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왕국 사우디] 사우디 여성에 대한 힘찬 응원 '영화 와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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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왕국 사우디] 사우디 여성에 대한 힘찬 응원 '영화 와즈다'
  • 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 승인 2020.12.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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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감독, 2012년 사우디 현지에서 첫 장편영화 제작
'여성 차별' 사우디 현실 고발...살해위협 받기도
남자없이 여성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회...조금씩 나아지고 있을까
신승민 통신원
신승민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지난 2018년 4월 상업영화 상영관이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영업을 개시했다. 사우디는 매우 엄격한 이슬람국가로 헐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상업적인 영화를 종교적 이유에서 금지하고 있었다.

물론 사우디에도 처음부터 이렇게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지는 않았다. 1970년대만 해도 여러곳에 상영관들이 있었고 당시에는 영화를 이슬람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집트 영화나 인도 영화 그리고 터키 영화등이 정부에 간섭없이 자유롭게 상영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79년 근본주의 이슬람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메카 사원을 점령한 무장세력 사건 이후로 모든 상업영화시설은 폐쇄됐다. 최근에 들어서야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의 사우디 발전계획 'VISION 2030' 일환으로 수도 리야드를 기점으로 대도시 마다 영화관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10살짜리 소녀의 눈에 비친 '여성차별' 사우디 사회 

이러한 열악한 영화산업 환경에도 불구, 2012년에 사우디 최초 장편영화가 여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영화 '와즈다Wadjda ,وجدة '는 2000년대 초반 수도 리야드에 살고 있는 10살짜리 여자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사우디의 모습들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사우디에서 캐스팅되었으며 촬영도 사우디 현지에서 이루어졌다.

사우디 영화 '와즈디'의 한국판 포스터. 사진= 구글
사우디 영화 '와즈다'의 한국판 포스터. 사진= 구글

영화를 제작한 감독 하이파 알-만수르(Haifaa al-Mansour)는 1974년 사우디 태생으로, 시인인 아버지의 권유로 이집트의 명문대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호주 University of Sydney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았다. 

영화는 촬영은 사우디, 제작은 독일에서 이뤄졌는데 사우디 태생은 영화감독이 머리카락과 얼굴을 내놓고 몸도 가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하고, 사우디에서 금지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보수적인 사우디 종교인들의 심기를 매우 자극했다. 훗날 그녀는 이슬람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와즈다'를 찍은 영화감독 하이파 알-만수르(Haifaa al-Mansour). 사진= 구글
'와즈다'를 찍은 영화감독 하이파 알-만수르(Haifaa al-Mansour). 사진= 구글

필자는 영화 '와즈다'를 사우디 오기 전,후에 각각 두번씩 보았다. 영화 배경이 2000년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20여년이 지난 지금 사우디 모습과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인 남성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사우디 여성들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남자가족 구성원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어  

'와즈다'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10살짜리 소녀로 규율에 매여사는 것이 싫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나온다. 머리카락을 스카프로 가리지 않고 등교해서 교장 선생님께 지적을 받고, 대중가요를 듣다가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어느 날 운명처럼 아주 멋진 자전거를 상점에서 발견하지만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정숙하지 못하고 임신을 못하다는 속설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에 엄마는 자전거를 사주지 않는다. 와즈다는 외동딸로 남자형제가 없다. 이런 이유로 와즈다의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새부인을 얻어주려고 한다(사우디에서는 법적으로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오늘날에도 사우디 여성들의 취업은 쉽지 않은데 영화의 배경인 2000년대에 사우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매우 열악한 급여수준의 업무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혼자라도 일을 해 돈을 벌기로 마음 먹은 와즈다. 그녀는 자전거를 사기 위해 여기저기 푼돈을 벌어보지만 자전거를 살 수 있는 수준이 될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침 학교가 주관하는 코란 암송대회에서 1등하면 상금이 자전거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인 것을 알고 열심히 코란을 암송해 대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상금을 받아 자전거를 사겠다고 수상소감을 털어놓자, 이에 분노한 교장은 상금을 모두 회수해 버린다. 슬픔에 빠져 집으로 돌아온 와즈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가는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한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와즈다에게 "아버지는 새결혼으로 우리를 떠났고 이제는 우리 둘만 남았다"라는 사실을 전해준다. 이어 자신도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새장가를 막아보려 했지만, 이제는 우리 모녀 둘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며 와즈다가 그토록 원했던 자전거를 선물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얼핏보면 사우디 일상을 이야기한 것 같지만 필자가 사우디에서 살아가며 차츰 느낌 경험으로 볼때, 그 영화 감독은 매우 다양하고 무거운 사우디 사회의 주제를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다루었다는 ㅅ을 알 수 있었다. 

