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TV조선-MBN '트롯' 소송, 표절관행 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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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TV조선-MBN '트롯' 소송, 표절관행 끊을까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
  • 승인 2021.01.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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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롯' 저작권자 TV조선, MBN 상대 저작권 침해 손배소 제기
무한도전, 슈퍼스타K2 등 '원조논쟁' 사례, 방송계 표절관행 비난받아
대법원 판례, '실질적 유사성' 중시...TV조선 승소 가능성
법원, '대박 프로그램' 아류 양산하는 방송계에 경종 울려야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지난 18일 전례 없는 국내 방송사 간 표절 소송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되었다. TV조선이 MBN의 ‘보이스트롯’이 자사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시리즈를, ‘트롯파이터’는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MBN은 ‘보이스트롯'은 연예인으로 출연자를 한정하고 있고, '트롯파이터'는 TV조선의 '사랑의 콜센타'보다 두 달 먼저 방송된 자사의 '트로트퀸' 의 포맷을 활용한 것으로 TV조선 트로트 프로그램에 대한 표절 논란과는 무관하다며 맞대응 의사를 밝혔다.

그간 방송계에서 콘텐츠, 포맷의 유사성에 대한 논란은 숱하게 반복되었다. 과거 MBC가 <무한도전>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후 KBS가 <1박 2일>을 만들었을 때 논란이 되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Mnet이 <슈퍼스타K2>에서 1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자 지상파 3사는 곧바로 유사 오디션을 만들어 원조 논쟁이 있었다.

끊이지 않는 '방송 포맷' 표절시비...저작권법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국내 방송사 간의 법적 대립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왔던 터라 방송계에서도 이번 양사의 소송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방송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에 대한 판례가 많지 않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특성과 까다로운 입증의 문제 등 저작권법적 측면으로도 판단이 쉽지 않은 사안이라,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국내외 판례를 볼 때 방송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 여부의 요건과 판단기준은 무엇인지, 나아가 이번 사건에서는 어떤 점이 소송의 중요한 쟁점이 될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저작권법상 어떠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침해자가 저작자의 ‘창작적 표현’을 이용하였을 것, ② 저작자의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을 것, 그리고 ③ 침해자가 저작자의 기존 저작물에 ‘의거’하여 작성하였을 것‘이다.

우선 ‘창작적 표현’ 요건은 저작권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작품이 다른 기존 작품과 구별될 수 있을 정도의 독창성을 가진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표현’은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외관으로 표출된 것으로서, 저작권법에서는 이러한 ‘표현’만을 저작물로서 보호하고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

‘방송 포맷(Format’)’이란 방송 프로그램을 구성 및 제작하는 기법을 의미하며 기획, 연출, 줄거리, 진행방법, 세트 디자인, 출연자의 행위 등을 포함하는데, 저작권법의 관점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쟁점이 바로 이 ‘방송 포맷’이 과연 ‘표현’이냐 ‘아이디어’이냐의 문제이다. 방송포맷을 구체적인 ‘표현’으로 본다면 저작권법상 보호가 가능하지만, 단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면 포맷만을 차용해 동일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방송 포맷’은 아이디어와 표현의 중간영역(gray area)에 있다고 보았고, 해외 여러 판례에서도 판단이 엇갈렸다. 실제로 ‘방송 포맷이 아이디어적 요소가 강하고, 대부분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흔히 사용되어 온 요소들을 단순히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가 부정된 사례가 더 많다.

TV조선 미스트롯2(왼쪽)와 MBN의 보이스트롯. 사진=연합뉴스
TV조선 미스터트롯(왼쪽)과 MBN의 보이스트롯.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짝' 소송에서 저작권자 손 들어줘

그러던 중 2017년 국내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대법원 판결인 ‘짝’ 판례가 나왔다. SBS가 CJ E&M의 “쨕 재소자 특집”(tvN방송)과 “짝꿍 게이머특집”(게임프로모션용 홈페이지 게시)이 자사의 예능 프로그램 “짝”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다(대법원 2017.11.9. 선고 2014다49180 판결).  

이 사건 역시 방송 프로그램을 ‘창작적 표현’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는데, 대법원은 1심과 2심의 판단을 뒤엎고 “ ‘짝’ 프로그램은 SBS의 방송 제작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성격에 비춰 필요하다고 판단된 요소들만을 선택해 나름대로의 편집 방침에 따라 배열한 기존 방송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성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즉, 프로그램을 이루는 개별 요소(무대, 배경, 음악, 진행방법, 등)의 창작성 외에도, 그러한 개별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그 프로그램 자체가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한 것이다.

작품이 ‘창작적 표현’에 해당한다면, 다음 단계로는 저작자의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두 작품 사이의 유사한 정도가 질적 또는 양적으로 사소한 정도를 넘어 실질적인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요건이다.

이제까지 방송 포맷에 관한 해외 판례들을 보면 주로 개별 요소에 관한 판단보다는 전체적 판단 방법에 따라 실질적 유사성 여부를 판단했고, 전반적인 인상(overall impression)이 다르다거나, 전체적인 관념과 느낌(total concept and feel)에서 차이가 있는 경우 실질적 유사성을 부정해왔다.

‘짝’ 판례에서도 ‘프로그램의 성격, 전체적인 구조, 극전개에 따른 전체적 분위기, 핵심요소들이 어우러져서 내는 전체적인 느낌의 유사한 정도’를 실질적 유사성의 판단 기준으로 들었다. 이러한 기준에서 “쨕 재소자 특집”은 전문연기자가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성인 대상 코미디물이고, 과장된 상황과 사건들로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표현된 점 등이 “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반면 “짝꿍 게이머특집”은 남녀 출연자들이 애정촌에 입소해 이성을 찾아가는 기본 구조를 그대로 차용하고, 복장, 호칭, 속마음 인터뷰 등 핵심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시청자들이 남녀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을 갖도록 표현되었다며 “짝”과의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했다.

마지막 ‘의거’의 요건은 침해자의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에 의거하여 작성되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법원은 기존의 저작물에 대한 접근가능성, 침해자의 저작물과 기존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 등의 간접사실이 인정되면 의거성이 사실상 추정된다고 본다.

이번 소송에서도 법원은 앞선 “짝” 판례의 판단 기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미스트롯’등 TV조선 프로그램 자체에 기존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개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 창작성이 인정될 것이고, 양사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특징, 구조, 분위기, 느낌 등이 얼마나 유사한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 유사성의 입증 책임은 침해를 주장하는 TV조선에게 있으므로 과연 TV조선이 이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MBN측 역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과 ‘보이스트롯’은 참가 대상이 다르고, ‘트롯파이터’, ‘사랑의 콜센타’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적극 주장할 것으로 보여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박 프로그램' 베끼는 방송계 무분별한 제작관행 문제

대박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타 방송사에서 유사한 아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이 어느 새 관행이 되었다. 방송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결과를 떠나 무분별한 제작 관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매체를 불문하고 타인의 저작물을 도용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하며, 방송 포맷도 예외가 아니다. 모쪼록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방송 포맷의 저작권 침해에 관해 더욱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여, 표절 관행이 근절되고 방송 포맷을 공정하게 이용하고 거래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는 서울대 음악대 기악과(피아노 전공), 베를린 국립 예술대를 나왔다. 이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휘명에서 변호사로 재직중이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정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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