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뉴스=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를 포함한 새로운 근무 형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외국계 기업은 팬데믹이 끝나도 재택근무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페인, 향후 3년간 '주4일 근무' 시범 시행키로

얼마 전, 스페인에서는 ‘주 4일 근무’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지침이 발표됐다. 해당 법안을 제의한 진보 정당 '마스 파이스(Más País)'의 이니고 에레혼은 이미 예전부터 이를 주장해왔는데, 팬데믹 이후 근무 환경의 변화가 유연해진 것이 이 법인의 최종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지 일간지 엘에코노미스타는 캠브리지 저널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유럽 국가가 주당 근무 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면, GDP가 1.5% 증가할 뿐만 아니라 56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주 4일 근무제' 법안은 스페인 내의 200개 회사 3000~6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3년간 시범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주 32시간을 일하지만, 같은 금액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는 약 5천만 유로의 금액을 보조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모니터링은 상시 이루어지며,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생산성 향상 및 근로자의 만족도가 조사된다. 

'주 4일 근무'는 우리 사회에 적용하기에 여전히 시기상조일까? 1930년 영국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00년 후에는 기술의 발전과 노동 생산성의 향상으로 주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예상은 빗나갔다.

아래 그래프는 1960년부터 2017년까지 근로 시간 대비 노동 생산성을 나타낸 자료다. 한국과 스페인을 포함한 독일, 미국, 일본, 프랑스의 수치를 비교했는데 한국은 근로 시간이 긴 국가로 꼽혔다. 유럽 국가의 경우 근로 시간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으며, 미국의 경우 노동 생산성 대비 근로 시간이 긴 편이었다. 

100년도 더 된 스페인의 '워라밸' 전통

이렇게 인류의 노동 생산성은 가파르게 향상된 것에 비해, 근로 시간의 변화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 4일제에 긍정적이지 않은 고용주들이 훨씬 많은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변화에 걸맞게 이를 시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스페인 사회는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워라밸'을 향상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현지 언론들은 주말을 3일 동안 보내면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동기 부여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유명 일간지 ABC는 “스페인 근로자들의 71%가 주 4일 근무를 선호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보도하기도 했다. 

주 4일 근무는 202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미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사도 있었다. 스페인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델솔(Delsol)은 2020년 1월부터 실시했다. 회사는 "일과 개인 생활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주 4일 근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1년이 지난 현재, 직원들의 결근이 줄었으며 예상 매출액보다 5% 증가한 수치를 보이고 있고, 이직률이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인사 담당자는 전했다. 모든 직원은 주어진 시간이 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일하고, 회의는 20분 이상 지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는 스페인의 주4일제 시행 소식을 접했을 때 그리 놀라지 않았는데, 스페인이 오래전부터 근로자의 권리 및 근로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년 전인 1919년, 바르셀로나의 한 공장에서 하루 8시간의 노동 시간을 처음 승인했다고 전해진다. 스페인에 계속 거주하면서 느끼는 부분이지만, 스페인은 근로자를 위한 법과 복리후생이 잘 마련되어 있는 국가다. 국민인 근로자들도 본인의 권리를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최근 스페인은 유럽연합 국가 최초로 ‘음식 배달 기사’를 근로자로 인정하면서 권리를 보장하기도 했다. 

스페인 노동법에 따르면 주당 근무 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근로자는 평균 37.7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통계에 잡혔다. 근로자의 휴가는 통상적으로 1년에 30일이 주어진다.

월급도 1년에 14차례...출산·육아 휴직도 여유

필자가 스페인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문화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다름 아닌 ‘월급’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1년에 열두 번, 즉 한달에 한번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연봉이 열네 번으로 나누어져 있다!

어차피 근로자가 받아야 할 돈을 그렇게 나누어 주는 것이긴 하지만, 마치 엄청난 보너스를 받는 것 같은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두 번의 추가 급여는 여름 휴가가 시작되기 전인 6월,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동방박사의 날'을 앞둔 12월에 지급된다. 그래서 6월과 12월에는 기존 수령액의 두 배 정도 되는 월급을 받는다. 평소에 돈을 잘 모으지 않았더라도, 휴가를 넉넉히 보낼 돈이 생기는 셈이다. 

또한, 일자리를 잃으면 퇴직금을 비롯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이 있어서, 일한 기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평균 2년 정도는 본인이 받았던 월급과 같은 수준의 돈을 매달 받을 수 있다. 출산 휴가의 경우 기본적으로 16주로, 쌍둥이의 경우 18주, 세쌍둥이의 경우 20주까지 제공된다. 올해 1월부터는 부인이 출산하면, 남편 역시 육아 휴직을 최대 16주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법안이 통과됐다. 육아 휴직의 경우 무급으로 최대 3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이렇게 근로자의 권리와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스페인 사람들 대부분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없거나,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일에 시달려 살아야 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삶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스페인 사람들의 마인드와 라이프 스타일에 더해진 주 4일 근무 시행 결과가 어떨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거액의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고 모든 근로자의 꿈과 같은 주 4일제를 시행하는 만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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