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부족한 의료 자원의 분배와 정의론에 대하여
상태바
[김장한 칼럼] 부족한 의료 자원의 분배와 정의론에 대하여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1.02.19 10:5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발생한 '부족한 의료자원 분배' 문제
유럽서 고령 코로나환자에 산소호흡기 떼는 결정하기도
현실에선 상반된 도덕적 원리가 지지를 받는 '정의' 나올수 있어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론에서 언급되어 요즈음 회자되는 '트롤리(trolley) 논쟁'은 의료 윤리 영역에서 가치 판단을 공부하기 위해서 자주 언급되는 사고 실험에 관한 것이다.

센델의 '트롤리 논쟁'

샌델 교수는 수업에서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하여 질문을 던진다. 첫째 경우는 트롤리 전차가 달려오는 것을 모르고, 철로에 서 있는 5명을 구하기 위해서 선로전환기를 당기고, 그로 인해 무고한 한 사람이 사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한 명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두 번째 경우는 유사한 상황에서 옆에 서 있는 무고한 사람을 철로에 밀어 버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1명이 죽고 5명이 살아나는)는 첫째 경우와 동일하다. 첫 경우에 동의했던 상당수 학생들은 두 번째 경우가 첫째와는 도덕적으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샌델의 강의는 모호한 도덕적 갈등 상황을 비교·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사례에서 도덕적 차이는 없다.

1명을 희생하고 5명을 살리는 공리주의 입장을 택하든지, 1명의 목숨을 5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무론적 윤리관을 택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상반된 도덕적 원리들...공리주의와 의무론적 윤리관

구분되는 도덕적 원리에 기반한 두 논쟁은 정반대의 결론을 각각 정당화시키기 때문에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는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논증으로 상대방 주장 원리가 작동하기 어려운 극단 사례를 제시한다.

공리주의는 이익이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원자폭탄을 숨겨놓은 테러리스트로부터 폭탄의 위치를 알아내어야 하는 상황이다. 터지기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이다. 테러리스트에게 고문을 하는 것은 허용되는가? 원자폭탄이 터지면, 자신, 가족, 친지는 물론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은 죽게 된다. 테러리스트가 절대 비밀을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희생하면 진술을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면 어떠한가?

의무론적 입장에서는 이익 차이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제시한다. 부족한 의료 자원인 이식 장기 구득에 관한 것이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 5명을 구하기 위하여(예컨대, 정치인,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 의학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매우 필요한 사람들) 평범한 행인 1명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허용되는가? 2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1명의 행인을 희생하는 것, 또는 51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49명을 희생하는 것은 어떠한가?

공리주의 입장을 강조하면 이러한 행위는 정당화된다. 하지만 의무론적 윤리관에 의하면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영국 의료인력. 영국은 지난해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심각한 개인보호장비 부족난을 겪기도 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영국 의료인력. 영국은 지난해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심각한 개인보호장비 부족난을 겪기도 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생명 가치를 판단하는 현실은 어떤가

일반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세계 2차 대전의 나치 시대에 우생학 또는 더 나아가 사회적 우생학에 바탕을 둔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들과 유전적 결함을 가진 자, 거동을 하지 못하는 고령 노인들의 삶에 대한 가치 평가, 나아가 아리안에 비교하여 열등한 민족이라는 집시와 유태인에 대한 가치 평가 등이 대학살(Holocaust)로 이어진 역사적 사실을 강력한 근거로 제시한다.

법학, 특히 헌법학에서 생명권에 대한 설명에서도 사람 생명의 가치를 비교하는 일은 흔히 부도덕적인 것이라고 한다.

동가치적 의무의 충돌 상황으로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응급실에 응급 환자가 도착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인데, 곧 이어 다른 응급 환자가 병원을 수송되어 왔다. 두 환자 모두 인공호흡기를 적용하지 않으면 사망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뒤에 도착한 환자가 앞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로 인해 뒤에 도착한 환자가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의사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만약 의사가 보기에 뒤에 온 환자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중요 인사이고 앞 환자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전과자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되고, 위법성 조각 사유 역시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논리는 일반적으로 형법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전염으로 유럽의 응급실에 환자가 폭주하고 인공호흡기가 부족하기 시작했을 때, 현실적으로는 다른 기준들이 적용됐다.

코로나에 감염된 노인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공호흡기와 병상은 소생할 가능성이 높은 젊은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상태가 중해 사망할 것으로 판단되는 노인(먼저 도착해 치료를 받던)들은 사용하던 인공호흡기를 제거당한 채 퇴원 조치를 당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한 고민은 노인이라도 평소에 건강하던 사람이라면 도리어 나이가 좀 어리지만 병약한 환자보다 소생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반론 정도였다.

이것은 전시 의료에서는 소생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우선 치료해 오던 '트리아지(triage) 전략'으로, 치료 효과에 따라 환자 치료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지금도 통용되는 '부족한 응급실 자원 분배에 관한 원칙'이다.

현실에서 정의는 '불완전 균형 상태'

다시 샌델의 정의론으로 돌아가 보자. 2005년 아프카니스탄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 네이비 씰 마커스 루트렐 하사는 양치기 소년에게 잠복을 들키게 된다. 작전 중이던 4명의 대원은 투표를 하는데, 그 결과 그 소년을 죽이지 않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후 탈레반의 습격을 받아 동료 부대원 3명과 헬기로 구조를 왔던 대원 16명이 사망하게 된다. 공리주의에 반하는 결정을 한 대가였다.

또다른 스토리에서 영국 선박 미뇨넷호 선원 4명은 구명 보트에서 표류를 하던 중 19일째 날 바닷물을 마시고 탈수에 빠진 17살 리처드 파커를 살해해 그의 살과 피를 먹어 목숨을 연명했다가 표류 24일째 구조됐다. 영국에 도착한 이후에 큰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인죄가 인정됐다. 공리주의에 따른 결정을 한 대가였다.

요즘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에 대한 공박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 논쟁이 뜨겁다. 정부의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에 대한 통치행위 이론과 적법성 논쟁이 한편으로 뜨겁다.

이 논쟁의 근저에는 도덕적 결론이 하나이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개의 결론이 모두 도덕적 원리에 의해 지지 받는 상황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반박하기 어려운 도덕 원리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은 없다. 우리가 정의롭다고 하는 것들은 결국 현실 제약 조건하에서 사회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 구성원들 각자가 숙고해 동의한 결론들이 이미 지지받고 있는 도덕 원리를 통해 인증을 획득하는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글을 쓴 목적은 현실 세계에서 얻어진 도덕적 결론이 불완전 균형 상태라는 결론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기자 2021-02-19 16:40:59
아프카니스탄 관련해서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 기억이 나네요. 칼럼을 읽으면서 시대에 따라 정의라는 기준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바일큰손 2021-02-19 17:08:14
글 후반부에 주제를 관통하는 워딩이 저의 의사결정 방식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는 모두가 부정하기 어려운 도덕은 존재하지만 모두 동의하는 결론은 없다" #가치상대주의 #도덕적결론 #불완전균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