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영화 ‘기생충’과 분단된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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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영화 ‘기생충’과 분단된 한반도
  •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 회장
  • 승인 2021.02.22 15:4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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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북한 관련 2개 장면, '분단 한국' 상징적 묘사
봉준호 감독, 월북작가 박태원의 문학적 DNA 물려받아
남과 북 주민들, ‘기생충’ 쾌거 맘껏 축하할 때는 언제일까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 회장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 회장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 회장] ‘기생충’수상, 할리우드 장벽 무너뜨린 역사적 사건

한국인들에게 작년 이맘 때 최고의 뉴스는, 비영어 영화로서 최초의 아카데미상을 4개나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쾌거였다. 프랑스도 독일도 일본도 중국도 감히 넘지 못한 미국 영화산업의 '넘사벽'을 한국영화가 돌파한 것이다.

영국의 BBC는 ‘기생충’의 수상을 “한류의 파도가 세계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의 장벽을 문화적으로 무너뜨린 역사적 사건”라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된 한반도에는 뿌리깊은 불안정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 곳을 ‘지도상에서 핵무기를 가진 독재자가 있는 북쪽과 구분해 아래 부분만을 가리켜야하는 위험한 장소’라고 느끼고 있다. 이러한 곳이 세계 문화사에 기록될 문화강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기생충’에, 그리고 감독 봉준호에게 한반도의 분단상황과 북한의 존재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지난 2020년초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상을 수상하고 난 직후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와 봉준호 감독.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20년초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상을 수상하고 난 직후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와 봉준호 감독. 사진= 연합뉴스

북한 관련 지하 벙커와 리춘희 패러디

첫째, '기생충' 영화의 내용 속에 나타난 소재 중에 분단과 관련 내용을 살펴 보자.

이 영화의 대반전은 비오는 날 쫒겨난 가정부 문광(이정은 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인물적 반전은 지하에 숨어사는 남자 근세(박명훈 분)에서 시작되지만, 장소적 반전은 박 사장(이선균 분)의 저택에 숨겨진 넓고 음침한 지하벙커와 비밀의 방이다. ‘많은 부자들이 북한군이 쳐들어 올 때나 채권자들이 몰려 올 때 피신하는 은밀한 장소’로 만든 곳이라고 문광은 친절히 설명한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된 아이디어가 있었다.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을 극적으로 제압한 문광 근세 부부가 넓은 거실을 즐기며 하는 놀이가 북한 조선중앙TV 리춘희 앵커의 목소리에 대한 성대모사 패러디였다. 영어자막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이름이 두 번 등장한다. 이 장면은 칸영화제 현지상영에서 많은 관객들의 웃음과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정은(가정부 문광 역)이 북한 조선중앙TV 리춘희 앵커의 목소리에 대한 성대모사 패러디를 하고 있다. 사진= '기생충' 스틸 컷
영화 '기생충'에서 이정은(가정부 문광 역)이 북한 조선중앙TV 리춘희 앵커의 목소리에 대한 성대모사 패러디를 하고 있다. 사진= '기생충' 스틸 컷

분단 한국사회의 모순 느끼며 성장한 세대

둘째, 봉준호 감독이 성장기를 보낸 분단된 한국사회의 구조적 부조리가 ‘기생충’에 미친 영향이다. 세계적 찬사를 받았던 봉준호 감독의 날카로운 영화적 분석력의 비결은, 그가 살아 온 1970~80년대 이후 한국적 시대상황과 떼어놓고는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독일의 신문 디 벨트(Die Welt)지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보여준 날카로운 시각을 그의 성장배경으로 설명했다. 이 매체는 봉 감독이 미군 헬기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고, 운동권학생으로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1980년대의 대학생활을 겪었으며, 그의 어머니 가족은 외할아버지가 월북한 이산가족으로서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신문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한국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경험한 봉준호 감독이, 오랜 역사를 가진 서구의 자본주의를 경험한 서방의 작가들 보다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오히려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해석은 분단의 아픔과 민주화의 고통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경험과 기억들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강력한 문화적 자산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외할아버지 월북작가 박태원의 유전적 영향

셋째, 오늘의 봉준호 감독을 있게 한 혈통적 유전적 배경이 이 영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 보자. 그 부친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실용미술의 선구자였으며, 그의 외할아버지 박태원 작가는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스토리텔러였다.

