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혁신기업]⑥ 혁신의 동력, 특허권·지적재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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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혁신기업]⑥ 혁신의 동력, 특허권·지적재산권
  • 이영원 미래에셋대우 이사
  • 승인 2021.01.12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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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원 미래에셋대우 이사] 지난 컬럼에서 다뤘던 운하, 철도 등 인프라 투자,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핵심 토대 역할을 한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운하건설과 철도 부설은 미국의 영토확대가 실질적인 생산기반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들었고, 확대된 시장의 영역은 생산과 소비, 양 측면에서 경제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인프라 투자가 자본주의 발전의 물질적인 토대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면, 특허권, 혹은 지적재산권은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내고 성장의 동력을 제공하는 제도적인 토대를 형성한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그의 저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Capitalism in America)”에서 미국의 건국과정에서 확립된 사유재산권과 지적재산권의 역할에 대해 주목한다.

1789년 제정, 공포된 미국 헌법에는 특허권(제1조 제8항)이 명시되어 있고 특허법은 이듬해인 1790년 제정된다. 이어 1836년에는 특허청이 설립되면서 특허법인 실질적인 효력을 배가하게 된다. 

산업화 이전, 인간의 노동에 의존해야 했던 생산에서 창의력이 더해진 기계의 발명으로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법적으로 보장받고 창업으로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美 자본주의 초기 성장 이끈 수확기·재봉틀 특허

초기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주목되는 주요 특허로는 1834년 맥코믹(Cyrus McComick)의 수확기와 1851년 싱어(Isaac Singer)의 재봉틀을 들 수 있다.  

맥코믹의 수확기는 말이 끄는 형태의 수확기로 비슷한 형태의 시도가 여러 차례 존재했지만 최초로 상업적인 생산에 성공하고 특허로 자사의 제품을 보호한 경우다.

상업적인 생산에 성공한 이후 맥코믹은 제품 판매의 확대를 위해 무료 체험, 환불 보증, 농촌 신문에 광고 게재 등, 여러 판매 수단을 동원하는 한편, 특허소송을 통해 상업적인 권리를 확보했다.

수확기의 발명과 생산, 판매로 미국의 농업 생산력은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독립전쟁 이후,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매입 등으로 영토가 획기적으로 넓어진 상황에서 수확기의 도입으로 향상된 농업생산력 증가는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맥코믹의 맥코믹 하베스트(McComic Harvesting Machine Company)는 1902년, J.P.모건의 지휘하에 윌리엄 디어링(William Deering)의 디어링 하베스터(Deering Haverster) 등과 합병, 인터내셔널 하베스터(International Harvester Company)로 승계된다.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는 미국 최대의 농기계 생산업체로 성장했고 1925년에 다우존스 지수에 편입, 1986년 나비스타 인터내셔널(Navistar International)로 승계되어 1991년까지 지수 편입종목으로 미국의 산업을 대표하게 된다.

아이작 싱어의 재봉틀 역시 최초의 발명은 아니다. 이미 바느질을 기계화 한 재봉틀은 존재했다. 그러나 바늘의 형태를 개선하고 작동방식을 개선해 특허를 취득한 싱어의 발명품은 각 가정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싱어는 재봉틀 판매에 있어 할부제도를 도입하고 자사 제품이 아니어도 구형 제품에 대해 보상판매를 실시하며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만들어갔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의 연도별 특허권 추이. 자료=eh.net

창업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제품을 생산하고 권리를 보장받으며 시장 확대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에는 특허권, 지적재산권의 영향이 크게 발휘되었다.

수확기와 재봉틀의 대표적인 사례 뿐 아니라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는 압도적인 특허권 출원과 취득 과정과 함께 성장한다.

통계상 확인되는 미국의 특허는 특허법이 제정된 1790년 이래 꾸준히 증가, 1810년경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3국의 특허 숫자를 넘어서게 된다.

1836년 특허청 설립 이후에는 1900년대 중반까지 유럽 3국의 전체 특허를 합한 것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 구대륙에 맞선 신대륙의 경쟁력을 실증하게 된다.

링컨 대통령의 특허 에피소드

특허와 관련한 초기 자본주의 시대 미국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링컨 대통령의 사례다.

링컨 대통령은 “선박 부유 방법(Manner of Buoying Vessels, 얕은 모래톱에서 선박을 들어올리는 방법)”으로 1849년 5월 제6469번 특허를 취득한다. 비록 실제로 제조된 적은 없는 아이디어로 남아있지만, 1846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정치인으로서 특허를 출원하고 획득한 사실은 그의 호기심과 열정을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상무부 건물 외벽에는 “특허제도는 천재(발명가)의 불에 수익의 기름을 더하는 것이다. (The Patent System added the fuel of interest to the fire of genius)”는 링컨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미국 워싱턴 DC소재 상무부 건물 외벽에는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링컨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미국특허청 트위터

발명과 천재성으로 빛을 발했던 에디슨과 테슬라의 경우도 경이적인 수의 특허를 보유했다.

발명왕 에디슨의 특허 수는 총 1093개에 달한다. 이 중 389개는 전구와 전기 관련 특허였고, 195개는 축음기 관련, 150개는 전신(Telegraph)관련 등이었다.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도 발전기용 정류자를 시작으로 미국에서만 111개, 영국에서 29개, 그리고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도 다수의 특허를 보유했다. 이들의 지적인 호기심이 창업으로 이어지며 전기에 기반한 2차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최근 국제 특허 동향에서는 중국의 압도적인 우위가 이어지고 있다. 특허 출원과 허가건수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특허 출원 순위를 보면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서 각국의 경쟁력의 원천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허권, 혹은 지적재산권으로 그 사회 혹은 국가의 혁신역량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원 이사는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에서 리서치 업무를 시작해 푸르덴셜투자증권, 현대차투자증권에서 투자전략을 담당했다. 미래에셋대우에 합류한 이후 해외주식 분석업무를 시작, 현재 글로벌 주식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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