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여군, 남자 옷차림에 머리도 짧게 잘라...공산주의식 '여성의 아름다움'
러시아 혁명, 동성애도 형법상 죄로 묻지 않아... 당시 '성 혁명' 시대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여성의 날(3월8일) 특집, 러시아 혁명 얘기다. 보통 러시아 혁명 하면 1917년에 두 차례(2월과 10월) 있었던 혁명만을 기억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성(性) 혁명이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20세기 초의 시각에서 볼 때 정식으로 여군을 조직하고 그에 따른 지원태세를 국가적으로 갖춘다는 생각을 다른 나라들은 별로 안 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당시 막 태어났던 사회주의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맞서기 위한 프로파간다 및 군대내에 전반적으로 사기 진작을 위해 케렌스키(Александр Фёдорович Керенский, 1881-1970년) 임시정부 수반의 명에 따라 러시아군 내 육군은 물론, 심지어 해군 내에 여군으로 이뤄진 부대를 설치한다. 당시 5천여 명의 여군이 창설됐다.
러시아에 여군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예카테리나 대제(Екатерина II Великая, 1729-1796년) 시절에도 여군으로 이뤄진 중대가 1787년 설립됐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자원 형식으로 수 많은 여군이 전선에 참여했다. 즉, 1차대전때 여군이 전선에 참여할 정도가 됐으니 정식으로 군대에 여자를 받아들여도 되겠다는 인식이 당시 소련 사회에 이미 형성돼 있었다는 의미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사회는 자전거를 타는 여자들의 바지 착용도 문제삼았다. 남장한 여자가 남성만 할 수 있는 직업 영역에 넘어오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1800년에 제정됐던 조례에 따라 바지를 입으려 할 경우 관할 경찰서의 허락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 조례는 1909년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한” 혹은 “말고삐를 쥐고 있는 한” 등의 단서가 붙으면서 사문화되다시피 한다(실제로 조례 자체는 2013년에서야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여군들에게 바지 착용도 허용했다. 다만 애초에 여군을 염두에 두고 군복을 고안하지는 않았던지라, 해군의 경우 원래 남성용 해군 군복을 사이즈만 좀 조정해서 그대로 여군용으로 만들었다. 얼핏 보면 남녀 군인이 구분 안 갈 정도였다. 휘장(cocardes)과 견장(epaulette)만 안 달았다고 한다.
이들은 지금도 러시아 북방함대 기지가 있는 북극 근처의 콜라 만(Кольский залив)으로 배치됐다. 당시에 여군이 창설됐고, 실제로 배치까지 받았다는 뉴스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래서 전담 신문기자가 부대에 배치됐고, 그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행히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하필 북극 근처로 배치됐을까. 다른 해군 기지들이 여군을 안 받으려 했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자원자가 부족한 북극 근처로 보낸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여군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는 잘 아실 것이다.
공산당이 정권을 접수한 1920년대 이후, 소련은 정식으로 여군을 해군 사관학교에서도 받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들을 함선이나 해군항공기 조종사로 배치시켰다. 이들은 공산주의가 애초에 상상했던 “여성의 아름다움”과도 맞아 떨어졌다. 남자의 옷차림과 같은 여성 패션 및 헤어스타일도 당시 인기를 끌었다. 짧은 머리에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은 스타일, 모자, 가슴을 가리는 두툼한 재킷, 허리를 잘록하게 하는 가죽 허리띠 등이었다.
러시아의 성혁명과 연결되는 얘기가 한 가지 더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같은 해 동성애 처벌조항을 형법에서 폐지했다. 그런데 정보 및 비밀경찰을 맡았던 소련 국가정치총국(ГПУ) 직원 중에 남자 직원으로 등록해 들어온 여자 직원도 있었는데, 그녀는 1918년부터 비밀경찰에 복무하면서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하고 다녔고 동료들 중 누구도 그녀의 성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1922년에는 한 여자와 결혼하고 입양아도 한 명 들인다.
게다가 불륜까지 저지르는 등 난삽한 남자처럼 행동했지만 여자라는 사실이 발각돼 “자연에 거스르는 죄”로 소송까지 당했다. 그렇지만 당시 소련 법원은 자연에 거스르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의 결혼 상태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에도 그녀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고, 여러 여자들을 괴롭힌 죄로 체포도 여러 번 당한다(뭔가 러시아 남자스러운 결말이다).
여담이지만 동성애의 경우 스탈린이 다시 형법 안에 포함시켜서 유죄로 만들었다. 그리고 1991년 옐친 대통령때에 이르러서야 다시 형법상 죄에서 사라진다. 즉 1917년에서 스탈린이 집권하기 전까지 여자는 물론 동성애 커뮤니티에서도 짧다면 짧다할 수 있는 ‘혁명’ 기간을 거친 셈이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