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의 수필가 강귀분作 '매듭을 풀다'...굴곡진 한국의 현대사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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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의 수필가 강귀분作 '매듭을 풀다'...굴곡진 한국의 현대사 그대로
  • 문주용 기자
  • 승인 2020.12.23 15: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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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문주용 기자] "아들의 군대생활 삼년의 시간이 가는 동안 우리 집에서 잡혀간 다섯 아이중 S는 교도소에 형을 살고, C는 군대에 가서 의문사로 죽었다. K는 수배를 피하여 산사를 전전하다 스님이 되었고 몇 년 후에 영문을 모르게 죽었다. J는 지방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도 하고 시장도 했다. 지금도 5월이 되면 살아남아 오십대 중반에 이른 아이들이 모여 국립 현충원에 묻힌 C를 만나러 간다. 그 순한 눈망울의 아름답던 아이들. 먼저 간 아이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만큼 시간이 갔다. 영화 1987을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을 움켜잡고 많이 울었다. 김태리가 강동원에서 하던 말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 그날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 정신 차려라." 일갈한다. 내가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새해가 되면 85세가 되는 수필가가 이제 신인 작가로서 첫 수필집을 냈다. 2020년 12월에 출판된 수필집 '매듭을 풀다(출판사 소후)'의 저자인 수필가 강귀분씨는 2010년 74세의 나이로 등단, 10년 만에 그간의 단편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는 결혼 전 짧은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인생의 대부분을 며느리, 아내, 엄마, 할머니로 살다가, 딸의 성공을 위해서 외손주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재능과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땅을 찾아서 한반도를 떠났던 이주민의 딸로 만주에서 1937년에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수필집은 중국 혁명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구석구석을 거쳐 미국까지 이어졌다가 21세기의 한국 사회에까지 와닿는다.

'매듭을 풀다'는 역사적 사건과 격동을 몸소 경험한 위대한 인물의 전기가 아니라 평범한 여인의 인생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평범한 이의 삶에도 어김없이 관철된 우리 역사와 사회상이 담겨있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 때 혁명과 동란의 와중에 이국 땅에서 태어났다. 고국이 해방되어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봉건의 굴레와 가난 그리고 굴곡 많은 한국의 현대사였다.

43편의 수필에는 작가가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 할머니로서 역할을 바꿔가며 살아온 인생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나눠져 담겨 있다. 그렇지만 수필집 '매듭을 풀다'는 한편으로는 봉건의 질곡에 저항하는 각성된 여성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 어머니로서 겪어온 한국의 현대사이다.

작가가 시대와 장소를 오가며 세대를 넘어선 재치와 안목으로 엮어낸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글마다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며, 수필집을 마지막까지 다 읽으면 한 세기에 걸친 장편 소설을 읽은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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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수 2021-05-13 04:12:05
짜가들이 판친 한국의 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