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권까지 차출한 '이익공유제', 사회적 합의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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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권까지 차출한 '이익공유제', 사회적 합의가 우선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1.01.27 17: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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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공유제 도입 취지는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이익 공유
코로나로 누가 특수를 누렸고, 피해 입었는지 판정기준 모호
취지는 좋지만 좀더 정교한 논의 필요
권상희 금융부 기자

[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더불어민주당에서 플랫폼과 IT기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됐던 이익공유제 논의가 금융권까지 넘어왔다. 각 금융지주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측되면서 금융권도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이익공유제는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등으로 특수를 본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과 이익을 나누자는 내용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에서 "코로나로 많은 이익을 얻는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다양한 방식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 포스트코로나 불평등 해소 태스크포스(TF)에서 이익공유제가 정식으로 논의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시대에 오히려 돈을 더 버는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대상들을 돕는 자발적인 운동이 일어나게 하자"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돈을 많이 번 기업들이 재정난을 겪는 기업을 돕도록 하자는 것은 어떻게 보면 듣기 좋은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연관성이 없는 주체들과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협력하자는 취지 자체가 공정한 경쟁의 미덕을 최우선으로 삼은 자본주의, 시장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떤 기업이 코로나로 특수를 누렸고 어떤 기업이 코로나로 어려워졌는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익공유제, 2011년부터 '뜨거운 감자'

이익공유제는 이번에 처음 나온 개념이 아니다. 이익공유제는 원래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제안한 제도이다. 대기업이 초과이익을 얻은 경우 이를 하청업체인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대기업이 하청업체 없이는 그만큼 큰 이익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그만큼 초과한 이득을 당사자인 하청업체와 나눠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에 제안한 이익공유제는 이와는 좀 다르다. 대기업과 하청업체라는 맥락이 제거된 채 서로 관련성이 없는 기업들이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 기업이 어려운 기업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의 태스크포스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맥락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익공유제로 누가 얼마만큼의 수혜를 입는지, 인과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 이익공유제의 긍정적 측면이나 정당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익공유제를 시행한다고 했을 때 그 이익을 누구와 나눠야 하는가도 문제다. 가령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같은 플랫폼 운영사의 경우 플랫폼이 초과이익을 달성할 수 있도록 했던 주체는 플랫폼노동자다. 이 경우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면 이익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아니라 플랫폼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 결여된 것이 바로 이 문제의식이다.

왜 이익공유제를 해야 하는가? 왜 어떤 기업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제 3의 기업에 지원을 해야 하는가?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누구의 이익을 받아서 누구에게 줄 것인지, 그렇게 해야 하는 정당성은 무엇인지, 이런 논의가 좀더 정교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에서 강자와 약자로 연결된 고리를 찾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1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코로나 불평등해소 TF 1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1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코로나 불평등해소 TF 1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 규제산업인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이익공유제 논의가 금융권까지 넘어온 것이 영 말도 안되는 소리인 건 아니다. 금융권은 그만큼 사회적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이 불안정해지면 국민들은 세금을 통해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기관을 뒷받침한다.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만 하는 이유다. 

게다가 은행은 진입장벽이 높기로도 유명하다.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하고 산업자본과 울타리를 쳐서 금산분리를 해야 한다. 또한 은행은 경쟁산업도 아닌데다가 기본적으로 국가가 만들어준 독과점의 보호를 받고 있다. 다른 기업보다 더 사회적 책임을 많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이익공유제에 대해 금융지주들에서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한국형 뉴딜부터 시작해서 소상공인 대출만기 연장, 원리금상환 유예 등 그동안 정부에서 하라는 조치는 다 취했는데 이번 이익공유제에까지 동참하라는 것은 나가도 지나치게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정부는 이익공유제를 통해 저축은행과 정부·은행 등이 연간 5000억원 규모의 서민금융기금을 조성하도록 할 예정이다. 정부와 금융회사의 출연금 등을 통해 3500억원 규모로 운영 중인 서민금융기금에 은행 등 대형 금융사가 1100억원 가량을 새로 출연하도록 할 계획이다. 서민금융법이 법제화되면 은행들은 앞으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기금을 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금융기금을) 강제적으로 출연하게 할 경우 일종의 준조세에 해당하기 때문에 형평성있게 해야 할 것"이라며 "금융기업들이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은 세액공제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서민금융기금을 조성할 게 아니라 하청관계가 있는 기업은 이익공유제를 하고, 금융기관의 채권자 채무자 관계에서는 파산 제도를 쉽게 하거나 대출금 만기연장을 해주거나 원금탕감을 해주는 등 채무자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실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다른 사람이 이익을 가져가지 않게끔 채권자에 딱 맞춘 정책이 오히려 코로나19 시국에 훨씬 낫다"고 평가했다. 

그는 "금융권은 지금까지 사회적 도움을 많이 받아 돈을 벌어왔다"며 "채권채무관계에서 제도나 관행이 채권자에게 유리하도록 돼 있기 떄문에 이익을 누린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만 그런 것들을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확하게 매칭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문제의식은 좋은데 정책 방향이 아마추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금융기관이 돈을 번 게 스스로의 힘만이 아니라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이 미숙하다. 제대로 된 문제제기나 정책처방이 부족한 실정에서 단순히 기금을 조성해서 많은 돈을 투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왜 이익공유제인지, 왜 지금인지, 누가 누구에게 지원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자발적으로 참여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유력한 여당 대권주자의 선거공약으로 변질돼서는 성과는 커녕 사회적 혼란만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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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크 예거 2021-01-29 09:02:14
"왜? 내가 미치기라도 한 것 같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