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학폭’을 키운 국가주의적 스포츠정책, 시민중심으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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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학폭’을 키운 국가주의적 스포츠정책, 시민중심으로 바꾸자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3.0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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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르는 스포츠계 학폭사태, 오래된 성적·능력 지상주의 탓
민주정부 스포츠 정책, 시민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실현에 초점맞춰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교수] 신학기 개학을 맞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학교폭력 미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3월 1일에도 학창시절 학교 폭력(학폭) 가해자로 지목돼 파장을 일으켜온 흥국생명 소속의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에 대한 또 다른 폭로가 제기되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재영·이다영으로부터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A씨의 글이 올라왔다.

끊이지 않는 스포츠계 '학폭 사태'와 미봉책

A씨는 전주중산초·전주근영중·전주근영고등학교 시절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와 함께 배구선수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하루는 가해자들(이재영·이다영)이 갑자기 저 혼자만 따로 불러서 집합시켰다”며 “가해자 중 한 명의 지갑이 없어졌다는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또 쌍둥이 자매가 글쓴이에게 ‘오토바이 자세’를 30분 동안 시키며 “네가 가져간 것 아니냐”며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A씨는 “끝까지 부정했지만 믿어주지 않았고 감독에게 말해 단체 집합을 받았다”며 “감독이 제 뺨을 때리며 물었고 아니라고 했더니 ‘가져갔다고 할 때까지 때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양쪽 뺨을 40대 가까이 무자비하게 때렸다”고 설명했다. 감독에게도 구타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A씨는 학부모와 관련된 상세한 피해 사실도 기술했다. 그는 “쌍둥이들은 (자신의 부모 외에) 다른 부모가 오는 걸 안 좋아했다. 그래서 내 부모가 와도 쌍둥이 몰래 만나야만 했다. 걸리는 날에는 수건과 옷걸이로 두들겨 맞았다”고 썼다. 아울러 A씨는 “가해자들이 TV에 나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허무했다”라며 “무기한 출전 정지와 국가대표 자격 박탈 모두 여론이 잠잠해진다면 다시 풀릴 것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피해자 폭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학폭 미투’ 폭로를 지켜보는 학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심장이 떨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 뻔하다. 자신의 자녀도 언제든 학교 폭력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학부모들은 우리 애가 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로 촉발된 학교 폭력 미투가 배구는 물론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넘어 위계적인 사회조직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실 학교 폭력, 특히 학교 체육계의 폭력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의 관계부처는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하지만 문제는 더 크게 드러날 뿐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2019년 1월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코치에게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인 개선과 우리 사회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한 조사와 수사,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도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체육계 인권 보호 방안을 담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일명 최숙현법)의 시행(2월 19일)과 더불어 2월 24일 학교운동부 폭력 근절 및 스포츠 인권보호 체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 방안에서는 과거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 중심의 사건 처리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앞으로 학교체육 현장에서 폭력이 근절될 수 있도록 예방 차원의 제도 개선과 체육계 전반의 성적지상주의 문화 개선 등의 내용을 담았다.

교육부는 체육계 학교폭력 피해자를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스포츠윤리센터도 만들어진다. 민간 학교폭력 전문기관과 연계해 피해자에 대한 심리·법률 상담을 지원하고, 피해자가 원할 경우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유도하는 등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번에 내놓는 정부의 처방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차제에 스포츠계의 학교폭력이 끊이질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단해보고 추후 보완과제를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국가주의적 스포츠정책’이 ‘학폭’을 키운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고, ‘시민중심의 스포츠정책’으로 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 것을 기대한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이 서울 서대문구 스포츠윤리센터를 방문, 스포츠윤리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이 서울 서대문구 스포츠윤리센터를 방문, 스포츠윤리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뿌리깊은 '국가주의적 스포츠정책'

최근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쓴 칼럼(‘스포츠 민족주의에서 스포츠 민주주의로’)은 국가주의적 스포츠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폭력과 괴롭힘이 만연한 체육계의 현실은 성적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생 선수들은 운동만 잘해도 명문대에 가고 돈과 명예가 따르는 프로 선수와 국가대표를 꿈꿀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성적 지상주의는 경기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지도자가 선수를 때리고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는 풍토를 낳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합숙 생활로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에 노출된 선수들은 폭력을 내면화한다”고 진단한다. 그는 대안으로 “운동과 스포츠가 일상생활 한가운데로 자연스레 녹아드는 게 스포츠 민주주의의 건강한 삶이다. 우리도 국가주의적 스포츠 민족주의를 넘어 운동 자체가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평중 교수의 칼럼이 밝힌 대로, 예체능계를 포함한 위계적인 사회조직 전반에 만연한 폭력은 각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성적지상주의와 능력지상주의에 따른 차별의 결과라는 점에서 국가의 권력작용과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성적지상주의와 능력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좋은 성적과 능력은 곧 선(善)이고 반대로 나쁜 성적과 능력은 곧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차별을 동원하여 학생들과 지도자들의 폭력사용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악의 이분법으로 위계서열과 차별구조를 정당화하는 성리학적 유습을 닮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스포츠 정책은 ‘태릉선수촌’과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를 잉태한 ‘국민체육진흥법’을 근간으로 해왔다. 국민체육진흥법 1조는 우리나라 체육진흥의 궁극의 목적은 ‘국위 선양’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1조는 “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하여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 진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체력증진, 여가선용과 복지향상에 이바지하며 우수한 경기자 양성으로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되어 있었다.

