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과열된 영입 전쟁: 개발자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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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과열된 영입 전쟁: 개발자 전성시대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1.03.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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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넥슨이 불을 지핀 개발자 영입 전쟁이 게임을 넘어 IT기술이 필요한 모든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개발자 영입과 관련된 치열한 쟁탈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가 최근 하루에 100여개 이상 속출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묻지 마' 벤처 붐이 일었던 시기에 웹디자이너, 웹프로그래머 등이 상한가를 친 후 20년만에 개발자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넥슨과 넷마블이 연봉 800만원을 인상하자 다른 기업들도 질세라 더 크게 자사 조건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곧바로 게임업계 경쟁기업인 컴투스와 게임빌도 전직원 800만원 연봉 인상을 발표했다. 뒤이어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제작사인 크래프톤은 개발직군 연봉 2000만원 인상과 함께 개발직 초봉 6000만원을 제시,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부동산중개플랫폼 기업 ‘직방’이 개발직군 연봉을 2000만원 인상한다고 선언했다. 넥슨과 넷마블이 개발직군 초봉을 5000만원으로 제시하자 크래프톤과 직방이 6000만원을 부른 셈이다. 토스와 당근마켓 등이 억대의 스톡옵션과 연봉인상률 최대 50%까지 내걸자 이제 ‘백지수표’만 남았다는 농담이 돌고 있다.

A급 개발자를 위한 기업의 쟁탈전

최근 게임 및 포털기업에 근무하는 임원은 필자에게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업이 온라인으로 재편되면서 개발자의 몸값이 더 뛰어오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AI, 빅데이터 분석, 블록체인, 플랫폼전략 등을 구체화할 수 있는 A급 개발자는 정말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 높은 연봉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야만 A급 개발자를 그나마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의 평가처럼 개발자들의 전성 시대가 도래한 건 AI, 빅데이터, 플랫폼 등 4차 산업혁명 이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업종과 산업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게임 및 IT기업보다 최근 개발자를 더 많이 영입한 기업은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년간 네이버, 카카오, 포털 기업 등으로부터 A급 개발자들을 모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온라인쇼핑업체 쿠팡도 대규모 개발자 영입에 나선 만큼 개발자를 모셔오기 위한 스카우트 전쟁은 과열 상태에 이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식 가격보다 개발자를 영입하기 위한 연봉에 더 많은 거품이 끼어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개발자 영입에 뛰어든 유명 기업만 15곳에 달하는데 이들은 모두 높은 초봉, 연봉 인상률, 인센티브 등 금전적 혜택만 언급하고 있다. 이직이 잦고 애사심보다 프로젝트 성과 위주로 경력을 쌓는 A급 개발자를 찾기 위해 더 높은 액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A급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 연봉을 제시하는 프로구단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직장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앱 ‘블라인드’에서도 개발자의 연봉은 연일 화제다. 이제 엔씨소프트가 얼마를 제시할지, 그리고 삼성전자 등 대기업은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에 대해 개발자들의 예측과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수많은 기업이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정말 경영진의 심사숙고와 사업 방향성을 위해 영입에 나서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계방향으로 네이버·카카오·토스·쿠팡 채용 사이트’
기업들이 IT기술 개발자 영입을 위해 잇달아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거품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네이버·카카오·토스·쿠팡 채용 사이트(왼쪽부터 시계방향) 사진=연합뉴스

'묻지 마' 영입이 만드는 레드오션

주식 가격이 오를 것 같자 너도나도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살펴보지 않고 주식을 사들이는 것과 지금의 개발자 영입 전쟁은 그 성격이 유사하다. 넥슨, 쿠팡, 토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한 개발자 영입에 지난 두달 간 수많은 기업이 뛰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개발자가 중요했다면 충분한 기간에 걸쳐 이들을 위한 조건을 제시했어야 한다.

개발자 전성시대가 향후 의학계가 아닌 이공계로 국내 우수인재를 다시금 집중시킬 수 있는 긍정적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개발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한 기업은 있어도 이들이 입사하면 어떤 경로로 개발자의 역량을 강화하고 육성할지에 대해 장기적인 성장 로드맵을 밝힌 기업은 보이지 않는다. 

개발자의 영입이 1회성 프로젝트 성과 또는 과열된 스카우트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한 즉흥적 조치로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개발자 영입에 수많은 기업이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A급 개발자의 90%는 미국, 인도를 중심으로 해외에 있고 국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업계 최고의 개발자는 매우 극소수에 그친다는 것이 IT업계 정설이다. 

컴퓨터공학 등 프로그래밍, 코딩 등을 공부한 후 현장에서 4년 이상 근무해서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아야 그나마 유망한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의 과열된 스카우트 영입은 개발자 몸값에 거품을 끼게 만들고 업계의 레드오션을 초래할 뿐이다. A급 1명을 잡기 위해 기업의 자원을 총동원해서 초가삼간(草家三間)을 태우는 실수는 곤란하다.

개발자 영입보다 더 중요한 건 개발자 육성이라고 학계 전문가들, 현장의 개발자들은 얘기한다. 이들의 이직이 잦은 건 애사심 부족보다 개발자에 대한 장기적 육성이 대체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묻지 마' 영입은 거품과 과열만 초래한다. 과열 영입이 기업의 성과로 이어진 사례도 드물다. 

'묻지 마' 영입이 아닌 그들의 생각을 곰곰이 묻고 고민한 영입만이 A급 개발자를 찾을 수 있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동국대 재직 중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9월부터는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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