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㉗ 최초의 유성 장편영화 '재즈싱어' – 무성영화의 종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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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㉗ 최초의 유성 장편영화 '재즈싱어' – 무성영화의 종말 (하)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4.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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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로드웨이서 1927년 첫 상영
제작자 샘 워너 장례식날 열린 시사회
유성영화의 등장...영화산업 판도 바꿔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1927년 10월 6일, 뉴욕의 워너 브라더스 극장에서는 회사의 명운을 건 역사적인 시사회가 열렸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장편 유성 영화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의 시사회가 열린 것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많은 언론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날 병으로 사망한 샘 워너의 불운이나 파산 직전인 제작사의 열악한 재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경쟁자들은 느긋하게 시가를 피우며 워너브라더스의 ‘마지막’이 될 이 영화가 끝나고 파산한 영화사에서 어떤 전리품들을 챙길 지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행사였지만 정작 워너 형제들은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샘 워너의 장례식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얼마 후 모든 사람의 생각은 하나로 모였다. ‘뭐지 이건!’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최초의’ 유성 영화라고는 하지만 ‘재즈 싱어’는 흔히 생각하는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이 유성 영화인 건 아니다. 

이 영화의 대부분 러닝 타임은 기존의 무성 영화의 캡션 과 사운드 카드로 전달되었다. 다시 말해 무성 영화에 일부 동기화된 음성 대사와 사운드 트랙이 붙은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 포스터. 사진출처=위키페디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 포스터.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실제 영화에서 동기화된 음성은 주연 배우 알 졸슨 (Al Jolson)이 말한 총 354단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음악이었다. 

어떻게 보면 유성 영화라 보기에도 애매한 영화였다. 제작비 탓도 있었지만, 여전히 유성 영화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제작사와 유성 영화의 아버지 샘 워너가 타협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밤 이 2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걸쳐 펼쳐진 ‘재즈 싱어’의 유성 영화 시퀀스는 영화의 역사를 크게 뒤흔들었다.

영화 ‘재즈 싱어’는 당시 모든 영화가 그렇듯 영상과 자막 캡션이 번갈아 등장하는 전형적인 무성 영화로 시작했다. 음악 장면에 사운드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 기술은 이미 ‘사운드 온 디스크’로 알려져 있는 새롭지만 그렇게 낯설지는 않은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영화 시작 17분 후 영상에 등장한 주연 배우 알 졸슨이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진정시키며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g yet!" (잠깐 잠깐, 당신들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라는 대사를 외친다. (유성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이 대사는 후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사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 재즈싱어의 사운드 시퀀스, 유명한 졸슨의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동영상=유튜브.

2분 정도 되는 이 짧은 사운드 시퀀스를 본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처음으로 영화 속 인물이 관객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론 관계자들은 흥분했고, 라이벌 스튜디오의 경쟁자들은 전리품 리스트를 찢어버렸다. 그날 시사회에 참석한 한 기자는 “졸슨의 대화 장면을 보며 난 무성 영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시사회에 참여한 파라마운트의 한 임원은 휴식 시간 로비로 달려나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사에게 그는 말한다 “이건 혁명입니다!”

1927년 첫 상영 당시 많은 이들이 재즈싱어를 보기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워너 씨어터앞에 모여있다 사진출처=워너브로스 홈페이지.
1927년 첫 상영 당시 많은 이들이 재즈싱어를 보기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워너 씨어터앞에 모여있다 사진출처=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재즈 싱어가 몰고온 시장의 변화

다음 날 어제의 시사회에 대해 보고를 들은 파라마운트의 아돌프 주커는 영화사의 임원들을 모두 모았다. 그리고 ‘우리는 왜 유성 영화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나’를 추궁했다. 임원들은 그 동안 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그러해왔듯이 기존 시스템이 너무 잘되어 있는데 굳이 사운드를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뻔한 대답으로 변명했다.

그 간 해온 말이 있기에 갑작스런 태세 전환을 못한 몇몇 임원들을 제외한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성 영화 시대가 곧 끝날 것임을 직감했다. 

재즈 싱어의 티켓 가격은 50센트로 기존 무성 영화의 두배였지만, 입소문과 언론의 찬사로 인해 티켓은 불티나게 팔렸다. 두배의 가격이긴 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비슷한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쌌기 때문이었다.

50만 달러 정도였던 제작비는 곧 회수되었고, 워너 브라더스는 큰 수익을 얻었다. 재즈 싱어는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를 한번 본 사람들은 그 동안 재미있게 보았던 무성 영화가 급격히 시시해짐을 느꼈다. 대중들 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주인공이 어머니를 위해 연주하는 영화 재즈싱어 속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 홈페이지.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주인공이 어머니를 위해 연주하는 영화 재즈싱어 속 한 장면. 사진=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사운드는 영화 제작의 표준이 될 것이다!” 심지어 그 동안 사운드 도입에 부정적이던 영화계 관계자들조차 재즈 싱어를 보고 난 후에는 이런 말을 외쳤다. 

영화사의 경영자들은 사운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은행 대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비슷한 장면이 다음 날 미국의 대부분의 대형 영화 제작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사운드 시스템의 설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극장주들은 영화관 문을 닫아야 했고, 그 동안 영화의 음악을 책임지던 피아니스트들이 해고되었다. 마치 21세기 초 영화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거기에 멀티 플렉스화마저 진행되자, 단관 개봉관이 문을 닫거나 영화 간판을 그리는 사람들이 실직하던 것처럼 말이다.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성 영화 시절 유명한 배우들도 유성 영화 시대가 열리며 일자리를 잃었다. 발음이 술에 취한 것처럼 꼬여들린다는 이유로, 목소리가 쇳소리가 난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유명 배우들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영화사에 있어 영화 ‘재즈싱어’는 최초의 유성 영화이기도 하지만, 어떻게보면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못지 않은 역사적 이정표를 남긴 영화라 할 수 있다. 재즈 싱어는 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화 양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고, 현대 영상 문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적 배경이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잊지 말하야 할 것은 여기에는 기술은 충분히 있었지만 누구도 가지 않으려했던, 굳이 가고싶지 않아했던 길을 간 샘 워너를 비롯한 몇몇 용감한 ‘퍼스트 펭귄’들의 분투이기도 하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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