사우디 현지에서 '와즈다'를 촬영할 당시 모습. 사진= 구글
사우디 현지에서 '와즈다'를 촬영할 당시 모습. 사진= 구글

1. 금지된 남녀의 연애, 그렇지만 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음: 와즈다의 학교 선배는 외모를 치장하고 패션잡지 등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다. 와즈다는 중간에서 편지 등을 전달해 주기도 하는데, 연애사실을 들킨 선배는 퇴학을 당한다.

현재 대학에 근무하는 필자로서는 이 젊은이들의 연애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아직도 연애는 절대 금기시되고 있지만, 솔직한 학생들은 어떻게 이성을 만나며 데이트는 하는지를 필자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2. 성폭력에 취약한 여성: 영화 중반쯤에 보면 와즈다가 귀가하는 도중에 길가에서 제3국 노동자(인도, 파키스탄인등)들에게 성적 희롱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사우디의 거리는 한국과 비해 여성이 다니기에는 매우 위험하며 크고 작은 성관련 범죄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대낮의 주택가 임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성범죄를 감독은 말하고 싶었으리라 짐작된다.

3. 여성의 사회진출 어려움과 근본이슬람주의: 사우디내에 여성들의 자동차 운전은 지난 2018년부터 가능해졌다. 그전까지 여성들은 제3국 드라이버를 고용해 외출을 해야 했는데 영화에서도 이 드라이버와 마찰이 생겨 출근을 못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 엄마의 친구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려 하지만 엄마는 남자들과 어떻게 같이 일을 하냐며 거부하는 장면도 나온다. 여성 스스로가 얽매여 있는 보수 이슬람의 관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와즈다의 엄마는 친구로부터 직장을 소개받았지만 남자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사진= 구글
영화에서 와즈다의 엄마는 친구로부터 직장을 소개받았지만 남자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사진= 구글

4. 전적으로 남자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사우디 여성의 삶: 사우디는 '왈리'라는 남성 보호자제도가 있다. 여성들은  아버지, 남편 등의 허락이 있어야 여행이나 출국 심지어 외출도 가능하다. 이전에는 성인 남성을 동반하지 않은 경우에는 외출 자체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니 사실상 여성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새장가를 가버린 아버지로 모녀는 사회에서 버려진다. 남성 가족 구성원이 없는, 사우디에서 가장 취약한 가족형태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우디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사망하면, 독거 노령여성은 생계가 크게 위협받으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과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사우디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와즈다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엄마는 아버지 없이도 열심히 살아보려는 굳은 의지를 다짐한다.

세상에 내던져진 모녀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굳세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사진= 구글
세상에 내던져진 모녀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굳세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사진= 구글

이 영화는 사우디에서 상영되지는 않았고 상영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와즈다'라는 여자 이름도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이름이라고 한다. 

몇해전 한국 공중파에서도 더빙으로 영화 '와즈다'가 방영됐지만, 아쉽게도 사우디에서 이런 영화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만나본 적이 없다. 필자는 '왜 하필 자전거일까?'라고 되묻다가 페달을 계속해서  밟지 않으면 넘어져 버리는 자전거처럼 사우디 사회의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에 대한 염원을 사우디 태생 감독이 담으려 했던 게 아닐까 하고 결론지었다. 

PS(사족): 영화에서 아버지가 와즈다에게 사막에서 주웠다고 운석 돌멩이 하나 선물로 준다. 독자분들도 잘 알다시피 운석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물건이다.  뜬금없는 물건인 것 같지만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교 지질학과 교수는 사우디에 운석이 많이 존재하며 이것을 찾는 브로커들도 꽤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 본인도 기회가 되면 운석을 찾으러 간다고 할 정도다.

혹시 사우디에 오게 될 독자분들중 로또에 버금가는 운석을 발견할 지 누가 알겠는가. 필자도 매번 사막을 지날 때는 눈을 크게 뜨고 지나갈 생각이다.  

● 필자인 신승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서 학위를 마치고 2017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Dharhan(다란)에 위치한 king Fahd University Of Petroleum & Minerals(국립 킹파하드 석유광물 대학교) 체육학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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