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산책] 인간 존재의 소멸에서 영감얻은 작가 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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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산책] 인간 존재의 소멸에서 영감얻은 작가 최우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0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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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 동굴벽화 연상케 하는 화법 구사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 모델로 소화
서초동 갤러리 '쿱'에서 13일까지 전시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작가 최우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물감으로 고대 동굴 벽화에 던져진듯한 얼룩, 재질, 색조를 그려내는듯한 화법을 구사한다.

중·고등 학교 시절 교과서, 다큐멘터리 TV프로그램에서 본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 등 구석기 시대 벽화의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교과서와 영상물에서 본 벽화 이미지가 계속 뇌리에 남았다.

최우는 직업으로 작가를 의식하면서부터 작품의 방향 설정과 함께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그릴것인가를 계속 고민하였다. 청소년 시기, 강렬하게 와닿은 디지털 화면에 드러난 평면화된 이미지 그대로를 구현하고자 했다.    

화학용 물감을 사용하면서도 햇빛에 드러난 낡은 플라스틱 같은 인공 색을 싫어한다. 자연 색을 내기위해 바탕과 형태를 지우기도 한다. 판화 작업에 쓰이는 룰렛을 사용하여 오일(유화)의 기름기를 제거한다.  

최우는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요소로 외로움을 꼽는다. 죽음이 삶의 일부이지만 그 죽음의 대상은 어차피 타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전히 살아있는 자신은 소멸하는 타인들로 인해 점점 더 외로워진다. 타인의 얼굴은 뭉그러져있다. 존재감 없이 사라져간 인연들에 대한 작가의 기억 방식이다.  

moon light sonata, 80.3*65.1, oil on canvas. 2020.
moon light sonata, 80.3*65.1, oil on canvas. 2020.

그림을 그렸다 지워 결과적으로 화폭에 존재하다 사라진 흔적을 그린 작품은,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간다는걸 표현했다. 최근 가족들의 죽음과 장례, 법적 절차를 진행하면서 체화하였고, 그러한 느낌이 작가의 작업 행위로 나타냈다. 

작가는 이러한 체험과 작업과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어눌했고 답답해했다. 언어는 불완전하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작가에게 언어적 완결성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이미지를 해석할 줄 알며 언어를 다루는 이의 역할이 필요하다. 난 불교 철학의 핵심적 가치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인과 연이 화합하여 만들어 낸 모든 존재와 행위(諸行)'는 '항상 하는 것은 없다(無常)' 나라는 존재도, 내가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행위 또한 무상하다. 모든 존재는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잠시 머물렀다 변화하여 소멸된다. 

untitled, 72.7*60.6, oil on canvas. 2020.
untitled, 72.7*60.6, oil on canvas. 2020.

'색(色)과 공(空)', 인간은 죽어 육신을 이룬 4가지 요소,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져 공(空)의 세계로 들어간다. 물리적인 모양을 갖춘 색(色)이 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즉 색이 곧 공이니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 

재료는 오일과 연필을 동등한 지위로 사용한다. 작가에게 연필은 밑 작업의 도구가 아니다. 연필로 스케치 한 레이어(layers) 위에 물감을 얹는 순서를 거부한다.

작품에는 동물도 종종 등장한다. 그 동물이 말이든 새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타 작품에서 대상 자체인 인간, 또는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과 동등하게 동물이 주인공인 작품은 전시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untitled. 100*100, mixed media on canvas, 2020.
untitled. 100*100, mixed media on canvas, 2020.

작가는 인간 존재의 소멸 과정에서 느낀 고독과 외로움을, 신 내림 받은 종교인이 방언을 쏟아내듯한 작품 스물 아홉 점을 뭉뚱그려 ‘It’s not here : 여기에 있지 아니하다’를 타이틀로 서울 서초동 갤러리 쿱(Gallery coop) 전시장에 내놓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갤러리 쿱을 운영하는 ‘한국화가협동조합’ 황의록 이사장은 최우 작가와의 첫 대면이 인상적이었고 말한다. 서울 강남 연립주택의 층간 계단에서였다. 계단은 옥탑 방 작은 공간에서 생활한 작가의 작업실이었다.

한국화가협동조합은 화가들의 조합이 아니다. 7년전 조합원 20명으로 결성되었으며, 60여명의 후원자 그룹으로 이루어진 아트 커뮤니티이다. 전시는 1월 13일 까지이다.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미술계 입문 12년차의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쌍용자동차 기획팀, 삼성자동차 기획팀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를 거쳤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 전시를 가졌고, 국내외 300여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하였다.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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