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딸과 함께 취한 록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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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딸과 함께 취한 록 페스티벌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1.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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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젊음의 기회…여기저기 쓰레기만 없다면 완벽할텐데

[조병수 프리랜서] 땅이 울리는 것 같다. 음악이 흐르면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흐느적거린다. 혼자서, 둘이서, 여럿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리듬을 탄다. 장대 깃발이 나부끼고, 어린아이를 무등 태운 아빠도 아이 손을 흔들며 같이 덩실거린다. 키큰 외국인들도, 날씬한 젊은이들도, 나이 듬직한 아저씨, 아줌마들도 연신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거린다.

한여름 밤의 무더움을 압도하는 엄청난 열기와 젊음이, 드넓은 잔디광장 앞쪽으로 용틀임 치고 있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청중들의 환호와 군무가 별천지를 연출한다. 그 뒤로는 삼삼오오 돗자리나 담요를 깔고 앉은채 손을 하늘로 찌른다. 뒤편으로 촘촘히 들어선 텐트들의 불빛과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제각각 흐르는 음악에 장단을 맞추며 장관을 이룬다.

젊은이들의 공연장면이라고는 고작 TV를 통해서나 접해보았고, 록 음악이라면 터부룩한 차림새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이해할 수 없는 굉음을 내는 정도로만 인식하며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저만치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드는 흥겨움과 앉아있는 잔디밭을 통해 전해지는 그 리듬들이 어우러지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다른 한 켠의 소공연장에서는 그곳대로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밴드와 어울려 몸을 흔든다. 다양한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고, 밝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젊음을 발산하고 있는 모습들이 전혀 어색하지도, 거슬리지도 않는다. 공개된 장소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자신들의 취향과 젊음을 추구하는 그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우연히 마주친 몇몇 과도한 차림새나 처신들을 보면서, 젊음 전부를 미성숙의 틀에다 집어넣고는 부지불식간에 ‘다른 세대’로 여기고 있던 나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 사진=조병수

한 무대의 공연이 끝나자 다른 무대로 줄지어 옮겨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압권이다. 그렇게 앉아서, 서서, 또는 드러누워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는데, 생각보다 외국인들도 많고, 또 여성 혼자 서서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이는 모습들도 제법 보인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과 개성이 다양해 지고, 그런 것을 추구해 나가는데도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다가 록 음악에 대한 소양도 없어서 별로 내키지 않았음에도, 딸들의 손에 이끌려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16'이 열리는 송도 달빛공원을 찾은 것은 8월13일 저녁이었다. 3일간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진행되는 페스티벌의 가운데 날이었다. 입구에 늘어선 천막들과 안개비를 뿜어내는 장치들을 보면서 무더운 날씨에 모두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Crossfaith, Nothing But Thieves라는 밴드들의 무대에 이어서 밤 9시40분에 시작된 Weezer그룹의 무대에는 모두들 더한층 열광했다. 중간중간에 한국말로 ‘잘 따라 했어요’, '코리아, 사랑해요'라는 멘트들도 흥미롭게 들렸지만, 밤 11시가 지나가며 무대에서 내려갔던 가수가 청중들의 연호 속에 다시 등단해서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 라는 노래를 우리말로 부를 때에는 그 환호가 대단했다. 아마도 우리 록 음악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그룹인 듯했다.

그들의 공연이 막바지에 달할 즈음에는, 무대 앞쪽에 휘날리던 깃발 중에 대형태극기도 등장했다. 요즈음 들어 ‘한류’, ‘한류’하지만, 우리 땅 서쪽 해안가 한 공원에 외국의 록밴드들이 와서 공연하면서 우리말로 노래도 부르고, 또 그들의 노래를 따라서 부르며 환호하는 이런 환경과 수준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우리의 윗세대 분들이 고맙고, 그리고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며 이런 공연에서조차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잘 모르던 록 음악이라는 것이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울려 퍼지니까 이제까지와는 딴판으로 매력적인 음악이라고 느껴지며, 한번 와보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새벽까지 이어진다는 여러 무대를 감당하기에는 벅차서 자정 무렵 일어섰다.

▲ 사진=조병수

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앉았던 잔디밭 여기저기에 마시다 남은 일회용 컵들과 포장지 같은 것들이 그대로 버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만 없었다면 오늘 밤은 완벽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피어 올랐다.

하지만, 전쟁의 폐허 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바다를 메워서 세운 신도시에서 동·서양의 밴드들과 록 페스티벌을 즐기는 우리들 아닌가.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정된 clean zone에다 쓰레기봉지들을 모아놓고 나간 것을 보면, 이 조그만 부족함들도 멀잖아 고쳐지고 좋아지리라 믿는다.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임에도 여러 도시들로 귀환하는 버스들 앞에 줄지어 서있는 그 열정들과 성숙함이, 분명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갈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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