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시장 ‘신뢰의 위기’…경착륙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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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융시장 ‘신뢰의 위기’…경착륙 가능성
  • 김인영
  • 승인 2016.01.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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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1990년대 일본 거품붕괴 후처럼 수년간 저성장 겪을수도”

 

중국 금융시장이 ‘신뢰의 위기’에 빠졌다. 정부가 엄청난 유동성을 뿌려도 증시 참여자들은 정부를 믿지 못하고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금융당국이 위안화 절하에 베팅하는 해외 투기자들을 꺾기 위해 역외 선물시장에 물량 공세를 펴고 있지만, 개입하면 할수록 투기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외국인은 물론 중국인마저 돈을 빼내 달러로 교환하고 있다.

공산주의자 출신의 중국 지도부가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시장과의 교감이 약한 탓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실물경제의 과잉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실물이 받쳐주지 않는한 금융시장의 괴리, 부조화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새해 첫달을 보내며 상하이 증시 폭락에다 위안화 하락을 관찰하면서 세계 경제의 리더들 사이에 중국 경제의 연착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중국 경제가 경착륙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그렇게 되길 기대하지 않지만, 그렇게 가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로스는 1992년 10억 달러로 파운드화를 공격해 영국 정부를 굴복시킨 전설적 투자가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의 부채가 이대로 커져나간다면 결국은 금융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중국 경제는 199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된후의 운명처럼 수년간 평균 이하의 성장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그래픽=김인영

 

상하이 증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상하이 증시는 26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3년만에 최대의 유동성을 공급하며 증시 부양의 의지를 보였지만, 6.4%나 폭락했다.

이날 상하이 종합지수는 전거래일보다 6.42%(188.73포인트) 떨어진 2,749.79에 장을 마감했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거래가 중단됐던 지난 7일 이후 최대폭의 하락이다. 이로써 상하이증시는 지수상으로 지난해 상승분을 다 까먹고, 2014년 12월 이후 13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인민은행이 오전에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4천400억 위안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는데도 주가가 폭락한 것은 투자자의 90%를 차지하는 내국인이 중국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유출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상하이지수가 2,500선까지 계속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 등이 당국의 물량공세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인민은행은 위안화 하락을 막기 위해 홍콩 역외시장에 포진한 투기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낙관적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기와의 싸움에서 중국 정부가 해피 엔딩의 결말을 짓기 어려울 것 같다”며 “이는 통화시장의 위험적 요소보다는 시중은행의 무분별한 대출등 중국 경제의 부조화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가 사우디 아라바이,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베네주엘라처럼 자금유출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자본통제(capital control)를 단행하기도 어렵다.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5대 기축통화로 인정받은 터에 그 조건을 무시하고 인위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외환을 자유화해서 변동환율제(floating system)으로 가는 것도 꺼린다. 지금도 매일 고시환율을 제시하며 강세 통화인 달러에 거의 페그(peg)화하고 있는 통화시스템을 풀어버린다면 위안화는 자유낙하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으로서도 불행한 일이며, 이웃나라와 세계경제에도 큰 피해를 줄수 있다.

이 딜레마 속에서 중국당국은 미세조정을 통해 점전직인 위안화 절하를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위안화는 달러화 대비 4.5% 하락했다. 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경제가 이득을 보려면 위안화를 지금보다 14% 더 절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외환 시장 개입, 증시 개입, 강시(僵尸)화한 기업 구제등을 위해 중국 정부는 한때 4조 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액을 펑펑 쓰고 있다. 1년여 사이에 벌써 6,000억 달러를 쓰고, 지금 3조3,000억 달러 남짓 남았다. 벌써부터 중국 외환보유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3조 달러대로 떨어지만 위험하고, 3개월치 수입분을 남겨두면 2조2,000억 달러가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1조 달러 정도 여유분이 있는 셈인데, 이 돈으로 위안화도 방어하고, 증시도 부양하고, 기업구조조정도 해야 한다. 지금의 속도면 1조 달러는 1년이면 허공으로 날라간다.

 

금융시장의 거품 붕괴만큼이나 산업생산의 과잉을 해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중국이 경제 굴기(倔起)를 외치며 사람도 살지 않는 곳에 대형 아파트를 짓고, 지하철을 깔고, 대규모 터미널을 구축하며, 고속철도를 놓았지만,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낭비요, 과잉이다. 중국의 철강, 석탄, 시멘트 산업은 과잉 설비로 넘쳐나고 있다. 철강산업의 경우 연간 조강능력이 8억톤인데, 내수로 쓰고 남는 물량이 3억~4억톤이 된다고 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 22일 국무원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수년간 철강 생산량을 9,000만t 줄인 데 이어 추가로 1억∼1억5,000만t을 감산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 계획이 달성된다면 중국 조강능력의 30%를 감산하는 것이다. 아울러 석탄 산업의 과잉 생산 대책으로 신규 탄광의 허가를 중단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때 세계의 공장임을 자처하던 중국이 생산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세계적 수요가 줄고 있다. 기름값이 급락하고, 세계 물동량이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조지 소로스와 함께 일했던 위그램 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로드니 존스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는 이제 중국의 수요가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며, “그것은 쇼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사상 최대인 1조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 12월 한달간 자본유출액은 1천587억달러로, 작년 9월의 1천943억달러 유출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우선 중국인 개인들이 해외에 투자하면서 위안화를 기피하고 있다. 기업들은 외화표시 부채, 특히 달러 빚을 갚아버린다. 위안화가 절하되면 돈 값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1990년대 중반에 어느날 갑자기 위안화를 50% 절하한 적이 있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한때 상하이 증시의 해외자금 파이프로 통했던 상하이-홍콩 연계투자는 이제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후강퉁’으로 알려진 이 시스템은 중국 블루칩 기업으로 구성된 홍콩 항셍H지수를 통해 외국자본을 끌어들인다는 전략으로 추진됐다.

전문가들은 이 지수에 연동된 국내 ELS의 녹인(원금 손실 가능 구간·Knock-in) 물량이 가장 많이 포진한 7,000선 아래로 떨어질 경우 증권사들이 대규모 H지수 선물 매도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지수는 지난주 녹인 시작지점인 8,000 포인트가 무너졌고, 26일 7,895.16까지 내려갔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H지수가 7,000선을 밑돈다면 대규모 H시장 선물 매도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증권사들의 선물 매도에 따른 베이시스(현선물 가격차) 악화로 프로그램 매도가 출회해 홍콩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동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H지수 7,000선 이하의 구간에서는 매일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의 선물 매물이 출회될 수 있다"며 "H지수 선물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9조원)을 가정할 때 이 같은 매물은 분명 단기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7,000선을 하회할 경우 국내 증권사들이 집중적으로 H지수 선물을 처분할 수 있고, 이는 꼬리(선물시장)가 몸통(현물시장)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장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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