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처 인사이트] 핏빛 욕망 위해 영끌하는 ‘펜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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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처 인사이트] 핏빛 욕망 위해 영끌하는 ‘펜트하우스’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04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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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이보다 더 독할 순 없다. 맵고, 짜고, 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극단의 맛을 다 버무려놓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맛에 중독된 듯 늘 본방사수 중이다.

비판하면서 보게 되는 아이러니를 깨닫는 순간, 이게 바로 빠져나오기 힘든 ‘막장의 맛’임을 시인하게 된다.

이미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부지불식간 자극에 길들여진 시청자의 눈높이를 지상파가 한층 더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막장종합세트를 용인했다. 단언컨대 ‘자극의 끝판왕’이다. 

이 드라마는 도무지 한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다. 그 뻔하지 않음에 홀려 TV앞에 앉게 된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와 상황 설정은 때때로 어이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게 마력 같은 위력을 지녔다.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긴장하고 몰입한다. 바로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가진 역설의 힘이다. 

욕망을 먹고 괴물이 되어가는 곳, 헤라팰리스

고층 아파트나 호텔의 맨 위층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주거 공간을 ‘펜트하우스’라고 한다. 들어보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곳. 그곳에 다녀온 적 있는 지인에 따르면 눈높이가 확실히 달라졌단다.

그래서인지 가보고 싶은 맘이 더 생기질 않는다. 현실에 대한 불평만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할텐데, 굳이 예상되는 불행을 만들 필요가 뭐 있을까 싶다. 

‘영끌’이 트렌드가 돼버린 부동산 공화국, 스펙 포기는 인생포기와도 같은 교육 공화국. 영원히 해결방안이 묘연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둘을 버무려놓으니 드라마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펜트하우스’는 ‘위너(winner)’의 다른 이름이다. 

욕망의 화신들이 벌이는 핏빛 향연이 펼쳐지는 곳, 바로 삼성동의 ‘헤라팰리스’다. 급 떨어지는 사람은 대접 받지 못하는 상류사회의 축소판, 어떻게 해서든 원하는 것은 손에 넣고야 마는 이기심들의 집합체, 그들은 굳이 불법과 합법 사이 ‘편법’이란 걸 고민하지 않는다.

불법과 샴쌍둥이다.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불륜, 왕따, 폭력, 납치, 살인, 시체 훼손에 은닉까지 난무한다. 죄의식을 갖는 다는 건 정력낭비일 뿐이다.

부모찬스는 능력이 부족한 자녀에게 좋은 스펙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고 욕망DNA까지 되물림 된다. 아이들의 욕망과 부모들의 그것은 끔찍할 만큼 닮아있다. 대를 잇는 악연은 결코 ‘루저’를 용납할 수 없게 만든다. 싸우고 빼앗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길 수 없다면 죽여야 한다. 학교는 썩었고, 교사는 있는 자들의 하수인일 뿐이다.  

100층 헤라팰리스 보다 더 높은 핏빛 욕망,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만의 리그는 곧 파괴될 것처럼 위태롭다. 

사진제공=SBS '펜트하우스'

‘김순옥 월드’의 흥행공식

‘복수’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강력한 기제다. 단지 주인공의 점 하나가 복수의 시작이었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가히 ‘김순옥 월드’의 레전드 라고 할 만하다. ‘펜트하우스’에서 자신의 딸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고 간 헤라팰리스 사람들에게 심수련(이지아 분)은 모두를 응징할 복수의 화신이다.

여기에 조력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1인2역 설정은 훨씬 디테일해졌다. 후줄근한 체육복에 장발머리, 비뚫어진 큰 치아에 콧수염, 안경을 쓰고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청아예고 비호감 체육교사인 구호동과 최고급 수트에 준수한 외모,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엄청난 부를 소유한 사업가 로건 리(박은석 분)는 동일 인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얼굴에 점 하나 찍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분했던 장서희(구은재·민소희 역)에 비하면 김순옥 월드의 복수 동력 시그니처인 1인2역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로건 리와 심수련은 딸에게 폭력을 가하고 극한의 고통을 준 아이들을 대신해 그들의 부모를 납치하고 그와 똑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부모들이 겪고 있는 아비규환의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감금과 불길, 오물까지 살아서 맛보는 지옥 코스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판타지다운 설정이지만 꽤 큰 쾌감을 안겨준다. 여전히 ‘인과응보’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유효한 카드다. 

김순옥 월드는 ‘펜트하우스’를 통해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 하는 악인들 간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악인열전이다. 그래서 진부하지 않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양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이제 욕망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을 터. 현실에선 헤라팰리스가 여전히 철옹성이겠지만 드라마에서만이라도 죄와 벌이 세트로 함께 하기를, 그곳에서 권선징악은 사어(死語)가 아닐 테니까.

코로나 상황에 꼼짝없이 집콕해야 하는 시기, 분출의 욕구를 실현시켜주는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다음이 기다려지는 재미있는 드라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도 넘은 폭력성과 선정성 등 몰아치는 센 자극은 상당히 위험하다. 다음 시즌 ‘김순옥 월드’에 순한 맛 한 스푼 넣어보는 건 어떨까.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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