스포츠 선진국 미국과 일본은 국가대표라 할지라도 훈련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 상비군을 훈련시키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미국과 일본은 언제, 어디서 훈련을 하든 오로지 선수 자신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올림픽 등을 앞두고 단체 훈련을 하는 종목도 있으나 한국처럼 집단생활을 하며 훈련을 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미국과 일본은 국가대표 훈련장에 별도로 ‘선수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태릉선수촌의 성공은 세계스포츠 관계자들에게 부러움을 사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가주의의적 접근이라는 우려를 자아냈다. 일부 서구 언론들은 태릉선수촌이 선수들에게 강압적인 합숙훈련을 시켜 반인권, 폭력 등을 유발하는 ‘스포츠 병영’으로 표현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체육 시스템 관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체육진흥법은 ‘태릉선수촌’과 ‘국가대표 상비군 제도’를 통해 특권과 배제로 작동되는 감시와 처벌의 권력이 되었다. 이런 국민체육진흥법의 작동을 볼 때, 그동안 스포츠 분야에서 발생해온 성폭력, 신체적·언어적 폭력, 학습권 침해 등 반인권권 상황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구축된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스포츠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원인귀결로 진단된다. 이런 구조적인 원인귀결은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넘는 동안 이를 제대로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온 민주정부의 책임도 무겁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캐나다 등 대부분의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엘리트 위주의 국가주의적 스포츠 정책을 전환해 학교 스포츠와 생활 스포츠 등의 균형적 발전을 지향해왔다. 나아가, 인권, 평등, 다양성, 민주주의, 연대와 참여 실현의 좋은 매개로서 스포츠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을 입안,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스포츠정책 패러다임은 이러한 국제적 변화와 개혁의 흐름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1960~7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기에 구축된 국가주의적, 엘리트주의적 스포츠 정책 및 제도(체육특기자제도 도입, 전국·소년체전 개최, 올림픽 등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병역특례 및 연금제도 운영, 국가대표 선수촌부터 학교운동부까지 폐쇄적 합숙소 문화 만연 등)가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경과하도록 본질적 수준의 변화없이 그대로 지속되었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발생했던 신체 폭력, 성폭력, 학습권 침해 등 심각하고 광범위한 수준의 반인권범죄가 단순히 일부 지도자와 가해자들의 일탈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국가주의적 스포츠 정책 및 제도로부터 비롯된 구조적 원인귀결의 문제임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7번의 정권이 들어서는 동안 교육부는 권위주의 시기에 구축된 체육특기자제도와 전국소년체전, 운동부 합숙소 문화 등 학교운동부 중심의 학원 스포츠 정책 및 제도의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학생운동선수에 대한 인권 보호의 책임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방기되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교육당국의 진지한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스포츠를 시민사회의 자율적 활동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로 유지해온 미국과 캐나다는 강력한 스포츠 성폭력 예방정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점은 우리정부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지원 서비스 제공과 조사 및 구제 업무를 기존 체육단체나 국가올림픽위원회, 나아가 스포츠분쟁조정센터로부터도 독립된 단위에서 수행하도록 결정한 사실은 많은 정책적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참에 우리정부도 스포츠정책의 목적이 국위선양이 아니라 시민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실현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선언하고 관련 법제도를 일관성 있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경쟁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목적인 신체활동이다. 그래서 경쟁의 최상위 형태가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 일수록 경쟁의 즐거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는 것이고 국위선양은 이에 따르는 부수적 효과라는 것도 밝힐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정부는 스포츠 경쟁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것,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선수 개인의 목표이지 국가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역할은 개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최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원하는데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스포츠 정책의 본질과 원칙은 시민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실현에 맞춰야 한다. 국위선양이나 사회통합, 건강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부수적인 것이지 본령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스포츠 폭력 미투를 계기로 상처 입은 선수들은 잘 보듬고, 더 이상 상처주지 않는 ‘시민중심의 스포츠정책’이 계획되고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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