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운의 미래를 보는 미술] 국내 최고낙찰가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
상태바
[최고운의 미래를 보는 미술] 국내 최고낙찰가 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
  • 최고운 큐레이터, 미술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05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시절부터 편집증적 강박증 앓아
물방울무늬, 그물망 무늬 등 대표적 모티브
무한 반복 증식의 모노크롬적 추상 세계 만들어내
최고운 미술 칼럼니스트
최고운 미술 칼럼니스트

[최고운 미술 칼럼니스트]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은 나를 성장시킨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저마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고통 속에서 긍정을 잃지 않고 인생의 약으로 생각해 기회로 삼기도 한다.

환영과 현실을 오가는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지난해 국내 미술경매시장에서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한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년~)는 어린 시절부터 편집증적 강박증을 앓아 환영(幻影)과 현실을 오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환자로 안주하는 삶이 아닌, 예술가의 길을 선택해 깊은 내면의 상처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예를 들면,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가 공간 전체를 뒤덮는 등의 여러 환영들은 쿠사마의 대표적인 모티브인 물방울무늬(Polka Dots)와 그물망 무늬(Infinity Net)로 탄생했다. 같은 패턴을 계속 반복해나가는 쿠사마의 작업 과정은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몰입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하지만 쿠사마에게 그림은 정신적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이자 병을 극복하는 치료요법, 고통과 치열하게 싸운 후에 얻어지는 평안으로서 예술 활동이었다.

쿠사마 야요이作 호박(TWPOT), 2010, 130x162.5cm,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2019년4월 홍콩의 소더비 경매에서 5446만 홍콩달러(한화 약 79억759만원)에 팔렸다. ⓒartnet
쿠사마 야요이作 호박(TWPOT), 2010, 130x162.5cm, Acrylic on canvas. 이 작품은 2019년4월 홍콩의 소더비 경매에서 5446만 홍콩달러(한화 약 79억759만원)에 팔렸다. ⓒartnet

80억원 낙찰가 '호박'

쿠사마 야요이의 경매 낙찰가 톱 3 작품중 하나인 'PUMPKIN (TWPOT)'(2010)은 쿠사마가 1972년 생활비 부족과 병세 악화로 미국을 떠나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에 점의 반복인 물방울무늬를 캔버스에 가득 채워 넣어 호박을 표현한 작품이다.

본디 ‘원(圓)’은 생명의 원동력이며, 방향성은 없으나 동적이며, 자연의 완전성을 표상한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원은 가장 간소한 형태지만 정확하고, 무궁하게 변할 수 있으며, 안정돼 있으면서 동시에 불안정하고, 조용하면서 동시에 소리가 크며, 수많은 긴장들을 자체 안에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대립들의 종합”이라고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쿠사마는 물방울무늬에 색을 입혀 생동감을 더하고, 모양에도 변화를 부여해 마치 자연생태계, 더 나아가 우주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2000년대에는 더욱 알록달록해진 원들로 가볍고, 경쾌한 밝은 느낌의 회화, 판화, 설치, 패션, 영화 등에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나갔다.

쿠사마 야요이 作 INTERMINABLE NET #4, 1959, Oil on canvas, 143.5x108.6cm. 이 작품은 2019년 홍콩의 소더비 경매에서 6243만3000 홍콩달러(한화 약 90억 6500만원)에 팔렸다. ⓒartnet
쿠사마 야요이 作 INTERMINABLE NET #4, 1959, Oil on canvas, 143.5x108.6cm. 이 작품은 2019년 홍콩의 소더비 경매에서 6243만3000 홍콩달러(한화 약 90억 6500만원)에 팔렸다. ⓒartnet

90억원 낙찰가 INTERMINABLE NET #4

쿠사마 야요이의 세계 최고 낙찰가로 알려진 작품 'INTERMINABLE NET #4'(1959)은 쿠사마가 어머니의 억압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부터 현실 도피하는 동시에 화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후, 1959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5개의 회화 작품 중 하나이다. 

멀리 보면 작품과 벽을 구분할 수 없는 정도지만, 가까이 살펴보면 동그란 패턴으로 된 가느다란 그물망(網)이 보인다. 꼼꼼하게 칠해진 붓질로 눈에 거의 보이지 않고, 덮여있어 숨 막힐 정도로 밀도있는 그물망은 정교하게 조직되어 퍼져나가는 ‘끝없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전시를 실제로 본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불규칙한 배열의 점들이 주는 느낌은 흡사 유기체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주의 끝에서 수없이 많은 별들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망은 점과 선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 등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점과 선의 불규칙한 배열로 반복과 번식의 세포들이 융화되고 증식되어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다.

실제, 쿠사마 야요이의 1950-60년대 제작된 그물망 작품은 12년 전 우리나라 돈으로 약 16억 7000만원에 낙찰된 것에 비해, 2019년 기준 90억 6500만원으로 약 5.6배가 올랐다.

코로나19는 미술시장도 무너뜨렸다. 작년 기준 국내 미술시장 작품 낙찰총액은 1153억 원, 국내 사상 최고치였던 2018년 2194억 원에 비하면 52.5%으로 반 토막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척박한 상황에서도 가장 높은 낙찰가 작품은 단연코 쿠사마 야요이였다.

쿠사마 야요이. 사진= 위키피디아
쿠사마 야요이. 사진= 위키피디아

쿠사마 야요이가 29세의 나이로 뉴욕에 도착했을 당시의 화단의 흐름은 추상표현주의와 색면회화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록 등의 액션 페인팅이 대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쿠사마는 그런 사조로부터 동떨어져서 자신만의 위대한 창조력과 브랜드로서 새로운 예술을 시작하고 싶었다. 쿠사마는 철저한 계획과 고통을 예술로 극복하려는 의지, 일관된 ‘자기’ 마케팅 전략, 트렌드 세팅 감각과 사교성 등을 훌륭히 쌓아나갔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는 단순히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탄생될 수 없다는 말이다.

현대미술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장르 간의 경계가 없는 탈장르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마크 로스코, 클리포드 스틸, 바넷 뉴먼 등 미국 작가들과는 철저히 다른 독립적인 고유한 무한망과 물방울무늬로서 강박적 환영을 넘어선 내적 재현이자 평안을 열망하는 자기 소멸로서의 무한한 반복 증식의 모노크롬적인 추상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 필자인 최고운은 11년 차 큐레이터다. 권진규 미술관(춘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미술관(진주), 록갤러리(서울) 등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의 정체성 재조명 전시기획 독립큐레이터 활동(2014-15) 및 (재)한원미술관, 종이나라박물관, 학고재 등에서 재직했다. 현재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목표로 강의하며 미술 칼럼니스트, ㈜피카프로젝트 선임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 보조/자료 리서치 임선미 RA(Research Assistan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