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역주행 중인 브레이브걸스가 주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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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역주행 중인 브레이브걸스가 주는 위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2 15: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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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 ‘롤린’, 음원 발매 4년 만에 대중의 관심과 차트 1위까지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역주행'은 도로에서 정해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고속도로에서 역주행 차량을 만나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음반업계에서도 역주행은 미디어가 주목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다만 역주행한 뮤지션과 팬들이 반기는 사건이다.

음반업계에서는 음원이나 음반이 출시된 초기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한참 뒤에 유행하게 되면 역주행이라 부른다. 여기서 한참 뒤는 수개월일 수도 있지만 여러 해를 의미할 때가 더 많다. 

‘브레이브걸스(BraveGirls)’의 역주행이 그렇다. 이 네 명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 4년 전에 발표한 ‘롤린’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몇 주 전 유튜브를 통해 서서히 입소문을 일으키더니 지금은 주요 음반 차트 정상까지 차지해 버렸다.

11일 정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멜론, 지니, 플로 등 전 음원차트 1위에 랭크됐다. 멜론의 경우 차트 개편 이후 걸그룹이 24Hits 1위에 랭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브레이브걸스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 배경으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이 있었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관심을 가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해주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은 이러한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 이용자들에게 노출돼 4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롤린'이 알고리즘을 탄 데에는 한 영상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달 24일 한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에 '브레이브걸스_롤린_댓글모음'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이 콘텐츠는 군부대 위문공연을 간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무대 영상에 재치 있는 댓글들을 편집한 것이었다.

"인수인계가 얼마나 잘 됐으면 2019년인데 떼창하네", "저도 선임한테 인수인계 받았음"이란 댓글부터 과도한 객석의 열기에 "흙먼지 이는 것 좀 봐", "전쟁 때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 같은 다양한 댓글 모음이었다. 

그런데 이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클릭과 클릭을 불렀고, 마침내는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 선택까지 받았다. 급기야는 ‘롤린’이 주요 음원 차트들에서 1위까지 석권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유튜브 이용자들의 선택으로 역주행해서 스타덤에 오른 EXID가 떠올랐다. 이 여자 아이돌 그룹도 데뷔 초기에는 별 관심을 못 봤다가 수년 후에야 유튜브에 오른 ‘위아래’ 영상을 통해서 재조명되었다. 그 후 EXID는 대세 걸그룹이 되었고 그 영예를 수년간 누렸다.

새로운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브레이브걸스도 EXID가 그랬던 것처럼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주목을 받고 있다. 연예인에게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인 SBS ‘런닝맨’에 출연할 예정이고, 이슈를 가늠하는 척도인 tvN ‘유퀴즈 온더 블록’에도 나올 예정이다. 물론 모든 음악방송 출연이 예고되어 있고, 광고 의뢰가 몰린다는 소식도 들린다.

역주행의 아이콘 브레이브걸스. 사진=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역주행의 아이콘 브레이브걸스. 사진=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역주행이 주는 시사점 그리고 위로

간혹 의도된 역주행으로 대중의 의심을 받는 뮤지션들이 있다. 사재기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역주행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은 순수하게 대중의 힘만으로 얻은 성과다. 그래서 그 과정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더욱 의미가 큰 것은 이번 역주행을 위해 돈을 쏟아부어 마케팅과 홍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돈으로 잠시 대중의 관심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지지와 사랑까지 얻는 건 힘들다는 것을 대중 예술계에서 많이 봐왔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투자한 만큼 얻지 못하거나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소속 아티스트나 팀을 계약 해지하거나 해체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데 브레이브걸스가 소속된 회사는 좀 달랐나 보다. 연습생 시절까지 포함해 10년 넘게 브레이브걸스를 지켜봐 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멤버 구성을 달리하며 여러 콘셉트를 시도하며 버텨왔다고 했다. 

만약 다른 회사였다면, 그 회사가 돈이 많든 적든, 인기 없는 여자 아이돌 그룹을 10년 넘게 뒷바라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기와 매출이라는 성과 없이 10년을 지켜온 회사와 아이돌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멤버들이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기분 좋아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SNS 지인 중 브레이브걸스 소식에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그녀들의 역주행이 위로를 주었다"는 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성공의 희망을 보고 눈물짓는 그녀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는. 물론 누구나 오래 기다리고 버틴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브레이브걸스를 검색해 보았다. 그녀들은 2011년에 데뷔했다. 그러니까 연습생 시절까지 합하면 10년 넘는 경력을 가졌다. 나이도 30을 바라볼 즈음이라 아이돌이라기보다는 중견에 가까운 그룹이었다. 그렇게 10년을 무명으로 지내다 이제야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한 멤버의 인터뷰를 보니 며칠 후 해체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지 않았다면, 누군가 그 동영상을 클릭하지 않았다면, 브레이브걸스는 태어났다 사라진 수많은 아이돌 그룹 중 하나로 기록될 뻔했다. 누군가 기억하는 사람들만 기억해주는.

영원히 빛나는 별은 없다지만

연예인 대부분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 특히 아이돌 그룹이 그렇다. ‘7년 징크스’라는 말이 있듯이 7년을 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거나 일부 인기 있는 멤버만 개인적으로 연예인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갑자기 확 떴다가 금방 지는 연예인들도 많다.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재조명한 왕년의 연예인들이 반짝 핀 사례를 지난 몇 년간 여러 번 봐왔다. 그들이 지금 뭐 하는지 관심 가지는 대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오늘도 브레이브걸스 소식이 연예 미디어의 주요 뉴스로 올라온다. 지금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은 아마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일 것이다. 그녀들이 오랜 무명을 거치며 쓴맛을 많이 보았기에 지금의 환호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지금의 인기에 취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대중이 손바닥과 같다는 것을 그녀들은 알 것이다.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손바닥과도 같은 대중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에서 얻은 위로가 참으로 따뜻하다. 그녀들의 은근함을 대중이 오래도록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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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마 2021-04-02 17:14:20
브레이브 걸스를 통해 제가 얻었던 감정과 희열을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느끼고있었다는것에 놀랐습니다.
다른 역주행 곡들과는 다르게 브레이브걸스는 그들만의 이야기가있습니다. 포기하고싶고 이 길이 맞는지 수없는 고민과 좌절속에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노력한 결과 그녀들이 빛을 보았기때문에 대중들에게 오래 기억될것입니다.

고양이맘마 2021-03-15 16:31:18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브레이브걸스의 행보에서 위로를 받는다는게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노력한만큼 모두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 그러지 못한 이 세상에
꾸준히 노력해 오던 이들의 성공담은
부러운 것이 아닌 감동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