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 이야기] 빌 게이츠, '원자력'만이 기후재앙의 해결책이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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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 이야기] 빌 게이츠, '원자력'만이 기후재앙의 해결책이라 했을까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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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 담긴 그 해결책은
가난한 이들에게 안정적 에너지를 저렴하게...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까지 확장된 빌 게이츠의 결론은 "기술·정책·시장"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새 책이 나오는 소식을 주로 서점에서 얻는 편이다. 매주 한 번 이상은 대형서점 여러 곳을 순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서점에 새 책이 펼쳐지기 전부터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빌 게이츠의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 그 책이다.

지난 2월 15일 유명 매체들이 이 책의 등장을 알렸다. 빌 게이츠가 원자력 발전을 옹호했다면서 마치 ‘원전의 구세주’인 양 소개했다. 그 기사들을 받아 많은 매체가 비슷한 취지의 기사들을 내놓으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빌 게이츠가 말하면 모두 진리인 걸까.

빌 게이츠의 새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사진= 게이츠 노트
빌 게이츠의 새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사진= 게이츠 노트

빌 게이츠는

빌 게이츠를 누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를 벤처기업가나 기술 혁신가 혹은 자선사업가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친환경 연구 투자가로 변신한 모습이다.

빌 게이츠의 활동 소식을 전하는 사이트인 ‘게이츠 노트(Gates Notes)’를 보면 그는 지난 10년간 기후변화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빈곤과 질병 퇴치를 목표로 2000년에 자신과 아내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는데, 재단 이사장으로서 빈곤과 질병 퇴치 활동을 펼치며 맞닥뜨린 에너지 빈곤 문제가 친환경 연구에 빠지게 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빌 게이츠는 전 세계 수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연구를 진행했고, 그 연구 결과를 담은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How to Avoid a Climate Disaster)’을 지난 2월 16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간했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세계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의무가 있지만, 그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13쪽)

빌 게이츠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연구를 하다가 ‘깨끗한 전기’까지 연구하게 된 이유다.

누군가는 스위치만 누르면 전기를 쉽게 쓸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한 현실을, 그런데 전기를 만들려면 화석연료를 태워야 해서 지구가 탄소로 가득해 병들어가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온실가스 배출량 순 제로(net zero) 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순 제로는 배출되는 양과 제거되는 양이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나라가 ‘파리 기후협약’을 통해 달성하겠다고 목표한 ‘탄소 중립’과 같은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선진국이 혁신적인 기후 솔루션을 개발해 2050년 탈탄소화하고, 이런 혁신을 전 세계에 저렴하게 공급해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제로 탄소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혁신가 혹은 기술 찬양가답게 빌 게이츠는 ‘제로’ 달성을 위한 계획을 구체적 기술 중심으로 제시한다. 풍력과 태양광 등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이미 적용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기술들을 소개하고, 이 기술들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 재생에너지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빌 게이츠는 그 이유를 바람은 항상 불지 않고, 해는 항상 떠 있지 않은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래서 그는 획기적 기술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데 필요한 혁신을 책의 많은 부분을 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거기에 빌 게이츠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그는 우리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도구 세 가지로 기술, 정책, 그리고 시장을 꼽는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혁신’의 공급과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빌 게이츠는 결국 ‘혁신’ 공급의 주체는 기업이고, ‘혁신’ 수요의 주체는 정부라 주장한다. 정부가 적절한 유인책으로 기업이 혁신을 많이 만들어내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는 정부의 역할을 여러 번 강조한다.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장치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혁신을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정책도 혁신이다.” (259쪽)

빌 게이츠는 또한 환경과 성장을 대립 관계로 보지 않는다. 책의 후기에서 코로나19를 빗대 설명하며 감염병 창궐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경제를 구하고 팬더모니엄(Pandemonium)을 극복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청정에너지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는 경기 회복을 촉진하고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제로를 달성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즉 규제를 낮추고 지원금을 준다면 청정에너지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제공될 수 있다고. 따라서 경제성장과 제로 탄소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빌 게이츠는 확신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안정적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빌 게이츠의 관심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다. 사진=게이츠 노트
가난한 이들에게 안정적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빌 게이츠의 관심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다. 사진=게이츠 노트

빌 게이츠는 과연 원전을 옹호한 걸까

“원자력 발전은 밤낮과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 지구상 어디에서나 작동할 수 있고, 대규모로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유일하게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이다.” (123쪽)

아마도 언론들은 이 구절을 보고 빌 게이츠가 원전을 옹호했다는 취지의 기사들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356쪽 분량이다. 책에서 원자력 발전이 직접 언급된 건 열두 쪽 정도다. 체르노빌 사고 전까지 방사능 누출 사고의 대명사였던 미국의 ‘스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소개한 것까지 포함해서다.

빌 게이츠는 물론 원자력 발전에 관심이 많다. 가난한 이들에게 안정적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빌 게이츠의 관심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의 관련성을 알게 된 뒤 안정적이며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공급으로 바뀌었고, 이는 차세대 원전 개발에 관한 관심과 투자로 이어졌다고 책에서도 밝혔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이 대목에만 주목했을까. 책 전반에 걸쳐 에너지 생산, 제조업, 농축산업, 교통, 냉난방 등 인류 사회 전 영역에서의 변화와 기술 혁신을 강조했던 빌 게이츠의 주장 대부분은 그냥 묻혔다.

대신 많은 언론이 ‘빌 게이츠가 오직 원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 주장했다’는 식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만약 책은 읽지 않고 기사 제목만 본 독자들은 아마도 빌 게이츠가 원전을 옹호했다고 오해할 것이다.

이에 대해 출판사 관계자는 한 언론에 “저자가 원전을 통한 무탄소 전기 생산을 지지하고 있긴 하지만 깨끗한 전기 생산의 방법이 원전만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가 소개한 원전도 우리가 지금 쓰는 원전이 아닌 차세대 원전인데도 원전만을 집중 확대 보도하면서 원전 홍보 책으로 오해하게 되었다”고 반론했다.

빌 게이츠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빌 게이츠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한마디로 “해마다 지구상에 510억톤씩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순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 해결, 투자자의 투자, 그리고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에서 차세대 핵발전을 언급하긴 한다. 하지만 책의 많은 부분은 풍력과 태양열 등 저렴하고 깨끗한 재생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혁신적 기술과 비즈니스에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아가 그는 부자 나라들이 탄소 제로를 위한 지원에 앞장서라고 제언도 한다.

“(탄소 제로 기술과 그 기업에 대한 투자는) 엄청난 경제적 기회이기도 하다. 훌륭한 제로 탄소 기업과 산업을 구축한 나라가 다음 세대에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54쪽)

공익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가이자 친환경 연구가다. 반면 돈 많은 벤처 투자가이기도 하다. 그의 모든 정체성은 어쩌면 돈에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 게이츠의 새 책은 그가 투자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과 기업을 소개한다. 물론 어떤 회사라고 노골적으로 언급하지도 않고, 자기가 투자한 회사에 투자하라고 노골적으로 권유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조언하는 것으로는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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