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왕국 사우디] 라마단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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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왕국 사우디] 라마단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나라
  • 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 승인 2021.04.1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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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에게 '꾸란'을 받은 달을 기념
사우디 최고 종교지도자, 초승달을 육안으로 보고 시작일 결정
라마단 기간중 낮에는 금식...물도 한방울 못먹어
밤에는 축제와 폭식...가난한 이웃 돌보는 취지 퇴색된 느낌도
신승민 통신원
신승민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하얀실이 검은실과 구별되는 아침 새벽까지 먹고 마시라. 그런 다음 밤이 올 때까지 단식을 지키고 그녀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사원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할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한한 것이니(꾸란 2:187, Yusif Ali)
 
해마다 전세계 무슬림들은 신성한 금식월(Ramadan)을 지킨다. 라마단은 아랍어( رَمَضَان)로 '매우 더운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마단 절기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꾸란을 처음 받은 달로, 음력을 따르는 이슬람력의 아홉번째 달이다. 해마다 열흘씩 앞당겨지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라마단 기간이 될 수 있다.
 
이슬람이 태동된 사우디에서는 이 금식월 라마단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공공기관이 라마단으로 인해 업무 일정이 조정되며, 해가 지는 저녁이 되어야만 식사가 가능하기에 여기저기 밤마다 축제와 파티가 한 달 여간 이어진다. 낮 시간의 금식 의무는 이슬람 교도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역사적 사건 이후부터 이어지고 있다. 

라마단은 천사 가브리엘이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계시한 달로 여겨 초승달이 나타난 시점부터 단식을 시작하는 것이 그 유래로 알려졌다. 금식의 의미는 가난한 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금식을 통해 비축된 음식과 돈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취지다.

12일부터 시작된 라마단...낮엔 물도 못마셔

해마다 라마단이 다가오면 이슬람 지도자들은 초승달을 관찰하고, 최고 종교 지도자가 육안으로 관찰한 보고를 받아 라마단월의 시작 날짜를 공표한다. 2021년 라마단은 4월12일 일몰부터 시작되어 5월12일 일몰까지 지속된다.

초승달을 관찰하고 있는 사우디 천문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 사진=구글
초승달을 관찰하고 있는 사우디 천문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 사진=구글

특히 한 해중 해가 가장 긴 여름에 라마단이 있는 경우 금식이 15시간까지 지속될 수 있는데, 야외 현장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비지땀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물 한모금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임신부, 생리중인 여성, 수유중인 산모, 병자, 고령자들은 금식에서 제외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여행중인 사람도 금식에서 제외될 수 있으나 이들 역시 나중에 본인이 빼먹은 금식날 만큼 나중에 보충해야 한다.

한국에는 설날, 추석의 명절과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라마단이 매우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아이들은 곧 시작될 명절을 기대해 들떠 있는 모습으로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곳곳의 상점들은 라마단이 시작되기 두어주 전부터 화려한 라마단 장식을 하고 라마단 특별 세일을 실시하며 매출증대를 기대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중 한가지는 금식을 하는 기간임에도 모든 상점마다 식품들을 말 그대로 산처럼 쌓아놓은 상태로 진열을 하는데, 정말 어떻게 저렇게 높이 많이 쌓아 놓을 수 있을까 경이롭기까지 하다. 

라마단 기간동안 식품점 마다 식품들을 높게 쌓아놓으며 라마단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진= 신승민 통신원
라마단 기간동안 식품점 마다 식품들을 높게 쌓아놓으며 라마단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진= 신승민 통신원

관공서와 대부분의 사무소는 라마단기간중에는 업무시간이 변경된다. 보통 출근이 2시간 정도 늦춰지고 퇴근시간은 한시간 정도 빨라진다. 학교 수업도 50분 수업이 35분으로 줄어들고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에 걸쳐 있는 오후 5~6시 수업은 아예 밤 9시 이후로 옮겨진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은 기말고사를 라마단 기간중 실시하기에 몇몇 과목의 시험은 오후 10시부터 새벽1시까지의 일정으로 편성될 정도다.  

수후르에 금식 시작...마그립후 '이프타르'로 식사 시작 

라마단 기간중 사람들은 낮동안 금식을 하고 해가 지는 저녁부터 계속해서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해가 떠오르는 새벽무렵까지 가족 혹은 지인들과의 식사를 이어간다.  

