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리의 차(茶)인문다방] 조선 차인들의 핫플레이스 '운길산 수종사(水鍾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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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의 차(茶)인문다방] 조선 차인들의 핫플레이스 '운길산 수종사(水鍾寺)'
  • 김세리 차문화콘텐츠연구원장
  • 승인 2021.03.31 15:0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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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애틋이 아낀 운길산 '수종사'...인근에 묘소와 생가도
정약용 형제들, 홍현주, 초의선사 일행, 수종사 올라 차 마시는 풍류 즐겨
김세리 차문화콘텐츠연구원장
김세리 차문화콘텐츠연구원장

[김세리 차문화콘텐츠연구원장] 혼자서 마시는 한잔의 차는 나만이 즐거운 호사로움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면 인향(人香)을 꽃피우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조선 차문화에서 인간관계의 시발점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약용은 수종사(남양주 운길산)와 인연이 각별하다. 

수종사와 다산 정약용의 긴 인연

어릴 적부터 형들과 수종사에서 공부했고, 과거에 합격하고는 친구들과 수종사에서 기쁨을 함께 했다. 관직 생활을 할 때에도 가끔씩 고향을 방문할 때면 수종사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며 더운 머리를 식히곤 했고, 멀리 강진 유배 중에도 수종사를 종종 그리워했다. 

"아스라이 보이는 저 수종사에는 뜬 아지랑이에 기와 고랑이 분간되네. 호남에는 사백 군데의 사찰이 있지만 끝내 이 높은 누각보다는 못하리"라는 글속에 다산의 수종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강진의 유배 생활 속에서 만난 호남의 400여 곳의 사찰보다 수종사 누각이 좋다고 평하고 있다. 물론 그럴 리 없다. 호남의 사찰 중에 수종사 보다 아름답고 뛰어난 사찰은 수두룩하다. 다분히 수종사는 다산에게 있어 특별한 추억이 있고, 마음의 안식처였기 때문에 그만의 수종사가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수종사에서 내려다보이는 조안면 능내리에는 현재 선생이 잠들어 있는 묘소와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이 자리하고 있다.

500년 은행나무가 있는 수종사와 그 아래 내려다 보이는 두물머리.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마음속으로 그리워한 수종사와 두물머리 전경. 사진=김세리 원장

수종사는 유달리 차의 대가들과 인연이 많다. 멀리 전라남도 해남에 근거지인 대둔사의 초의선사에게도 수종사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가 1815년 한양에 첫 상경하였을 때 수종사에서 한동안 머문 적이 있다. 그 후  1831년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가 정약용을 찾아가 수종사에 함께 가자고 하여, 다산과 두 아들 학연, 학유, 그리고 초의선사도 이 때 함께 길을 나서게 되니 두 번째 방문이 된다. 

그러나 이미 70세인 정약용은 노쇠해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산 초입에서 포기한다. 늘상 내 집처럼 오르던 수종사를 오르는 것도 힘이 부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얼마나 아쉽고 쓸쓸하였을까. 

정약용의 벗들이 지은 '수종시유첩'

운길산 아래에서 정약용이 쓸쓸이 이들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정학연, 정학유, 초의선사, 홍현주는 수종사에 올라 차를 마셨고 이 시절 만남과 오고간 문장들을 모아 ‘수종시유첩(水鍾詩遊帖)’을 만들어 간직하게 된다. 

다산과 홍현주, 박보영, 이만용이 서문을 썼고, 홍현주는 그림을 그려 운길산의 모습과 유람 정황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정조 대왕의 사위인 홍현주가 수종사로 올라가는 정학연, 최의선사 등 일행을 그린 그림.  살하박문관 소장
정조 대왕의 사위인 홍현주가 수종사로 올라가는 정학연, 초의선사 등 일행을 그린 그림. 실학박물관 소장

오른쪽 하단에 백문의 ‘홍현주인(洪顯周印)’이 찍혀 있어 정조의 사위 홍현주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 위쪽으로 눈 속의 수종사가 보인다. 산 아래 자락에 나귀 탄 사람이 하인과 함께 산길로 올라가고 있다. 한겨울 눈보라를 헤치며 수종사를 향해 오르는 모습이 어쩐지 비장하기도 하지만 그 곳에 자신이 좋아 하는 벗들이, 또 따듯하고 향기로운 차 한잔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발걸음도 아닐 것이다.  

그림과 더불어 홍현주가 묘사한 당시 분위기를 보자. 

“기이하고 기이하다. 수종사의 놀이여. 막 황량한 골짝 깎아지른 멧부리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우레가 칠 때는 갑작스레 흑풍이 배에 불어닥쳐 귀국(鬼國)까지 떠내려간 모습었다. 

