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가 막혀도 뚝뚝 떨어지는 유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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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가 막혀도 뚝뚝 떨어지는 유가...왜?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1.03.26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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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원유 공급차질 가능성에도 수요부진 우려에 급락세 지속
유럽 덮친 코로나19 우려가 유가의 장기적 전망에 영향
최근 달러화강세도 유가 하락에 일조
지난 24일(현지시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좌초되면서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았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좌초되면서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았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선박이 좌초되면서 유조선들의 통행이 막혀버렸다.

평상시라면 유조선들의 통행이 막히면 원유의 공급차질 우려가 발생하면서 유가가 치솟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고가 발생한 24일(이하 현지시간)에는 국제유가가 약 6% 급등했지만, 공급차질이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에도 25일 원유시장에서는 유가 상승폭의 대부분을 되돌리며 오히려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여전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공급차질까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급차질 가능성보다 수요부진을 더 우려

지난 24일 컨테이너 2만개를 싣고 있던 초대형 선박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되면서 유조선을 비롯한 모든 해상무역이 멈춰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데이터업체 레피니티브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0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선박 수는 총 1만8597대에 달하며, 이 중 유조선은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세계 해상 교역량의 약 25%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피니티브의 랜지스 라자 분석가는 "206척 이상의 배들이 운하 양쪽 끝에서 운항이 재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대기하고 있는 배들의 수는 지난 24시간 동안 대략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에버기븐호 인양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양에 관여하고 있는 네덜란드 준설전문기업 보스칼리스의 피터 베르도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선박 인양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국제유가는 이날 4% 안팎으로 빠졌다. 불과 열흘 전만 하더라도 배럴당 70달러대를 넘나들며 '슈퍼 사이클의 도래'를 기대하게끔 했던 브렌트유는 25일 한 때 60.85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불과 열흘만에 15%가 빠진 것이다.

이는 공급차질 우려보다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것을 반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다른 시기였더라면 수에즈 운하의 선박 좌초 사태는 유가를 치솟게 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원유 시장이 후퇴하는 시기인 만큼 그 반응이 잠잠했다"고 평가했다. 

원유 시장에서 유가를 끌어올릴만한 요인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던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반군의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사우디의 일부 석유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아진 바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유가 상승 요인인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갈등도 유가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벨란데라 에너지의 마니스 라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중동의 정치적 긴장은 통상적으로 유가를 끌어올렸겠지만 현재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이같은 요인은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럽 덮친 코로나19...원유 수요 부진 우려 확산

공급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시장은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이유는 바로 코로나19에 있다. 

유럽 지역에서는 코로나19 3차 확산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봉쇄를 강화하고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부활절 연휴를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비난에 연장 조치를 일단 철회한 상태다. 

코로나19가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지역에서는 백신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공급차질 가능성보다는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씽크마켓의 시장 분석가인 파와드 라자다는 "백신 보급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게 진행되면서 유럽 국가에서 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 지역에 대한 여행재개 등이 의심되는데다, 무엇보다도 원유 수요에 대한 예측을 해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 역시 "유럽국가들의 봉쇄 조치로 인해 유럽 내 석유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시장은 수에즈 운하 사태보다 이같은 근본적인 측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스타드에너지의 비요나르 톤하우젠 분석가는 "만일 유럽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더 나은 상황이었더라면 최근의 혼란들은 (유가의) 장기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오늘 유가가 전날의 상승폭을 재빠르게 되돌린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4월1일 예정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의 회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산유국들은 여전히 시장에 존재하는 변동성을 고려해 석유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핼리 오안다 선임 시장분석가는 "석유시장은 4월 회동때까지는 추가적인 모멘텀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감산 정책도 변동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 추이.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 추이.

달러화강세 움직임에도 주목

전문가들은 최근 달러화 강세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내놓는다.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에서 유럽 국가들을 현저하게 앞서가면서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원유는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게 되면 유가에는 부담이 된다. 

달러화 강세와 맞물리면서 유가가 하락세를 보인다면 글로벌 주식시장 및 경제 상황에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미국의 강한 경제회복 기대감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고, 미 국채금리 상승세가 시장의 강력한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유가의 하락세는 증시 여건에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달러화 강세 현상과 맞물려 유가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다"며 "그동안 금융시장 불안의 주된 요인이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주춤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과 경제에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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