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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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메시지
  • 황헌
  • 승인 2016.01.29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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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언론사 기자만이 만드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랩니다. 각종 SNS가 그런 변화를 가속화해왔는데요, 그 결정타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페이스북이 오늘부터 라이브 비디오 기능을 공식 개시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현장을 라이브 생중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뉴스와 미디어의 문법 자체가 무너진 시대, 어떤 현상들이 다음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한 아침입니다. 금요일 뉴스의 광장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장면 1. 1986년 여름 서초경찰서 기자실

조직폭력배들이 강남구 역삼동 서진회관이라는 이름의 룸살롱에 난입, 다른 조직 청년 4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이른바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서울 시경 박노영 3차장이 발표하고 있었다. 방송사는 MBC와 KBS만 있던 시절. 두 회사의 카메라기자들이 당국의 수사 결과 발표를 ENG 카메라로 녹화하고 있었다.

 

전두환의 5공 정권 언론 정화 및 통폐합으로 방송, 통신, 신문 합해서 9개사가 전부이던 시절. ENG 카메라는 역사를 동영상으로 담는 유일한 기록 도구였다.

 

장면 2. 1991년 봄 이라크 바그다드 외곽

‘선과 악의 싸움’으로 틀을 맞춘 미국이 1차 걸프전쟁을 하던 때였다. CNN을 일약 세계적 뉴스 매체로 발돋움하게 한 전쟁이었다. 바로 그 CNN의 피터 아네트가 영웅이 된 무대이기도 하다. 아네트는 베트남전쟁에도 참전, 종군기자로 명성을 쌓았던 인물이다. 그를 한 순간에 최고의 언론계 스타로 만든 건 개인용 위성 송출 장비였다. 포연이 가득한 바그다드의 모습을 피터 아네트는 이동식 위성 송출 장비로 생생하게 중계했고 지구촌의 시청자들은 그걸 통해 걸프전의 현황을 축구 중계 보듯 시청할 수 있었다.

 

장면 3. 2003년 가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90번지

필자가 특파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파리에서 있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특종 인터뷰했던 때의 일이다. 과거엔 특파원들이 뉴스 한 건 만들어서 서울로 보내려면 인공위성으로 송출해야만 했다. 인공위성 사업 운영자망을 거쳐 비디오를 송출하는 방식이었는데 필자가 파리로 부임한 그 무렵부터는 ‘비디오 스트림’이 위성 송출을 대신했다. 한마디로 말해 뉴스 편집 파일을 컴퓨터 망으로 송출하는 시스템이다. 1분 30초 길이의 뉴스 편집물을 서울로 보내는데 대략 40분 이상 소요되던 시절이었다. 비용은 위성 송출 한 건에 300만원이 들었다면 비디오 스트림 한 건은 불과 1천 원 정도면 되었다.

 

장면 4. 2012년 여름 서울 여의도

MBC 취재기자들에게 스마트폰 비디오 촬영 기법 강의가 있었다. 동시에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셀카 모드를 통해 생방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깔아주었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언제나 중계차 생방송을 통해서만 현장을 볼 수 있었다면 이때부터 큰 재난 현장에 기자 혼자만 가면 얼마든지 생방송 현장 취재 및 중계 라이브 커버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디어의 문법은 빠르게 변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어디까지나 ‘뉴스’라는 개념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정보는 그들 소수자 기자들에 의해서만 생산되었다. 뉴스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언론사만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미 그런 전유물의 의미를 단숨에 통폐합한 거대 괴물로 커버렸다. 작은 거인들이라 자처하던 방송사나 조중동은 신생 인터넷 매체와 동등한 지위에서 네이버라는 창문을 통해 뉴스를 생산하는 갑이 아닌 을의 성격을 가진 생산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게 지금껏 이 땅의 미디어 문법이었다.

 

오늘 아침 샌프란시스코 발 연합뉴스 기사가 하나 떴다. <페이스북 라이브 비디오 공식 개시>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미국에서 애플 iOS용 페이스북 앱을 쓰는 사용자는 누구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스스로 찍고 있는 현장 비디오를 친구와 가족 등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생중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라이브 비디오 생중계가 끝나면 영상 파일이 페이스북에 남기 때문에 나중에 볼 수도 있다.

