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바이든의 국민통합선언이 '한국 팬덤정치'에 던지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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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바이든의 국민통합선언이 '한국 팬덤정치'에 던지는 교훈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1.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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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사당 난입사태 '반면교사'...'팬덤정치'의 폭력성 경계해야
트럼피즘, 'PC정치', 정체성 정치' 난무...한국엔 대깨문, 대깨명, 태극기부대
'선악의 이분법' 대신 민주공화 규범인 '자유와 경쟁, 협력과 공공선' 추구해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지난 20일 조 바이든이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이 전진의 길이며, 나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향후 4년간 단결·화합의 리더십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통합이 없으면 나라도, 평화도 없다"면서 "오늘 내 모든 영혼은 통합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바이든 "통합" 호소...그 배경은

이에 따라 '바이든 시대'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남긴 분열을 극복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미국 국내외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국민통합정치가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차제에 바이든의 국민통합선언이 동맹관계에 있으면서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보여주는 한국정치에 주는 교훈도 찾을 필요가 있다.

우선 바이든이 국민통합정치를 선언한 배경이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핵심적으로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불복을 지지하는 극렬시위대가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태에 대한 반면교사에서 찾는 게 적절하다. 극렬지지자들의 폭력적 행동을 만드는 ‘팬덤정치’에 대해 근본적으로 살피고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 의사당 난입사건은 미국 대선에서 포퓰리스트인 트럼프 대신에 온건한 의회민주주의자인 바이든을 선택해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미국 유권자들의 민심을 거역하고 찬물을 끼얹는 ‘반동적 행위’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이든의 온건주의 노선도 타격을 받아서 온건파 보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나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를 추구하는 강경파들이 득세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0월 24일자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선거 2주전부터 조지 W 부시 때 법무차관보를 지낸 하버드대 골드스미스(Jack Goldsmith)와 버락 오바마 때 백악관 자문역을 지낸 바우어(Robert F Bauer) 등의 학자와 의원들이 초당파적으로 미국 국론과 나라를 분열시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즘 노선을 막기 위한 온건한 제도개선에 나섰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난입사태가 터지면서 초당적 통합의 흐름에 민주당 강경파가 제동을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미 의사당 난입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을 쓴 스티븐 레비츠키 등 많은 전문가들은 포퓰리즘, 고립주의, 미국우선주의, 배인주의 등을 앞세우는 트럼프의 노선인 ‘트럼피즘’과 트럼피즘을 선전선동하는 유튜브 매체인 ‘큐아넌’ 그리고 트럼피즘을 잉태시켰던 클린턴 힐러리의 ‘PC주의’를 꼽고 있다.

트럼피즘과 대척점에 있는 'PC주의'

큐어넌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한 해인 2017년 말부터 극우 성향의 온라인 게시판 ‘포챈(4chan)’에서 ‘Q’라는 닉네임이 터뜨리기 시작한 음모론 혹은 이를 추종하는 집단이다. 큐어넌은 자신이 정부 고위 공직자라고 주장하는 Q와 익명(anonymous)을 합친 단어다. 르네 디레스타 스탠퍼드인터넷연구소 연구원은 1월 6일 뉴욕타임스에 "폐쇄적인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이번 난입 사태를 벌였다"며 "이 사태는 온라인상의 에코 체임버 효과가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피즘이 득세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요인이 있을까?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 여러 전문가들은 PC주의를 앞세우는 ‘정체성의 정치’를 꼽고 있다. PC주의는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신념, 또는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으로 출신, 인종, 성,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종교, 직업, 나이 등을 기반으로 한 언어적·비언어적 모욕과 차별을 지양하는 정의를 정체성의 정치에서 찾고자 한다.

사실 PC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장 크게 표출한 정치인 중 한명은 당연 도널드 트럼프였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도널드 트럼프의 반(反) PC 운동이 주요하게 먹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PC 공격을 정치 자산으로 활용한 지는 오래다.

트럼프는 2015년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나라를 죽이고 있다”, “무슬림 테러 용의자들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건 오바마의 PC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공격하면서 지지율을 높였다. 트럼프는 ‘증오 범죄’에 속하는 이런 반(反)PC 선동이 미 수정헌법 1조에 명기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정당화했다.

‘정체성 정치’는 성별, 종교, 인종 등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나뉜 집단이 각 집단의 권리를 요구하는데 주력하는 정치로, 미국의 여성·성소수자·유색인 운동의 특성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개념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대선 당시 일관되게 ‘정체성 정치’라는 카드를 선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마지막 유리천장을 깰 사람’이라 칭했으며, 연설이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상호교차성’과 같은 최신 페미니즘 개념을 인용했다. ‘성공한 중산층 백인 여성들만을 위한 페미니스트’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히려고 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지지로 수렴되지 않는 정치는 아무리 진보적인 것처럼 보여도 결과적으로는 성차별적인 정치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며 버니 샌더스를 공격했다. 클린턴의 측근이었던 피터 다우(Peter Daou)는 "샌더스의 (진보적) 관점에도 불구하고...샌더스는 25년간 의회에 있었던 백인 남성으로서 기득권층에 속한다"고 비판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도 "젊은 여성들이 샌더스를 지지하는 건 유세현장에 젊은 남성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들을 모욕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차별주의자 후보인 트럼프와 맞붙었지만, 여성 지지율은 54%밖에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대선결과를 두고 미국 내에서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정체성 정치는 이미 진보적 운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단결과 화합의 리더십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단결과 화합의 리더십을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연합뉴스

