에서 생긴 엄연한 현실입니다. 1974년 대학교수 시절 당시 경제수석에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나중에 정치력이 경제력을 통제할수 없는 시대가 온다’고 한 적이 있어요. 막상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이미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져 있더군요.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평소의 소신을 정책화하려 했습니다. 재벌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시장경제란 있을수 없습니다. 재벌을 일정한 ‘룰’로 규제해야 경제 주체간 원활한 교류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가 말한 일정한 ‘룰’은 ‘4·4 부동산 대책’을 거쳐 ‘5·8 조치’로 이어져 구체화된다. 김종인 수석의 재벌관과 직선적인 성미는 정부 정책에 고분고분하지 않던 현대그룹과 사서건건 마찰을 빚었다. 5·8 조치는 김종인 수석의 재벌관과 당시 경제여건의 반영이었으며, 이 조치는 앞의 경제수석과도 견해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5·8 조치는 정부와 재계를 결정적으로 갈등관계로 만들었는데, 반드시 좋은 조치만은 아닙니다. 행정 직접통제 방식으로는 시장기능을 외면하기 때문이지요. 5·8 조치보다는 보유과세를 현실화하는 게 근본 대책입니다. 업무용·비업무용 구분을 없애고 모든 초지에 중과세하면 기업도 토지를 덜 스게 됩니다.” (박승 당시 경제수석)

“5·8 조치는 결국 공권력을 동원해 집행한 것으로, 밀어붙이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법률과 원리원칙이 뒷받침되어야지, 권위에 의한 정책은 경제 정의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문희갑 경제수석)

당시 경제수석실은 5·8 조치 1년이 되는 91년 5월에 문제가 있는 땅을 구제해 주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최각규 신임 부총리는 경제장관회의에서 “모든 비업무용 부동산을 구제할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무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5·8 조치의 문제점은 부각되었지만 재벌은 정부의 독촉에 밀려 땅을 매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끝내 불복하고 만다. 현대의 역삼동 부지, 롯데의 제2롯데월드 부지가 그것이다. 예견했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현대 역삼동 땅의 경우 토지개발공사가 서울지법에 매각중지 신청을 냈고, 롯데그룹은 9091년 9월 7일 서울고법에 취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5·8 조치가 법정에 선 것이다.

법정 싸움에서 결국 현대와 롯데가 승리했다. 법적 토대보다는 통치권 차원에서 수행된 5·8 조치는 실무진 사이에서 자중지란을 겪으면서 한편에선 법적 시비를, 다른한편에선 재벌의 정치참여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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