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혁신기업]④ 테슬라와 에디슨의 전류전쟁...승자는 J.P.모건·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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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혁신기업]④ 테슬라와 에디슨의 전류전쟁...승자는 J.P.모건·GE
  • 이영원 미래에셋대우 이사
  • 승인 2020.12.15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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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원 미래에셋대우 이사] 2020년 현재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로 일론 머스크,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테슬라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10여년 전,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이 그러했듯, 지금은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 모델들이 세상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슈퍼카에 버금가는 성능을 자랑하며 오토 파일럿 기술까지 겸비한 테슬라의 모델S, X, 3, Y 등은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서 테슬라는 가장 뜨거운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회사명 테슬라에는 이미 가장 혁신적인 과학자였던 니콜라 테슬라의 영혼이 담겨있기도 하다.

토마스 에디슨과 함께 니콜라 테슬라는 인류가 전기를 사용하고 비약적으로 제조업을 발전시켜 새로운 생활을 가능케 한 진정한 혁신가였다. 그리고 그 둘이 경쟁하고 다투며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던 '전류전쟁(Current War)'은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끈 바 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전쟁'

직류(Direct Current)방식을 주장했던 토마스 에디슨과 교류(Alternating Current) 방식을 주장했던 니콜라 테슬라의 대립은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나이애가라 폭포 발전에서 교류가 채택되면서 승패가 갈린 바 있다.

현재의 기술에서는 직류 전송 방식이 재부각되고 있다고 하지만 두 천재가 맞붙었던 1880년대에는 기술적 우위를 증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간단치 않았고,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승패에 작용했다.

전구를 발명했다고 알려진 토마스 에디슨은 1882년 뉴욕 맨해튼에서 드렉셀 모건 은행(J.P.모건은행의 전신), 파크 은행, 뉴욕타임즈 등 고객사의 사무실 위치한 로워 맨해탄 지역을 환하게 밝히며 전기시대의 막을 올린 바 있었다.

하지만 직류 방식을 채택한 에디슨의 전기는 발전기로부터 1마일 이상 송전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전압이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로는 직류전기를 고전압으로 승압할 수는 있었지만 고전압의 전기를 다시 낮출 수 없었다. 원거리 송전을 위해서는 고압의 전기가 필요했지만 고압 전기로 직접 전등을 밝히기에는 너무도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에디슨이 뉴욕을 밝히기 위해서 저전압의 직류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0.5마일마다 설치해야 했다.

반면, 테슬라는 테슬라코일을 활용한 변압 아이디어가 있었다. 교류 전기를 변압기를 이용해 승압후 송전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에디슨과 달리 교외에 세운 대규모 발전소 1개로 훨씬 간단하며 효율적인 송전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출신의 니콜라 테슬라는 수학과 물리학에 일찍부터 천재성을 보였던 과학자이자 공학자였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에디슨의 회사에서 근무하며 에디슨에게 교류 전기를 추천했었다.

교류방식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던 에디슨에게 모욕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회사를 그만둔 테슬라는 직류방식의 에디슨과 전류전쟁이라 불리우는 평생에 걸친 경쟁을 이어가게 된다.

테슬라가 1899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세운 무선전송 실험실에서 수백만 볼트의 전기를 발생시키는 기기 앞에 앉아 있다. 사진=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니콜라 테슬라가 1899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세운 무선전송 실험실에서 수백만 볼트의 전기를 발생시키는 기기 앞에 앉아 있다. 사진=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과학자들의 논쟁에서 출발한 전류전쟁은 각자의 방식을 구현할 사업가들과 함께 하면서 거대한 규모로 발전해 간다.

에디슨에게는 초기부터 투자를 담당해주던 J.P.모건이 있었다. 테슬라의 교류방식에 끌린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 Jr.)는 테슬라의 아이디어에 전기 생산 1와트당 2.5달러의 특허료를 지불하기로 하고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를 세워 사업을 추진했다.

에디슨과 J.P모건은 에디슨 제네럴 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을 설립하고 경쟁사이던 톰슨허스턴(Thomson-Huston) 전기회사와 합병해 본격적인 사업을 벌여 나갔고, 교류전기와 대적했다.

에디슨의 직류진영은 기술적인 열세를 뒤집기 위해 교류전기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사형수에 대한 형집행 방법으로 교류전기를 추천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이러한 주장에 맞서 교류전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작동중인 대형 변압기 앞에서 독서하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비지니스는 과학자가 아닌 기업가 손에 달려 

하지만 현실에서 전류전쟁은 과학자들의 손이 아니라 사업가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었다. GE에서는 기술적으로 열세인 직류전기를 고집하던 에디슨을 경영에서 배제시킨다. 회사 이름에서 ‘에디슨(Edison)’이 사라지고, J.P.모건의 뜻대로 교류 방식을 채택해 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테슬라는 경영난에 처한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를 위해 특허계약을 1891년 해지한다. 이후 교류방식이 미국의 표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웨스팅하우스는 제네럴 일렉트릭과의 경쟁과정에서 공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시장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미국 전기시장은 막대한 자본력과 교류전기 방식을 받아들인 유연함을 보인 제네럴 일렉트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제네럴 일렉트릭은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전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하나로 존재하게 된다.

GE는 테슬라와의 전류전쟁에서 승리한 후 100년 이상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사진=연합뉴스

GE는 1896년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처음 발표될 당시 12개 종목의 하나로 포함된 이후 122년이 지난 2018년에 제외된 최장수 편입기업이 되었다. 백열등을 최초로 생산한 회사였으며, 전동차, X-ray를 최초로 선보인 회사가 되었다. 

이후에도 라디오방송을 최초로 성공시켰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진공관 등을 차례로 선보인 기업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제트엔진, 핵발전설비, CT등 의료기기, 레이저에 이르기까지 최초의 혁신을 거듭한 기업으로 남아있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과학자, 엔지니어의 혁신과 이를 산업화 시킬 수 있는 자본의 만남에서 GE가 탄생한 것이다.

GE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재적인 과학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뿐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기업가와 혁신의 주체인 기업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영원 이사는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에서 리서치 업무를 시작해 푸르덴셜투자증권, 현대차투자증권에서 투자전략을 담당했다. 미래에셋대우에 합류한 이후 해외주식 분석업무를 시작, 현재 글로벌 주식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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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2020-12-15 23:04:20
안녕하세요 이사님! 지금 GE의 주가가 폭락상태인데 앞으로의 전망이 어떻게 될거라 생각하시나요?