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남인순 사태로 본 ‘파수꾼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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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남인순 사태로 본 ‘파수꾼민주주의’의 위기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1.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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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내 시민운동출신 의원들, 초심으로 돌아가 '성찰의 기회' 가져야
'파수꾼 민주주의',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감시하는 동시에 문제 해결에 협력
민주당,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해야...시민단체 윤리강령의 도입과 실천 필요할 때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소 유출 의혹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이 확대되고 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남인순 리스크’가 민주당의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책임있는 입장표명이 늦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민주당 지도부가 출구전략마련에 실기(失機)하여 보궐선거의 패배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납득 어려운 남의원의 해명과 민주당 입장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연 국민의힘은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에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을 전달한 데 이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르도록 유도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남인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초선 의원 일동은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 28명이 속한 단체카톡방에서 다른 여성 의원들이 ‘피해자’로 쓸 것을 주장했음에도 남인순·진선미·이수진(비례)·고민정 의원이 주도해 ‘피해호소인’으로 쓸 것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성폭력 피소 유출 과정에 유력한 시민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두 대표들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들이 여성인권을 대변하기 보다는 밀고를 통해 권력자에게 줄을 섬으로써 스스로 NGO(비정부기구)가 아닌 권력지원단체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곱지 않은 시각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검찰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미투 사건’으로 고소할 예정이라는 관련 내용이, 도움을 청한 시민단체인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상임대표를 지낸 남인순 민주당 의원을 통해서 남인순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를 거쳐 박 전 시장에게까지 전달됐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 같은 발표가 있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검찰 수사결과에 언급된 여성단체 대표는 우리 상임대표”라며 “책임을 통감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히면서 “김영순을 상임대표직에서 직무를 배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영순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 대법원 양형위 자문위원, 서울시 성평등위원 등 그동안 민관협력차원에서 참여했던 정부 주요 위원회와 공공기관 위촉직에서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엿새만의 침묵을 깨고 “피소사실을 유출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를 부인하는 반론에 나섰다. 그는 지난 5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지난 12월 30일 서울북부지검 발표 이후 제가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저는 “피소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유출한 바 없다”고 밝혔다.

다만 남인순 의원은 서울시 젠더특보와 통화를 한 사실은 인정하며 “7월 8일 오전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로 박원순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라고 물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입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태가 불거진 지난 7월2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남 의원이 공개적으로 밝혔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남인순 의원의 이런 입장은 ‘물어보기는 했지만 유출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들린다. 이러한 남 의원의 입장은 ‘설득력있는 해명’보다는 ‘석연찮은 면피성 말장난’으로 문제를 악성으로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남 의원의 유출 부인에 대해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음주 후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닙니다’ 이런 뜻인가”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여성인권운동을 한 여성단체 대표 출신 의원님께 재차 묻는다. 질문과 유출은 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지적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짓밟는 것이고, 가해를 저지른 이에게 피할 구멍을 마련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남인순 민주당의원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사실 유출의혹에 대해 "피소사실을 유출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데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MBN '아침엔 매일경제' 유튜브 캡처
남인순 민주당의원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사실 유출의혹에 대해 "피소사실을 유출하지 않았다"고 해명한데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MBN '아침앤매일경제' 유튜브 캡처

남 의원의 이 같은 입장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확산되어 보궐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이슈로까지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반응도 부정적인 만큼, 민주당 지도부의 신속하고 책임있는 대처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성폭력사건으로 다시 치러지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악재로 패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방도가 없다.

민주당은 지난해 박 전 시장 사건 당시 이해찬 대표가 “소속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차단하고 귀감을 세울 특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해 10월 보궐 공천 여부를 전 당원 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하면서 “특히 피해 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남 의원 의혹에는 모두가 입을 닫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단호하게 고 박원순 시장 피소 정보를 유출하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왜곡하려 했던 단톡방 관련자 남인순, 고민정, 진선미, 이수진, 양향자, 김상희 의원 등의 문제를 신속하게 진상조사하고 책임있는 사과와 문책 그리고 재발방지를 제시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민주당내 시민운동출신 의원들은 기득권과 권력자의 눈이 아닌 ‘파수꾼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신의 본분을 자성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12월31일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밝힌 이번 사건에 대한 논평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논평을 통해 “지난 20여년 간 고착된 민주당과 여성단체 간의 이해관계 고리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는, 여성단체의 활동과 여성단체 출신의 정치인 배출이 민주당과 남성 권력의 알리바이가 될 뿐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여성단체의 뼈아픈 각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논평은 그동안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요 NGO단체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과 공직에 진출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기관에 진출하는 통로로 시민단체가 활용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NGO 본연의 역할과 책임이 무뎌졌음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이 논평은 NGO출신 인사의 정치권 진출은 소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비판과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잃게 되면 스스로 ‘권력기관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파수꾼'이 권력에 중독되다니...충격적인 사건

‘파수꾼 민주주의(monitory democracy)’라는 개념은 호주 학자 존 킨(John Keane)이 2009년에 출간된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The Life and Death of Democracy)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정부권력이 각종 기제를 활용하는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 그룹, 개인들에 의해 감시당하며 제약받는 ‘파수꾼민주주의’이다. 여기서 파수꾼은 정부와 정당 조직의 잘못된 결정이나 관행, 부조리를 직시하고 삶의 현장에서 발견하는 위험을 사회에 알리는 기능과 함께 시민이 부딪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는 자발적 봉사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파수꾼민주주의’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보면 충격과 상처가 너무 크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대표적인 NGO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김영순 상임대표와 이 단체 상임대표 출신인 남인순 의원이 성폭력 피해자고발정보를 권력자에게 유출하여 밀고한 사건으로 ‘파수꾼민주주의’의 위기와 타락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 출신의 국회의원이 권력에 취해 피해자 보호를 사명으로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포기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권력추구를 위해 시민운동을 대의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시민단체 인사가 권력에 중독되어 희생양이 됐음을 보여준다.

‘파수꾼민주주의’는 제도정치권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것을 핵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인 시민결사체가 제도권 권력과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는 파수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시민결사체인 이 파수꾼이 소금과 같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권력기관을 견제하지 않고, 권력중독으로 부패한다면 ‘파수꾼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된다는 점이다.

시민단체의 투명한 자기점검과 과감한 자정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시민단체는 민의를 배신하는 권력자들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균형을 잡는 민주주의 수호자이자 파수꾼일 때 그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약자인 피해자 보호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자와 손을 잡는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 수호자이자 파수꾼이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부적절한 권력을 탐하지 않겠다는 시민단체 윤리강령의 도입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NGO와 NPO의 원칙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NGO는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번역어이다. 글자 그대로 정부가 아닌 민간이 자율적으로 구성한 비정부기구이다. NPO는 NGO의 중요한 원칙인 비영리(Non-Profit Organization)를 강조한 말로 비영리기구를 말한다. NGO와 NPO의 원칙중에서 비정파성(Non-Partisan), 비영리성(Non-Profit), 비종속성(Non-Dependence), 비지배성(Non- Domination)이 중요하다. 시민단체가 이런 네 가지 원칙을 지킬 때, 관제기구나 관변단체의 ‘정치편향성’에서 벗어나서 공적 자유를 추구하는 자율적 존재로서 ‘파수꾼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

‘파수꾼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권력기관과 국민의 대표자들이 수많은 파수꾼의 견제와 감시하에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파수꾼은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정치권 진입을 자제하는 겸손과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파수꾼의 이러한 겸손과 용기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시민들의 참여의식이 함께 수반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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