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산업지원법, 미국내 시설투자액의 40% 상당 법인세 공제
복잡한 반도체 전후방 생태계...소재 일본·후공정 대만 의존도 높아
반도체 소비처는 결국 중국..."미국의 리쇼어링 정책 지켜봐야"
"한국과 미국에 적절한 분산투자가 더 효율적일 수도"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삼성전자가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설)생산라인의 위치를 놓고 텍사스 오스틴과 애리조나 뉴욕, 한국 등을 검토중인 가운데 미국을 선택할 경우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수급과 후공정에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일 “최근 텍사스의 세제혜택과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미국 자립화 정책에 따라 미국이 제시하는 세제 혜택이 큰 건 분명하다”면서도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공급망의 복잡성과 소비처와 거리 등을 생각할 때 미국이 꼭 정답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州정부, 연방정부 구애 본격화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산라인은 평택 1개, 기흥 2개, 화성 3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1개 등 총 7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8번째 파운드리 생산라인이 증설될 가장 유력한 곳으로 텍사스주 오스틴을 꼽는다.
지난해 12월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스틴 공장 인근 258에이커(약 104만4088㎡) 이상 부지를 매입한 뒤 오스틴 시의회에 개발 승인을 요청했다. 삼성전자는 1996년 오스틴 공장 설립 이후 꾸준히 주변 부지를 매입하고 있지만 아직 신공장 설립 등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170억달러(약 19조원)를 투자해 오스틴에 파운드리 라인을 증설할 경우 텍사스주는 향후 15년간 총 2억8500만달러(약 3200억원)가량의 재산세 감면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미국 반도체산업지원법(CHIPS for America Act)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생산시설에 투자를 하면 투자액의 최대 40%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문제는 복잡한 반도체 전후방 생태계
미국이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기업에 세제혜택을 제공하지만 신규 라인 증설을 위해선 반도체 산업의 복잡한 전후방 생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리콘 웨이퍼를 투입해 반도체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도포, 식각, 증착, 절단 등의 수백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기 다른 소재와 장비를 필요로 한다.
한태희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반도체 생산을 미국내에서 하도록 유도하고자 세제혜택을 제공하지만 반도체는 소부장 공급 생태계가 워낙 복잡한 산업”이라며 “패키징과 조립 테스트 업체는 한국이나 동남아에 주로 위치해 있고, 웨이퍼 등 소재 부품 공급망은 일본에, ASML 같은 장비 제조사는 네덜란드에 있어서 생태계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패키징(Packaging)이란 웨이퍼에서 분리된 칩을 외부 온도 변화, 전기적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전자기기 구성품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기적인 포장을 하는 공정이다. 테스트(Test)는 반도체의 전기적 특성을 검사해 불량 칩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방지함으로써 손실을 최소화하는 공정이다.
반도체 생산의 핵심 원료인 실리콘 웨이퍼의 경우 대부분을 일본과 대만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칩인사이츠에 따르면 매출을 기준으로 지난해 글로벌 실리콘 웨이퍼시장 점유율 상위 5개 업체는 일본(신에츠, 섬코), 대만(글로벌웨이퍼스), 독일(실트로닉), 한국(SK실트론)에 위치해 있다.
삼성전자가 8번째 파운드리 생산라인에서 5나노(nm·1nm는 10억분의 1m)와 3나노 이하 공정을 구축할 계획이라는 점도 전후방 생태계와 관련한 고민을 깊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초미세 공정이 발달하면서 테스팅과 패키징 역시 굉장히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작업이 됐다”며 “테스팅 속도와 패키징 기술력이 중요한데, 관련 분야 업체 대부분이 대만과 한국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글로벌 외주 패키징테스트 업체 시장 점유율은 대만이 54%, 중국과 싱가폴이 각각 12%인 반면 미국은 17%에 불과하다.
미국에 초미세 공정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증설할 경우 후공정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생산량뿐만 아니라 수율과 생산단가 역시 중요한 경쟁력이다.
반도체 소비처는 결국 중국..."미국의 리쇼어링 정책 지켜봐야"
반도체 수요처 위치 또한 반도체 생산라인 위치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중국은 지난 2005년 이후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 자리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립율이 6.9%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인공지능, 5G 등과 관련해 중국의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상당기간 중국이 반도체 소비국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 전망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전세계 반도체의 50~60%를 소비한다”며 “소비처를 고려하면 파운드리 증설을 위해 미국의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진행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역시 이런 반도체 공급망의 복잡함을 인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반도체를 포함한 4개 품목을 대상으로 100일간 글로벌 공급망 조사를 지시한 행정명령 14017호에 서명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공급망을 조사한 뒤에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삼성전자는 평택에도 부지가 있고 오스틴에도 부지가 있는 만큼 미국의 대응에 따라 한국과 미국에 분산 투자하는 방식으로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늘릴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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