일제 강점기에 모더니즘 작가로서 이름을 떨친 외할아버지 박태원은, 해방 후에 월북해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소설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영웅적 작가로 직접 인정받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직후에 북한의 신문 통일신보는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과 죽음의 문턱에서 이 소설을 써내려간 치열한 작가정신을 높이 평가한 장문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물론 이 기사에 ‘기생충’이나 ‘봉준호’라는 언급은 없었다.

할아버지 박태원, 손자 봉준호의 평행이론

문화평론가 류수연은 할아버지 박태원의 손자 봉준호에 대한 유전적인 영향을 ‘문화적 평행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아래와 같이 재미있게 분석했다. (2020.2.17일,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첫 번째는 바로 ‘독보적인 헤어스타일’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소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봉준호의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의 기원은 그의 외조부인 구보 박태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봉준호 감독(왼쪽)과 외할아버지 소설가 박태원(가운데 및 오른쪽). 사진=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봉준호 감독(왼쪽)과 외할아버지 소설가 박태원(가운데 및 오른쪽). 사진=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두 번째는 ‘문화적 잡식성’이다. 봉준호 감독은 엄청난 만화광이었고, 대학 신문에 네 컷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또한 박태원도 자신이 쓴 소설의 삽화를 직접 그렸을 뿐 아니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에 Camera-eye와 Over-lap과 같은 영화적 기법을 사용했다.”
 
“세 번째는 ‘실험정신’이다. 봉준호는 범죄, 스릴러, SF와 같이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박태원 또한 다양한 창작기법을 통해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탐정소설이나 범죄소설에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탐정소설을 완성했다.”

북한의 이모, 봉준호의 영화 보고 싶어

2006년 6월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어머니와 삼촌이 북측의 큰이모를 만났다. 외조부와 함께 월북해 평양기계대학의 영문과 교수직에서 퇴임했던 큰이모 설영씨는 당시 영화 ‘괴물’로 천만관객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있던 조카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조카가 만든 영화를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태원을 떠올렸을 것이다.

1988년대 해금조치 이전까지는 문학계에서도 박태원 이름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여맹위원회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5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외가에서 할아버지 ‘박태원’과 북측의 가족들은 말 그대로 금기의 고통과 그리움의 응어리가 아니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남과 북 가족들이 격의 없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와 손자의 작품과 그 성과를 터놓고 축하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자녀들이 지난 2006년 6월 19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감격의 재회를 하고 있다. 왼쪽은 박태원의 둘째아들인 봉준호 감독의 외삼촌 재영씨, 오른쪽은 재영씨의 누나로 큰이모인 북측의 설영씨. 사진=연합뉴스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9948?no=4994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봉준호 감독의 외삼촌이자 박태원의 둘째아들인 재영씨(왼쪽)가 큰이모이자 재영씨의 누나인 북측의 설영씨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과 북이 터놓고 ‘기생충’을 축하할 수 있는 미래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기생충’의 세계적 쾌거를 서로 눈치보지 않고 기뻐하며 손을 마주잡고 축하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우리 공화국의 영웅적 작가 박태원의 손주가 미국 할리우드의 아성에 일침을 가하는 역사적인 상을 받았단 말이오...”

남과 북이 문화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미래. 이 또한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 필자인 박기찬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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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송아 2021-02-22 16:37:59
헐 ~~지하벙커를 북한과 비교할 아이디어...
감탄!! 논리적이면서 깨달음이 있네요.
강추입니다.

정연욱 2021-02-22 17:01:31
신기하고 재미난 분석 감사합니다 ~~~

이** 2021-02-22 17:04:46
영화 기생충으로 이룬 업적을 남북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할 날이 오겠지요.

장이사 2021-02-24 07:08:30
기생충에 대한 또 한가지를 덕분에 알게되었네요. 봉감독에 세계관에 이런 문화 유전자가 있었네요. 재미았는 해설 TMI?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