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재 칼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키코'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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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칼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키코' 분쟁
  • 박민재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 승인 2021.01.19 15: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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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회장, 금감원 권고안에 "배상할 이유없다" 반발
키코 소송, 2013년9월 대법원 판결로 종료...소멸시효마저 지나
"금감원 분조위 권고안, 위법적이며 은행들에 업무상 배임소지"
은행들, 손해배상책임 아닌 다른 방식의 사회적 책임으로 풀 수도 있어
박민재 대륙아주 변호사
박민재 대륙아주 변호사

[박민재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 중소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사태는 2013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되돌이표에 의해 2021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올해 이사회를 앞두고 있는 은행들에게 '키코 배상'이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고, 급기야 산업은행 회장이 대놓고 쓴소리를 했다.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월12일 기자간담회에서 키코와 관련해 "배상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고 배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배상 (불가)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배상을 권고한 금융감독원에 대해 "논리적인 의미보다는 정치적인 또는 포퓰리즘적인 판단이 아니었나 우려한다"며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미래를 걱정해야 할 텐데, 과거 일을 갖고 자꾸 떠들고 앉아 있으면 언제 새로운 일을 하느냐"고 강하게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키코란 무엇인가?

기업들은 수출입 등 대외거래에서 그 대가를 외화로 수령 또는 지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른 환위험을 회피(hedge)할 필요가 있다. 현물환 거래에 익숙하던 기업들이 선물환거래 (forward: 장래 미리 약속한 시점에 일정액의 외국환을 일정한 환율로 매매할 것을 미리 약속하는 계약), 그리고 선물환거래에 일정한 조건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행사환율을 높인 통화옵션상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가 된 키코계약은 Knock-Out 조건이 부가된 풋옵션과 Knock-In 조건 및 leverage 조건이 부가된 콜옵션을 수출기업과 금융기관이 상호 교환하는 계약이다.

손익 구조는 ①환율이 하락해 Knock-Out 조건이 성취되는 경우 기업의 풋옵션이 소멸되어 그 구간에 대해 환위험 회피 기능이 상실되는 위험구간(제1구간) ②만기환율이 Knock-Out 환율과 행사환율 사이에 형성되어 기업이 풋옵션을 행사하여 이익을 얻는 구간(제2구간) ③관찰기간 중 환율이 Knock-In 환율 이상 상승한 바 없고, 만기환율이 행사환율과 Knock-In 환율 사이에 형성되어 은행의 콜옵션 행사가 정지됨으로써 기업이 현물시장에서 환율 상승의 이익을 얻는 구간(제3구간) ④관찰기간 중 환율이 Knock-In 환율 이상 상승한 바 있고, 만기환율이 행사환율보다 높아 Knock-In 조건이 성취됨으로써 기업이  leverage에 해당하는 계약금액의 매도의무를 부담하는 위험구간(제4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만기환율이 행사환율보다 높은 제4구간의 경우에는 레버리지에 해당하는 계약금액의 매도의무를 부담하는 위험이 발생한다.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 금융분쟁조정위원회, 키코 불완전판매 배상결정”(2019.12.13.)에서.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 금융분쟁조정위원회, 키코 불완전판매 배상결정”(2019.12.13.)에서.

불행히도 원/달러 환율의 급상승으로 키코 계약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2007년 6월이후 2008년 3월 초순경까지 900~94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2008년 3월 중순경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8년 3월 18일경 1021원을 기록한 뒤 2008년 5월 중순경에는 1050원에 육박했다. 이어  2008년 8월경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2008년 9월 초순경에는 1100원을, 같은 해 10월에는 1200원, 1300원, 1400원을 순차로 돌파한 것이다. 마침내 같은해 11월 24일경 1509원을 기록한 뒤 다음해 3월 이후 전반적인 하락 추세를 보였다. 

이에 키코 계약자인 기업들은 2008년 3월경 은행들에게 각 통화옵션계약에 따라 행사환율과 만기일 시장환율의 차이에 의해 산정된 원화차액(현금정산)을 지급하거나 달러를 매도(실물정산)했다. 환헤지를 목적으로 키코계약을 체결했던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등 험로로 내몰리게 됐다. 

은행과 키코 계약자들의 길고도 험난한 분쟁

그 이후 판매사인 은행들과 계약자인 기업들간에 지루하고도 피말리는 소송이 진행됐다. 2008년에 시작된 소송은 2013년에야 대법원 확정판결로 끝이 났다. 은행별, 계약자별로 은행의 판매 행위 양태가 달랐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개별 사건마다 하급심 판결도 달라 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런 혼란을 2013년9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리했다. 일부 사건에서는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했으나, 불공정 계약, 사기 및 착오,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한 약관이라는 주장 등은 모든 키코 사건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 요지는 ①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하여 쌍방의 기대이익을 대등하게 한 것이므로 통화옵션계약이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며 ②통화옵션계약의 구조는 다른 장외 파생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은행 등이 고객의 필요에 따라 구조나 조건을 적절히 변경해 사용하기 편하도록 표준화해 미리 마련해 놓은 것일 뿐이어서 약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의 규율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③달리 계약 또는 법령 등에 의해 가격구성요소의 고지의무가 인정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은 고객에게 제로 코스트의 장외파생상품 구조 내에 포함된 옵션(option)의 이론가, 수수료 및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마이너스 시장가치에 대하여 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이를 고지하지 아니했다고 해 고객에 대한 기망행위가 된다거나 고객에게 거래 비용이나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착오를 일으킨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밖에 은행이 기업의 경영상황에 비해 과대한 위험을 초래할 계약을 적극 권유한 행위는 위법이고, 투기적 성격을 지닌 키코 계약을 헤지거래라고만 설명한 것은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후 일부 불완전판매가 인정된 은행들이 확정판결에 따라 소송을 제기한 키코 계약자들에게 손해를 배상, 키코 사건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지난 2008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키코 피해 기업인들이 종이 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08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키코 피해 기업인들이 종이 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갑작스런 키코 분쟁의 재등장...은행들의 반발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금감원이 다시 키코 문제를 부활시켰다. 금감원은 지난 2017년 12월 21일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후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키코 피해기업으로부터 분쟁조정 신청을 접수해 나갈 계획이며, 금융소비자 관점에서 사실 관계 확인 등을 거쳐 분쟁조정 중재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9년 12월 13일에는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된다면서 4개 기업의 피해금액을 1490억원으로 추산하고 “판매한 6개 은행들이 기업들의 손실액 중 15~41%를 배상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은행들은 금감원의 권고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미 유사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고 금감원이 인정한 불완전판매가 아니며, 또한 불완전판매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권고안을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금감원은 연달아 은행들에게 수락할 것을 종용했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금융기관 평가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 키코상품을 판매한 10개은행이 참여하는 은행협의체를 만들고,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강구하라고 했다. 이에 은행들이 입장을 바꾸어 '백기투항'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우리은행이 제일 먼저 권고안을 받아들였고 지난해말인 12월 신한은행과 씨티은행이 뒤따랐다. 

