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나경원·박영선에게 '변명의 장' 열어준 예능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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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나경원·박영선에게 '변명의 장' 열어준 예능 프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14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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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엄마로서 헌신적 모습, 과거 의혹을 덮어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데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대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연예 미디어에 오랜만에 이름이 오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기사에 거론된다고 해서 별다른 소식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대개 과거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대중과 멀어졌다는 해명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2020년 여름 시즌 1을 마친 SBS Plus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나오곤 하더니 지금은 TV조선의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주로 나온다.

이 두 프로그램은 방송사도 다르고 방송 콘셉트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텔레비전에 비치지 않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불러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주로 과거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많다.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도박이나 성 추문 혹은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까지 있었다.

문제는 이들 프로그램이 출연자의 일방적인 고백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사업 실패는 주로 동업자의 사기 때문이고, 과거 논란에 대해서는 대중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식이다. 대개 눈물을 보이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방송은 사실 확인보다는 출연진 관점에서 그의 주장을 따라가는 것에 집중한다. 채널을 빨리 돌리는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되도록 자극적인 방향으로 편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연예 미디어는 방송 내용을 요약해서 속보 경쟁을 벌이곤 한다. 보통 출연진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 이런 방송을 시청하고 미디어를 접하는 대중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쩌면 대중이 그들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위험한 힘을 가졌다. 한때 바보상자라 불리기도 했지만.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한 나경원(왼쪽)과 박영선. 사진=TV조선 캡처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한 나경원(왼쪽)과 박영선. 사진=TV조선 캡처

보궐선거 유력 후보들의 예능 방송 나들이

바보상자이자 위험한 힘을 가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유명 정치인들이 나왔다. 물론 정치인도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인이기에 언론 매체에 얼굴과 이름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의사당의 회의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 그 활약을 보여줄 수도 있고 시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그것도 여당과 야당에서 서울시장 출마가 거론되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지난 1월 5일(화)과 이번 1월 12일(화)에 걸쳐 TV조선 ‘아내의 맛’에 나경원 전 의원과 박영선 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의 원래 제목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다. 제목에서도 보듯이 여성을, 아내를 주요 소재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그렇다고 ‘맛’이라는 단어에 미혹되면 안 된다. 요리나 먹방을 다루는 방송이 아니니까. 다만 한 여성이 아내로 사는 삶을 관찰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만약 자녀가 있다면 어머니로 사는 삶도 나온다. 때로는 시월드도 나오고.

지금까지 ‘아내의 맛’에는 연예인이나 그 가족이 주로 나왔었다. 그런데 두 주에 걸쳐 두 여성 정치인이 나왔다. 방송에서 둘의 얼굴은 정치 현장에서 보여준 그 얼굴 그대로였으나 행동이나 자태는 전혀 달랐다.

우선 자기의 집이나 일터를 훤히 열고 카메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족들을 소개하고 일상생활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고 때로는 자기의 개인사를 들려주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평소의 모습인지 연출된 모습인지, 개인사 또한 사실인지 왜곡한 건지는 본인과 가족만 알 터이고 그 판단은 대중이 할 터이다.

문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연이어 방송에 나온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정책이나 정치관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도 아니고 어쩌면 대중에게 왜곡 혹은 연출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말이다. 여야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 출연시켰으니 문제가 없는 걸까.

집에서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일부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가정에서 좋은 가족 구성원이 되길 바랄 것이다. 좋은 아빠나 엄마, 혹은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착한 아들이나 딸 같은. 그래서 많은 부모가 자기 능력 닿는 만큼 자녀를 도와주고 많은 자녀가 받은 만큼 부모를 공양한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밖에서 자기네 정치 진영(혹은 정치 철학)을 위해 투사가 되어 매섭게 싸워도 집에 와서는 따뜻한 부모처럼 행동하는 게 어쩌면 그들의 당연한 모습이지 않을까. 심지어 부모의 마음으로 자기의 지위를 자녀를 위해 쓴다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소문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두 정치인이 ‘아내의 맛’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대중은 어떻게 바라볼까. 가정에서 저렇게 따뜻하고 헌신적인 엄마이고 능력 있는 아내이니 혹시 서울시장이 되어도 제 역할을 잘 하지 않을까 하고 미혹되는 건 아닐까.

모든 정치인은 큰 꿈을 꾼다고 한다. 자기가 가진 그릇보다 훨씬 큰 꿈을. 그렇지만 그 꿈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어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관찰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지난 두 주 두 정치인의 예능 나들이를 보면서 나는 어떤 망상에 빠졌다. 그녀들은 혹시 정치인이 아닌 엄마 혹은 아내로서 벌인 일들을 변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였지만 정치인이 가진 힘을 발휘한 그 일들을, 아내였지만 정치인이 가진 힘을 발휘한 그 일들을. 그래서 그녀들이 연출한 소탈한 모습 때문에 과거 의혹이 덮어지면 어쩌지 하는 그런 망상에.

정치인에게 변명의 장을 열어준 예능 프로그램

방송이 끝난 후 미디어들은 연일 두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누구에게 득이 되었을까를 따지고 있다. 누구의 시청률이 누구보다 얼마나 높았다느니 누구의 방송 분량이 누구보다 많았다느니 하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을 예능에 불러들인 방송국은 대체 어떤 의도를 가진 거였을까 하는. 단순히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인물이라 섭외한 건 아니었을 텐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방송이 변명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과거 의혹이 풀리는 건 아니지만 대중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고 판단을 할 빌미는 주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누구의 변명거리가 많았는지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 득이 되었는지 여실히 나온다. 이 지점에 방송국의 큰 그림이 숨어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녀와 방송국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지는 아주 큰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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