오바마 '도덕적 위선주의'...그 반성들

시종일관 '정체성 정치'를 내세워 온 자유주의 세력이 소수자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등 '기득권 PC주의자들의 도덕적 위선주의'를 비판하는 쓴소리도 등장했다. 실제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했던 오바마는 유색인들의 삶의 조건을 전혀 향상시키지 못했다. 오바마는 긴축 재정을 실시해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그 돈으로 구제금융 자금을 마련해 금융 자본가들을 공황에서 구출해주었다. 이는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처해있는 다수 흑인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민주당 성향의 학자 마크 릴라는 뉴욕 타임즈(2016.11. 18)에 "정체성 자유주의의 종말(The End of Identity Liberalism)"이라는 글을 기고하며 정체정의 정치를 비판했다. 그는 "정체성 담론이 미국 사회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다양성의 문제가 정치 담론을 모두 포괄한다고 여기게 만든 한편, 계급·전쟁·공공선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정체성의 정치'는 도덕적이고 이상주의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흑인·여성·성소수자 등 소수자 집단 내에도 계급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극히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사회현상으로 치부하거나 백인 노동자계급을 투쟁에서 배제할 뿐만 아니라, 여성·흑인·성소수자가 겪는 억압으로부터 구조적 맥락을 지운다는 '집단주의 정체성'을 강조한다는 한계로 비판을 받았다. 이런 집단주의 정체성에서는 개체의 고유성과 차이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나 자유규범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학자들은 사회문화적 심리이론의 관점에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정체성의 위기'라는 렌즈를 통해 보고 있다. 라틴계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백인의 다수적 위치가 하락하는 흐름이 ‘정체정의 정치’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인종적 및 종교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정체성이 정치적 당파성과 결합한다. 민주당 지지층은 인종적으로 소수인종과 이민자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갖는다.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는 이들에 대해 적대적이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미국 의사당 난입사건은 분별없는 맹신자들이 대의민주주의 이상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 숙의없는 시민참여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 240년 전통의 선진 민주공화국도 포퓰리즘 선동가와 팬덤정치를 견제하지 못할 경우 치명적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2019년 '국회의사당' 난입...여전한 '집단주의 정체성'

우리 정치권은 유사하다. ‘조국사태’를 계기로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기댄 국민분열의 정치로 홍역을 치렀고, 그 여진이 2021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처지다.

2019년에는 ‘딸 대학입학 특혜 의혹’을 받았던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을 놓고 서초동파와 광화문파가 극단적으로 분열했다. 지난해는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도 집단주의와 진영논리로 무장한 지지자집단간에 충돌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대통령 지지), 대깨명(대가리가 깨져도 이재명 지사 지지), 태극기 부대가 설치는 우리의 '팬덤정치'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올해 1월 6일 한국의 민주당 당원게시판에 벌어진 이낙연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의 설전과 난투극은 미국 의사당 난입사건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닮았다. '당 대표 퇴진 요구 권리당원 찬반 투표'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에 맞서 '이재명 출당을 위한 권리당원 투표'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참에 미국 의사당 난입사건 보다 앞선 한국 국회 습격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9년 12월16일 서울 여의도에서 벌어진 '태극기부대'의 국회 난입 사건을 돌아보자. 이날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주최로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가 열리던 국회 경내로 당원과 지지층 수천명이 몰려왔다.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는 "이렇게 국회에 들어오신 것은 이미 승리한 것"이라며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된다"고 외쳤다.

이런 미국의 PC주의, 정체성의 정치, 트럼피즘은 한국의 대깨문, 대깨명, 태극기부대의 정체성과 닮았다. 그 유사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에는 '집단주의'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데 유사점이 있다. 이런 집단주의 정체성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 정치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본 미국인의 정체성과 다르다.

토크빌은 선거민주주의에서 우려되는 '다수결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을 막을 수 있는 방파제로서 미국인들이 지닌 '자유로운 개인주의 습속'의 우수성을 찬양했다. 그는 자유로운 습속의 개인들이 공론장(타운미팅, 시민결사체, 배심원제 등)을 통해 공동선을 조화시킨다고 보았다. 하지만 토크빌이 말한 '자유로운 개인주의 습속'은 오늘날 집단주의를 키우는 유튜브, SNS, 팟캐스트, 진영논리에 물든 언론과 정당의 지지층 결집전략 등으로 방해받고 있다.

이런 집단주의는 현대 민주공화주의 규범인 자유와 경쟁 및 협력과 공공선 등과 충돌하는 '선악의 이분법'에 따른 '적과 동지의 정치'로 인해 다수파 독재나 전체주의 및 정교일체의 조직논리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이런 집단주의는 '건전한 시민' 대신에 맹신자, 광신도, 폭민을 양산하는 데 문제점이 크다. 다수결 민주주의와 팬덤정치의 폐해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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