산업은행을 제외한 대구은행과 하나은행도 비슷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한다. 산업은행은 앞에서 밝힌대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권고안의 문제점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위법)에 의하면 금융기관 등과 금융 수요자, 그리고 이해관계인이 금융감독원장에게 분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금융위법 제38조). 금감원의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설치 근거다.

그런데 분쟁해결기관인 금감원이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난 문제에 관해 2017년 12월 21일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키코 피해기업으로부터 분쟁조정 신청을 접수해 나갈 계획이며, 금융소비자 관점에서 사실 관계 확인 등을 거쳐 분쟁조정 중재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키코 피해기업이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은 금감원  외에도 법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한국소비자원  등 다양한 채널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피해기업이 분쟁조정 신청을 한다면 당연히 접수를 하고,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그럼에도 선제적으로 금감원이 피해기업에게 분쟁조정신청을 접수하겠다면서 중재안 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것은 사전에 예단(豫斷)을 갖고 피해기업에게 유리하게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자로서 분쟁해결기관이 지켜야 할 중립성과 객관성, 공정성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피해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분쟁조정을 신청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신청한 시점인 2018년 5월경에는 대부분 소멸시효가 경과했다. 

“신청한 내용이 관련 법령 또는 객관적인 증빙(證憑) 등으로 비추어 볼 때 합의권고절차 및 조정절차를 진행할 실익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합의권고를 하지 않거나 조정위원회에 회부하지 않는게 적절하다. 

그리고 금융위법 시행령 제21조 제2항은 “당사자가 조정안을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지 아니한 때에는 조정안을 수락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기간 연장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러므로 은행들이 권고안을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수락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은행들이 연장, 재연장 신청을 하고 금융감독원이 기간을 연장한 것은 위법하며, 권고안은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은행의 딜레마, ‘경영상 판단’과 ‘업무상 배임’ 사이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766조 제1항, 제2항). 그런데 소멸시효는 소의 제기,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신청 등을 통해 중단시킬 수도 있다(민법 제170조, 금융위법 제53조의 2 제1항).

키코 손해가 발생한 2008년 3월경을 전후해 10년이 경과한 2018년 3월경 전후에는 소멸시효가 지났다. 키코 피해기업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은행들은 소멸시효가 지났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완전판매 여부는 구체적인 키코 상품 가입계약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유사한 키코 관련 대법원의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에게 유력한 증거가 된다. 

은행들이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는데도 은행이 금융감독원의 권고안을 수락한다면 문제는 없을까? 일반 시중 은행의 주주는 동학개미를 비롯한 국민들이 다수다. 국책은행의 경우는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으므로 궁극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법적 의무가 없는 권고안을 수락하면 피해기업의 일부 손해는 보전이 될 수 있지만, 은행 나아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게 된다. 과연 경영상 판단에 해당할까? 아니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까?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한다(형법 제356조). 대부분의 은행은 '경영상 판단'과 '업무상 배임'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금융감독원의 뜻에 따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의 키코 배상 권고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사진=산업은행/연합뉴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의 키코 배상 권고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사진=산업은행/연합뉴스

'키코 피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이행의 방법은

키코 사태로 인해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에서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것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소멸시효가 지났고, 유사 사례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에 은행들이 권고안을 수락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금감원은 체면을 구기게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조정절차를 진행, 권고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우스개거리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라, ‘은행들을 항복시킬 자신’이 있었나. 다 계획이 있었나 보다! 은행은 금감원에 분담금까지 바치지만, 돈값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기는커녕 감독기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녕 은행들이 자신들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 아니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자 한다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키코 피해기업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키코 피해기업의 어려움을 고려해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키코 판매과정에서 은행이 얻은 수익을 전부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객이었던 피해기업의 어려움을 듣고 도움이 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며 상생의 길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시효가 지난 손해배상책임 차원이 아니라, 키코 피해기업을 돕기 위한 기금 조성이나 지원 금융 제공 등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았더라면, 은행은 이미지도 훨씬 좋아지고 경영진의 체면도 세우고 법적인 위험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 박민재 변호사는 외환은행 행원과 중앙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 대한변호사협회 교육이사 등을 역임하고, ㈜강원랜드의 준법지원인 겸 법무실장으로 재직한 뒤, 현재는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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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용 2021-01-20 05:28:34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법원의 판결도 난 사안인데 금감원이 집행기관으로서 임의로 은행에 보상하라고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