잠깐 사이에 정토가 앞에 펼쳐지고 실마리가 드러나자, 노래하고 읊조리며 화답합은 천 강에 달이 뜬 것 같고, 만 리에 구름 한 점 없는 것 같아. 

그 쾌활함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시험 삼아 초의 도인에게 한 차례 묻는다. 이런 경계를 좇아 삼매로 접어듦은 마치 시방세존께서 샛별이 뜰 때 성도한 것 같다. 다만 그대가 여기에 나아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본래면목을 얻을 수 있으리라. 

또 마치 동봉 김시습 거사가 머리를 두건으로 감싸고 수염을 기른 채 한 번 씻어 49년간의 마장을 물리쳐 버린 것과 같다. 또한 다만 그대가 다시금 다산 선생께 청하여 이 아래에 한 마디 깨우침의 말을 구할진저. 해거도인 현주가 제한다.”

겨울 산을 오르는 길이 춥고 험하였어도 수종사에서 얻을 수 있는 매력이 더 좋았기에 그들은 그렇게 그 산을 올랐다. 하얀 눈빛, 달빛, 물빛도 좋았고 글빛, 벗들의 따듯한 눈빛도 좋았다. 초의도 그날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적어 두었다.

“수종사의 바람소리와 우레소리를 듣고 보니, 일체 세간의 온갖 악기 소리 따위는 소리도 아니었다. 수종사의 눈과 달빛을 보니, 일체 세간의 온갖 빛깔들은 빛깔이라 할 수도 없었다. 


또 이 종이에 쓰여진 언어 가운데 향기와 맛을 음미해보니, 일체 세간의 온갖 진귀한 향기와 맛은 향기와 맛 축에도 들지 못했다.”

당시 초의는 보림사 죽로차(竹露茶)를 들고 왔는데, 차를 제법 마신다는 한양의 문사들 사이에서 초의가 한양에 입성했다는 소식은 떠들썩한 이슈였다. 차의 대부 격인 그를 대면해 지적인 교유는 물론 차의 이야기를 직접 나누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초의는 한양에 머물며 이름난 문인들과 시문을 나누기도 하고 차의 전도사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두물머리 내려다보이는 수종사 '삼정헌' 

2021년 초봄의 수종사는 여전하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우뚝하다. 그때 은행나무 나이가 300살이었고 지금은 500살이라는 것 말고, 그 당시 선배 차인들은 지금 별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 삼정헌 다실에는 여전히 녹차향이 그득해서 누구라도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며 향기로운 녹차를 우려마실 수 있는 곳이다. 

여전히 물안개는 너울너울 춤을 추고, 봄을 맞아 나무에는 새순이 살며시 돋아나고, 우리는 차나무에 순이 올라 햇차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강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수종사 삼정헌 다실. 사진=김세리 원장
한강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수종사 삼정헌 다실. 사진=김세리 원장

운길산 수종사는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찰이다. 200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삼정헌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오래된 차인이든 오늘부터 새로 된 차인이든 구별이 없다. 곱게 차 한잔 마시고 또 곱게 제자리에 스스로 정리정돈하고 나가며 정갈한 차인이 된다. 

곡우(4월 20일)가 다가온다. 이제 곧 햇차가 시작되는 시즌이다. 차 한잔이 생각나면 수종사로 가자.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며 옛 선배 차인들이 그러했듯 세간의 번잡함은 훌훌 버려두고 가벼운 마음이 되어 내려오자.

● 김세리 차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은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 초빙교수로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와 한국 현대 다법 및 차문화 콘텐츠를 다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차분야별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 <차의 시간을 걷다>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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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 2021-04-02 08:13:12
아침에 기사를 읽고 저도 그 곳으로 향해
봄내가득한 차한잔 마시고 싶네요.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산빛 2021-04-01 11:20:57
와 차는 잘 모르겠고, 글 쓴이가 왜케 미인이랍니까? 나도 차 마셔야겠다!!

hodong 2021-04-01 05:29:14
높다란 수종사 누각에서 내려다 본 두물머리 양수리를 200여년 전 초의선사도 같은 내려다 보시며 향기로운 차를 드셨다니, 각기 다른 시간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향기로운 만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네요 , 신기하다 ㅎ

macmaca 2021-03-31 23:05:28
신농(神農) 황제는 위생상의 이유로 항상 물을 끓여 먹었는데, 하루는 끓고 있는 물 위에 몇 가지 종류의 나뭇잎이 떨어졌다. 신농 황제는 식물의 잎을 우려내면 물맛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이 이 물맛에 매료되었고 그로부터 차를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 차의 기원에 대해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중국은 차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차를 마신 나라임은 분명해 보인다.
.출처: 차 [Tea] (1%를 위한 상식백과, 2014. 11. 15., 베탄 패트릭, 존 톰슨, 이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