 

자!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서해 외연열도의 생생한 사계절이 됐든 제주 남쪽 마라도의 억새밭이 됐든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 하나만 들면 곧바로 지금 그 순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거다. 조금만 외연을 확장하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까지 근처에 있는 페이스북 친구에게 지금 그곳 모습이 궁금하면 청하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순기능, 또는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것으로 참 좋은 면이다. 근데 이 라이브 비디오 공식 개시는 또 다른 많은 논점을 던져준다.

 

첫째, 기존 언론사의 가치가 무너지거나 흐려진다.

 

왜냐하면, 누구나 어디서나 어떤 현장에서든 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툰 언어로라도 화재든, 교량 붕괴든, 지진이나 해일이든, 폭우든 폭설의 현장을 중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자? 언론사 사무실에서 미려한 문장력으로 자판 두드리는 행위로는 더 이상 차별화된 기사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 기자보다 기자가 뭔지 배운 적도 없지만 어눌한 어조로 “아! 우짜지요?...저그...저 저 산이 마구 불에 타고 있어요. 연기 땜에 눈을 못 뜰 지경이고...아이고 뜨거워서 도망쳐야겠네!!” 이런 말 하며 흔들리는 화면이지만 생생하게 산불 현장을 보여주는 페이스북 친구의 라이브 비디오 동영상이 가장 생생한 뉴스 아니고 무엇일까?

 

둘째,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가 달라진다.

누구든 1인 언론사를 창업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저가 항공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1년 내내 라이브 커버리지를 통해 기존의 재래식 언론사가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룰 수 있다. 반응 좋고 시청자 늘어나면 그에게 현대차나 삼성전자가 광고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대학의 언론학 강의 체계 전체에 변혁이 와야 한다.

 

지금까지는 해롤드 라스웰이 말한 “Who says what to whom in which channel with what effect?(누가 누구에게 무슨 채널로 무엇을 말해서 어떤 효과를 주는가?)”라는 공식의 범주에서 언론학의 주요 연구 분야가 대별되었다. 바로 거기서 매체론, 뉴스의 본령, 수용자 이론, 매스컴의 효과이론 등의 주요 학문 영역이 구체화된 셈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라이브 비디오 공식 개시는 이 모든 문법을 한 큐에 싸그리 갈아엎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매체부터 수용자와 효과 모든 면에서 재래식 연구 방식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넷째, 범죄와 사생활 침해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라이브 비디오는 마약, 납치, 유괴, 강도, 사기 등 온갖 범죄를 보다 용이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구체적 방법은 공익의 가치상 생략한다. 독자의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그 폐해가 커질지 짐작할 것이다.

 

또 하나, 사생활 침해가 걱정이다. 이젠 언제 어디서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장을 페북 친구들에게 재미로 중계하는 사람들이 급증할 것이다. 공교롭게 그 현장의 프레임 구석에 여러분의 모습이 노출되는 빈도가 급증한다는 말이다.

 

 

캐나다의 영문학자인 마샬 맥루한(1911~1980)은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으로 언론학의 한 장을 열어서 더 유명하다. 그는 1965년(중앙일보가 창간된 해)에 ‘지구촌’이라는 말을 최초로 쓴 사람이기도 하다. 맥루한이 한 말 가운데 언론학도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게 바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표현이다. 즉, 내용과 상관없이 사람이 접하는 미디어에 따라 메시지를 수용자가 다르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같은 뉴스라도 직접 친구로부터 면전에서 듣는 것과 신문으로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라디오로 듣는 것과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도 그렇다. 결국 인간 감각기관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용자는 세계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페이스북이 메시지다.”라는 말은 이미 유효한 센텐스가 된 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다 귀찮아서 MBC도 안 보고 스마트폰도 쓰지 않고 조용한 전원 마을에 집 짓고 채소밭이나 일구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우연히 그 부근을 지나던 어떤 페북 친구가 ‘오늘 생중계는 서종리 전원마을의 봄 풍경입니다.’라는 제목을 예고하고는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일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면?

문법이 바뀌었으니 글 쓰는 마음도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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