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제철유적 확인…백제 것인가, 신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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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제철유적 확인…백제 것인가, 신라 것인가
  • 김인영
  • 승인 2016.06.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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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문화재연구소 "백제 유적"…김씨 족단 경로로 신라 것일수도
▲ 유적지 전경 /문화재청

충북 충주 지역에서 4세기대 철(鐵) 생산 유적지가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소장 박종익)가 ‘중원(中原) 지역 제철기술 복원연구 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충주 칠금동 백제 제철유적 발굴조사’ 결과, 4세기대 백제 철 생산유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 유구 배치도 /문화재청

발굴조사에서 백제의 대표적인 원형 제련로(製鍊爐) 4기를 비롯하여, 철광석을 부수던 파쇄장과 배수로, 추정 정련로(精鍊爐), 불을 때던 각종 소성유구 등 일련의 철 생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됐다. 이들 유구는 밀집도가 매우 높아 이 지역이 당시 철 생산단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 1호 제련로 하부시설 /문화재청

특히 1호 제련로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작업장 하부로 50㎝ 정도를 판 후 숯(5~10㎝)과 모래(30㎝), 점토(5~10㎝)를 차례로 채웠으며, 약 20㎝ 두께의 벽체의 외곽으로 단단한 점토를 덧대어 보강했다.

▲ 4호 제련로 전경 /문화재청

4호 제련로에서는 제련로에 중첩된 구덩이 내부에 탄화목(炭化木)이 발견되었으며, 탄화목 위로 슬래그(Slag, 철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가 흘러내린 양상이 확인됐다. 이러한 사례가 보고된 것은 이번이 최초이며, 앞으로 조업과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연구소측은 기대했다.

▲ 4호 제련로 구동이내 탄화목에 흘러내린 슬래그 /문화재청

그리고 이번 조사에서는 동일 지역 내에 유구가 여러 층으로 축조된 점이 확인됐다. 기반층 위로 총 4회에 걸쳐 슬래그 등의 철 부산물이 토양과 함께 매립되었는데, 매립된 층마다 다시 가마를 만들어 사용하고 또 폐기하는 등 같은 위치에서 철 생산이 장기간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 출토 유물 /문화재청

유적의 시기는 출토된 대형 항아리편 등으로 볼 때 대략 4세기대로 추정했다. 제련로와 출토 송풍관(送風管) 등의 유물, 시기 등이 중원 지역 철기생산을 대표하는 진천 석장리 백제 제철유적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인접 지역의 탄금대 토성 내부에서도 철정(鐵鋌) 40매가 출토되어 이 지역이 진천과 더불어 백제 중요 철 생산 기지이자 수운(水運)을 통한 유통 중심지였음을 확인했다.

 

* 송풍관(送風管): 송풍장치인 풀무로부터 가마 속에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흙으로 만든 통 모양의 관
* 철정(鐵鋌): 철기를 만들기 직전의 철소재로 대장간으로 유통되어 각종 철기로 제작됨.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국내 3대 철 생산지이자 다수의 제철유적이 남아 있는 충주 등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고대 제철기술을 복원하기 위한 중장기 학술연구를 해왔다. 지난 4월 시작된 이번 조사는 ‘충주 탄금대’(명승 제42호)의 남쪽 경사면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내년부터 조사지역을 주변으로 확장해 보다 심층적인 학술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발굴조사 뿐만 아니라 제철기술 복원실험, 자연과학적 분석과 민속조사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복합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대 제철기술을 복원해 나아갈 예정이다.

▲ 2호 제련로 /문화재청

쟁점: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제철 유적지를 백제의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소는 유적의 시기는 출토된 대형 항아리편 등으로 볼 때 대략 4세기대로 추정했다. 제련로와 출토 송풍관(送風管) 등의 유물, 시기 등이 중원 지역 철기생산을 대표하는 진천 석장리 백제 제철유적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인접 지역의 탄금대 토성 내부에서도 철정(鐵鋌) 40매가 출토되어 이 지역이 진천과 더불어 백제 중요 철 생산 기지이자 수운(水運)을 통한 유통 중심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주지역이 신라 김씨 왕족이 남하한 루트라는 점에서 신라의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역사학자 강종훈은 저서 「신라상고사 연구」에서 김씨 족단이 소백산맥 남쪽의 경북 영주를 발상지로 하고, 소백산맥 이북의 충주, 괴산, 보은, 소백산맥 이남의 상주, 문경을 세력권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흥왕때 김씨 왕족들은 충주를 ‘국원(國原)’이라 부르며, 소경(小京)으로 삼아 서라벌의 귀족자제와 육부의 백성을 이주시켰다. 국원은 ‘나라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김씨 세력의 유서가 깊은 곳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충주 제철 유적지가 김씨 왕족들이 경주에 입성하기 앞서 철기 문화를 구축하며 세력을 확보했던 지역의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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