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실거주 목적 주택매수자보다 계약갱신 세입자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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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실거주 목적 주택매수자보다 계약갱신 세입자가 우선"
  • 안은정 기자
  • 승인 2021.03.2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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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갱신청구권' 행사 후 첫 판결
실거주 목적 매수하더라도 등기이전 늦으면 거주 못해
세입자 보호 강화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판결
매수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우려도
지난 11일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한 첫 판결이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한 첫 판결이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안은정 기자] 실거주 용도로 집을 산 새 집 소유주가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기 전에 소유권등기이전을 끝내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서 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한 첫 판결이다.

이 판결을 두고 임대차 임차인 보호가 중요한 만큼 실거주 목적을 밝힌 매수자의 최소한의 권리 역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민사2단독 유현정 판사는 지난 11일 집주인 김모씨가 세입자 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 인도 소송 1심에서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가 지난해 8월 실거주 목적으로 한 주택을 살 당시, 이 집에는 2021년 2월까지 전세 계약을 맺은 박씨가 살고 있었다.

기존 집 소유주는 김씨와 매매계약을 할 때 세입자 박씨에게 “전세계약 연장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박씨도 수긍하자 매수자 김씨는 실거주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박씨는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돌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세입자가 퇴거 요청에 응하지 않자 곧 소송으로 번졌다.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이나 가족이 실거주하려는 경우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지만 법원은 소유권이전등기 시점을 근거로 들어 세입자 박씨의 권리를 인정했다.

김씨가 매매계약 체결 뒤 3개월이 지나서야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던 까닭이다.

재판부는 “매수자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기 전 세입자 박씨가 기존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마쳤다”며 “이를 승계한 매수자 김씨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계약갱신청구권거절 사유. 자료제공=국가법령정보센터
계약갱신청구권거절 사유. 자료제공=국가법령정보센터

그동안 임대차계약에서 합의 갱신, 묵시적 갱신, 재계약 시 임대인이 원하는 정도의 월세나 보증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되는 탓에 세입자의 주거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전세난민’이라는 조어가 등장할 만큼 취약했던 세입자 권리를 감안하면 이 판결을 통해 앞으로 세입자 보호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임대차보호법이 되레 집 소유주의 재산권과 주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입자가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퇴거하기로 합의해 이를 믿고 매맥계약을 체결한 실거주 목적의 매수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9월 설명자료를 통해 이 같은 사례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제1항제9호의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엄정숙 법도 대표변호사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기 전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을 법원이 따라간 판결”이라며 “소유권자가 집을 매수해서 실거주 하는 것 역시 정당한 권리인데 등기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를 낀 주택을 구입할 때 계약만료 6개월 전까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매매계약을 할 때 남은 잔금은 기존에 살던 전세금을 빼서 충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매수자 입장에서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계약갱신청구권과 관련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13일부터 세입자가 있는 주택 매매를 중개할 때 공인중개사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매도인에게 명확하게 확인하고 서류에 명시하는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이 발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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