이렇게 새벽까지 식사와 축제를 즐기다가 사무실로 출근하니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에 업무가 제대로 이어질리 만무하다. 비무슬림들의 경우도 고충은 있다. 낮동안 모든 식당들이 영업을 하지 않기에 집에서 도시락을 들고와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금식중인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섭취할 수 없기에  혼자만의 장소에서 몰래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한달간은  즐거운 점심시간도 포기해야 한다. 

라마단등을 문앞에 걸어놓고 있는 옆집. 아이가 '라마단 카림'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는다.  사진= 신승민 통신원.
라마단등을 문앞에 걸어놓고 있는 옆집. 아이가 '라마단 카림'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는다. 사진= 신승민 통신원.

라마단 동안의 식사는 하루 5번의 기도중 첫번째 기도인 파지르(Fajr) 10분전까지 끝내야 하는데 해뜨기 전의 첫식사는 ‘수후르(suhoor)’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며, 보통 소화가 잘되는 삶은 달걀, 오트밀, 과일 야채등의 메뉴를 준비한다. 

수후르 이후에는 본격적인 금식이 시작되며 다음 식사가 가능한 시점은  4번째 기도인 마그립(Maghrib)이후에 가능하다. 낮 금식을 깨는 이 식사를 '이프타르(iftar)'라고 명명하며 대추야자를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프타르 시간 30분전 이미 식당안은 음식을 주문한 손님들로 가득차게 되는데 테이블위에 올려진 주문된 음식물을 바라보며 마그립 기도 시간을 알리는 모스코의 아잔(Azan)소리만을 기다린다. 마그립 기도의 아잔은 일몰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며 곧 금식을 깨고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신호다.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도 라마단전용 식사들이 제공된다. 사진= 구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도 라마단전용 식사들이 제공된다. 사진= 구글

저녁이 되면 신호등 , 교차로, 도로 곳곳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즐거운 라마단 되세요’ 라는 뜻의 아랍어 “라마단카림(Ramadan Kareem)”을 말하여 예쁘게 포장된 음식물을 나눠준다. 또 곳곳의  모스코에서는 라마단 기간내내 무료로 저녁식사를 제공하는데,  혹 라마단 기간 동안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인 독자가 있다면 꼭 한번은 모스코에 들러 즐거운 라마단 이프타르 식사를 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오늘날의 라마단은 현대화되고 상업화 되며 그 원본 취지가 퇴색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라마단 기간에는 평상시보다 약 1.5배의 음식물이 소비되며 금식월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밤새도록 상당량의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도 라마단 기간에는 음식 조절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단식과 폭식으로 소화계 질환뿐 아니라 혈당조절 기능이 저하되기에 사우디인들에게 만연한 비만 및 당뇨병의 높은 발생률은  라마단 기간의 반복되는 단식/폭식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축제라고 하지만, 고통·후유증도 적잖아 

초저녁이 되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는데 전통적으로 식사 담담은 오롯이 여성이다보니, 집안 여성들이 금식으로 인한 갈증과 허기를 부여잡고 가장 참기 힘든 시간에 저녁식사를 준비하게 된다. 대부분 2~3가정이 모이기 때문에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우디의 경우 보통 10인분 이상은 가볍게 넘어간다.  

금식시간이기에 음식물의 간을 볼 수도 없고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한다. 3~4일이면 끝나는 한국 명절과 달리 라마단기간 30일 동안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라마단을 상징하는 초승달과 등불. 사진=구글
라마단을 상징하는 초승달과 등불. 사진=구글

정부에서는 금식을 더 편하게 하며 명절을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준다. 그렇지만 풍족하다 못해 넘쳐나는 음식물로 사람들이 비만을 비롯한 여러 질환에 노출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난한 자의 굶주림을 동참하며 나의 먹을 것을 나누는 희생적 의미가 담긴 라마단은 오늘날의 사우디에서는 안타깝게도 퇴색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 사우디가 가난한 사막의 나라였을 당시 윗세대들은 라마단이 시작되면 섭씨 40도가 넘어가는 뙤약볕 아래 선지자의 가르침대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고된 노동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해가 진 후 감사기도를 마친 그들의 가방에는 오늘 먹을 수 있는 대추야자 몇알과 낙타유 한컵, 그것마저도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나누었던 희생과 사랑의 사람들이었으며 이것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우디 무슬림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사우디, 라마단의 진정한 의미가 회복되어 사랑과 배려, 이타심이 넘쳐나는 사우디가 되기를 기원한다.  

●필자인 신승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서 학위를 마치고 2017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Dharhan(다란)에 위치한 king Fahd University Of Petroleum & Minerals(국립 킹파하드 석유광물 대학교) 체육학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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